오래 전부터 스토커처럼 쫓아다니는 웬수, 동휘 때문에 희연은 변변한 연애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동휘로 인해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신 희연은 그만, 낯선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고 만다.

다시 만날 일 없을 거라 생각하며 평온한 생활을 보내던 어느 날,

그 남자가 바로 눈앞에 나타나 버렸다! 그것도 남동생, 희성의 친구 놈이란다!

-본문 중에서-

“너, 나 알지? 꽃뱀.”

컥! 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냐? 꼬, 꽃뱀이라고라!
희연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진건을 밀어내려 애쓰며 이를 악물었다.

“뭐야, 꽃뱀! 꽃뱀이라고? 이 강간범 자식이 누구보고 꽃뱀이래? 이거 안 놔?”

“너, 남자였으면 나한테 죽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오싹한 그 말에 희연은 빠져나오려던 움직임을 멈추고 진건을 노려보았다. 살다 살다 이렇게 무례하고 막무가내인 녀석은 문동휘를 제외하고 그녀 인생에 처음이었다.


만만치 않은 여자 희연과 더 만만치 않은 동휘, 그리고 더 더 더 만만치 않은 진건의 유쾌한 러브 스토리!      

[미리보기]

제법 쌀쌀한 봄바람이 뜨겁게 달구어진 얼굴에 느껴지는 늦은 밤이었다.

희연은 머릿속이 엉망으로 흐트러진 채 누군가에 의해 이끌려가고 있었다.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팠고 입고 있는 옷에는 그녀가 게워낸 토사물 범벅이었다. 술에 취해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도 희연은 자신이 처음 본 남자에게 크나큰 실수를 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요. 오피스텔에 거의 다 도착했으니까.”

남자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희연의 귀에 나른하게 감겨왔다. 오피스텔? 희연은 흐느적거리며 이끌려가는 몸에 힘을 주려 애쓰며 흐릿한 눈을 깜빡였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은 오피스텔이 아니었다.

“저기, 나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정신으론 언어도 제대로 조합되지 않았다. 그 순간, 그녀의 몸이 번쩍 들렸다. 자꾸만 바닥으로 무너지려는 희연을 남자가 안아 올린 것이다. 갑작스레 공중에 붕 뜬 상태가 되자 그녀는 지독한 어지러움을 느끼며 흐릿한 눈을 찌푸렸다. 그만큼 속을 다 비워냈는데 또다시 토악질이 치고 올라올 것 같았다. 희연은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아무 데나 편한 곳에 누워, 이 지독한 어지러움과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해소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녀는 낯선 남자에게 몸을 맡긴 채 점점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깨끗하게 샤워를 하고 물기를 다 털어낸 진건은 자신의 널따란 침대를 차지한 채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술을 마시다니, 그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몇 번이나 토악질을 해대는 바람에 여자는 물론이고 자신까지 오물 범벅이 되었었다. 그런 여자를 길바닥에 두고 올 수도 없었고, 엉망진창인 꼴로 경찰서에 두고 올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멀지 않은 자신의 오피스텔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만취한 상태인지, 겉옷을 벗기고 물수건으로 몸을 몇 번이나 닦아내는데도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주사를 부리지 않아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낮게 혀끝을 차며 진건이 옷을 입기 위해 몸을 돌릴 때였다. 절대로 깰 것 같지 않던 여자가 이불을 걷어내고는 흐느적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속옷만 걸치고 있는 채로 일어나선 한쪽에 세워져 있는 냉장고로 향했다.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셔댔으니, 목이 탄 모양이었다.

진건은 여자가 물을 마시도록 내버려두고 속옷을 집어 들었다. 아직 여자가 정신을 차린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랫도리에 달랑 수건 하나만 걸친 채 얼굴을 마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속옷을 걸치며 여자 쪽으로 흘끔 시선을 주던 진건은 이마를 찌푸렸다. 여자의 손에는 투명한 물병이 아닌, 붉은 빛깔을 띠고 있는 과실주가 들려 있었다.

“그거 술인데, 지금 뭐하는 겁니까.”

진건이 다급히 말했지만, 여자는 달달하니 향긋한 맛에 취한 듯 그것을 이미 3분의 1이나 들이켜 버렸다. 더 이상 마시게 둘 수가 없어, 진건은 바람처럼 다가가 그녀의 손에 들린 유리병을 홱 빼앗았다. 그 바람에 그녀는 몸을 휘청거리며 진건의 가슴팍에 푹 안겼다. 그러자, 졸지에 마실 것을 빼앗긴 여자가 바르작거렸다.

“내놔…… 내놔…….”

“미치겠군.”

진건이 낮게 투덜대자, 여자는 고개를 들어 게슴츠레 노려보았다.

“나쁜 놈…….”

“술이 아직 안 깬 것 같은데, 좀 더 자요. 지금 그쪽, 속옷밖에 안 걸치고 있다고.”

“싫어…… 내놔, 내놔.”

“것 참. 대책 없는 여자군.”

진건은 가슴팍에서 꾸물대는 희연의 팔을 다소 우악스럽게 낚아채곤 침대로 이끌었다. 그리고 자꾸 바르작거리는 그녀를 강압적으로 눕히고는 이불을 홱 덮으려고 할 때였다. 여자의 가느다란 팔이 진건의 목을 힘 있게 휘감았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으응…… 가지 마. 아파…… 머리 아파.”

마음 한구석이 동요할 정도로 애절한 그 말에 진건은 낮은 신음을 삼켰다. 좀 전, 여자를 닦아내느라 부풀어 올랐던 몸을 식힌다고 무진장 애를 쓴 상태였다. 때아닌 찬물 샤워로 겨우 안정을 되찾았는데, 또다시 열기가 확 치솟았다. 알몸이나 다름없는 여자의 나긋하고도 부드러운 피부가, 마찬가지로 속옷만 걸치고 있는 자신의 몸에 와 닿자 모든 세포가 올올이 일어나는 듯했다. 진건은 조금만 힘을 주어도 부러져 버릴 것 같은 여자의 팔을 조심스레 풀었다.

“으응, 싫어.”

하지만, 짤막하게 내뱉은 여자는 더욱더 완강하게 목을 감으며 몸을 밀착했다. 막무가내인 여자 때문에 순식간에 난감한 상황에 처해진 진건은 잠시 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눈썹만 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건강한 앞섶은 점점 부풀어 오르며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추워. 가지 마.”

“그러니까 이불을 덮어주겠다고.”

진건은 초인적인 인내를 발휘하며, 말도 못할 골칫덩이 여자를 떼어 내기 위해 다시 손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여자는 마치, 진건이 포근한 이불이라도 되는 듯 필사적으로 안겨왔다. 보드라운 여자의 몸이 자꾸만 감겨오며 자극해 오자, 진건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지금이라도 당장, 여자를 안아버리고 싶은 욕구가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는 머리에 참을 인자를 수천 개나 그리며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다음 순간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로 인해 그는 인내의 끈을 놓쳐버렸다.

“안아 줘. 추워.”

“……분명히 안아달라고 그랬다.”

출간작

<꼬리 99개 달린 여자와 동거하기> <내 사랑 내 비서 차보리> <그녀의 매력이 더 치명적이다> <그 녀석> <압도적인 남자와 나> <미스터 마왕의 에로스> <폭풍 속으로> <하트브레이커의 베일> <소년소녀> <청룡의 서> <노히트 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