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떠나보낸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사랑한 시간만큼 떠나보내는 시간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 사랑은 그녀가 걷는 길에 들꽃이 되었습니다.
5년 동안 사랑한 첫 남자를 불의의 사고로 잃어버린 올해 서른 살의 연이수, 그래도 세월은 그녀가 사랑한 시간만큼 흘러 버렸다. 꿋꿋하게 옛사랑의 추억 속에서 살고 있는 그녀에게 갑자기 한 남자가 불쑥 날아들었다.

“하! 사회적 동물이라. 당신도 알다시피 난, 낙하산이지,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 그러니 인간이 아닐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거슬리면 어때……한 번 가르쳐 보시죠, 당신이 직접 말입니다.”

사랑을 믿지 않는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사랑한 시간 보다 사랑을 믿지 않는 시간이 훨씬 긴, 아니 사랑이란 말 조차 모르는 남자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여자라는 동물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올해 서른두 살의 장수인, 지금도 그녀로 인해 자신은 원하지도 않았던 또 다른 여자의 사랑에 옭아매져있다. 제 속에 자리 잡아 있던 열기는 언제나 자신의 일로 바꿔내려 할 뿐, 그런 그에게 갑자기 한 여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에, 텅 비어 있는 이곳에, 사랑이 넘쳐나면, 그래서 아주 예쁜 하트 모양의 심장이 만들어지면 그때……팔아드리죠. 당신한테……당연 불가능은 하겠지만, 뭐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이 있겠습니까!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짝사랑부터 시작해 보시던가요.”



- 본문 중에서 -

“5년이라며, 5년이나 지났다며.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지,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변하는 게 사랑이잖아, 버려지는 게 사랑이잖아. 그런데 당신은……그렇게 좋았습니까, 이토록 잊을 수 없을 만큼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만큼, 그렇게 그 사람을 사랑했습니까!”
멀찍이 헤드라이트를 비춰내며 달리는 자동차 한 대의 불빛에 수인의 눈가가 반짝였다.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더욱 커져갔다. 키 판을 누르는 손동작도 빨라졌다.
“뭐야 이건! …….”
이백 개가 넘는 같은 문자 메시지가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수인은 더 이상 그것을 쳐다 볼 수 없었다. 그 남자에 대한 부러움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냥 얼굴만이라도……. 수인의 온몸이 날기 시작했다.
계곡의 어귀까지 단숨에 날아온 수인의 몸이 천천히 그 속도를 줄이며 펼쳐 있던 날개를 접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도 제 발로 달렸던 똑같은 그 길이었는데, 제 몸짓을 따라 이는 바람에 그 옆을 지나는 가녀린 들꽃들이 어두운 곳에서도 한들, 한들, 자길 따라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 생각은 담을 수도 볼 수도 없었지만 그들의 흔들림에 잠시 발까지 멈춰 세웠다. 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듯 제 가슴을 타고 새겨드는 말이 있었다.
당신은 아십니까! 사랑은 길에 핀 들꽃과 같다는 것을요. 드물게 뿌리 내린 한 송이의 들꽃은 버려지고 외면 받을까 제 빛을 발하지 않고 또다시 혼자가 될 두려움에 자신의 아름다움은 생각하지도 않는답니다. 그런데도 그것은 어느 날 문득 누군가의 눈에 뜨인다는 것이죠. 언제나 그 자리에, 드문, 드문, 피어 있던 들꽃인데 발이 달려 옮겨진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들꽃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당신과 같이, 사랑의 몸짓으로 일렁이는 바람으로 들꽃의 사랑도 바로 옆 또 바로 옆……또 그 옆으로, 그 길이 끝날 때까지 사랑바람을 따라갑니다. 지금은 느껴지셨나요! 당신을 따라오는 한 송이의 들꽃을……이듬해는 이 길이 끝날 때까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수많은 들꽃들을 볼 수 있을 거라며 아주 작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수인은 지금에서야 깨달은 마음을 양 손에 양 발에 가득 담아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좁은 포장도로를 또 얼마나 뛰었을까, 계곡을 완전히 벗어났을 무렵 점심을 먹었던 허브나라 쪽에서 자전거의 체인감기는 불안한 소리가 들려왔다. 작고 검은 물체의 모습도 점점 수인의 시야로 좁혀졌다. 바로 알 수 있었다. 성큼 성큼 거인의 발자국을 해서는 꾹꾹 찍어 걸으며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자기가 가는 길에 이름표를 남기겠다며 다시는 그녀에게 가는 길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의 걸음인 듯싶다.
“부장님! ……여긴 어떻게.”
봄이라도 오대산 아래라 밤공기가 차가운데 얇은 셔츠 하나만 덜렁 입은 채 숨을 헐떡이는 수인의 모습에 이수는 소스라치게 놀라했다.
“당신! ……당신!”
“네?”
“당신이란 여자……도대체, 어떤 여자입니까, 도대체가.”
‘에엥 또 저 질문이야, 아직도 인간이 덜 된 거냐! 아직도, 참 당신여자 고생깨나 하겠다.’
이수의 입술이 살짝 밖으로 내밀어졌다.
“아 또 뭘요? 왜 또 그러시는데요. 왜 여기까지 따라와서 트집입니까. 네? ……왜!”
수인은 더 이상 제 기분을 참아내지 못했다. 내려놓고 잡겠다는 마음은 이미 계곡물에 휩쓸려 떠내려가 버렸다. 그렇게 수인은 있는 힘을 다해 제 앞의 그녀를 양팔로 끌어다 가슴으로 안았다.
“부……부장님!”
“바봅니까? 바보냐고……당신이란 여자 바보냐고? 말을 했어야지, 말을 해야 알 수 있잖습니까!”
이수는 자길 안고 있는 남자의 행동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물음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왜 그러세요. 이거 놓고 얘기해요 네? 부장님! 저 말했어요. 말했다구요. 희선 언니한테 핸드폰 찾으러 갔다 온다고 말하고 나왔다니까요. 그러니까……이것 좀 놔…….”
“안 놔! 못 놔. 좋아해(내려놓은 다음이어야 했는데) 좋아해(당당하게 다가갔어야 했는데) 좋아해(내가 너무 모자라는데) 좋아해(아직은 말할 수 없었는데) 좋아해(내 가슴이 아파서) 좋아해(너무 너무 아파서) 좋아해(당신이 손을 얹어 놓은 그 심장이) 좋아해(너무 부풀어 올라서) 좋아해(벌써 금이 가기 시작했다) 좋아해(이젠 터질 것 같다고) ……당신이 말한 10번의 짝사랑 모두 다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아픕니다. 그래서……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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