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윤정

[작품 소개]

사람의 살갗만 스쳐도 소름이 돋을 것만 같은 현진.

타들어가는 여름에조차 긴 옷을 입고 촬영도 하지 않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윤영.

오래전부터 앓아온 병 같은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그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비슷한 사람이었다.

아프잖아, 너.

“현진아, 이거 놔! 너 아프잖아!”

“상관없어.”

언제부터인가 너는 내게 있어 아무리 아파도 안아 주고 싶은 사람이 되었으니까.

서로가 있어 행복하고

함께 있어서 로맨틱한 나날들이 시작되었다…….

[본문 발췌]

“네 마음 다 알아, 최현진.”

“네가 뭘 알아, 이 계집애야.”

다 알고 있다는 윤영의 말에 현진이 찡그린 얼굴로 물었다. 도대체 방금 무슨 생각을 한 건지, 현진은 지금 이 순간 자기 자신이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방금 내 얼굴 만지고 싶었지?”

윤영이 묻자 현진이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거짓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현진은 긍정의 제스처도, 부정의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윤영은 이미 전부 다 알고 있다는 얼굴이었다.

“내 머리카락 쓰다듬고 싶었지? 나 안아 주고 싶었지?”

현진은 그녀에게 뻗었다가 다시 거둬들인 손을 꼼지락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여태껏 여자라면 누구든 닿는 것만으로도 혐오스럽게 느꼈던 그가 윤영의 말처럼 정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노을에 빨갛게 변한 윤영의 얼굴을 바라보는 현진은 조금 굳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윤영은 여전히 맑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 한 걸로 할 거야. 너 방금 내 얼굴 만졌고, 내 머리 쓰다듬었고, 나 안아 줬어.”

“…….”

“그렇게 해줘서 너무 고마워, 현진아.”

윤영의 말에 현진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비록 모델이 되어 주겠다는 말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한 행동에 웃고 있는 윤영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진은 픽 웃는 얼굴로 다시 윤영에게서 돌아서 자신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윤영은 목에 걸고 있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그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웃어 주었다. 그가 자신이 하는 말에 조금도 부정하지 않고 웃어 주었다는 사실이 윤영을 너무나 기쁘게 했다. 그렇게 어느덧 현진도 윤영에게 한 발자국 더, 윤영도 그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