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호원이 경호를 받는다니 뭐가 그래?
비밀이 가득한 여자. 그 여자를 어찌할 수 없어 괴로운 남자.

이은- 여자라고 무시하는 남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 주겠어! 여자의 무기가 유혹적인 미소와 에스 라인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똑똑히 보여주지. 날 지켜 줄 남자는 없어. 나는 내가 지킬 거니까. 지은 맥그리거.

남주환- 여자는 남자가 지켜야 해. 제발 내 품에서 안전하게 지내라. 널 지키기 위해 뭐든 하겠어. 한없이 연약한 너를 조금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지강 맥그리거- 내 소중한 사람들은 내가 지켜. 그게 당연한 거 아니야? 어디서 감히 내 사랑을 채가려고 하는 거냐? 절대 호락호락 넘겨주지 않겠어.

배남현-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모르겠군. 내 눈이 제대로 된 건지, 내 귀가 제 구실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아무래도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판타지 소설에 묻혀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남지우- 살면서 항상 두 번째라는 건 지긋지긋해. 나도 첫 번째가 될 거다. 손만 뻗으면 그걸 잡을 수 있는데 왜 양보해야 하지? 먼저 차지하면 그만. 인생의 묘미는 불가능해 보이는 걸 쟁취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에서 오는 거 아닐까? 짜릿하고 자극적인 그 순간을 내가 느껴 볼 생각이야.

남선희- 여자의 욕망이 남자를 통해 드러난다는 건 역사를 통해 이미 알려진 사실. 사업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평범한 여자처럼 살아가기는 어려워. 숨은 권력자로서 가지는 희열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몰라. 야망을 위해 아무것도 보지 않고 달리겠어. 마지막에 도착한 곳이 어떤 곳일지는 몰라도 일단 가는 데까지 가볼 거야.



-본문 중에서-

경호 회사 팀장이 초조함을 감추며 팀원들을 자랑스럽게 빨리 소개하고 있을 때였다.
벌컥,
“으…….”
짧고 허망한 신음 소리들이 체육관 곳곳에 울렸다.
“안녕하세요, 이런, 손님이 계셨던 건가요?”
모델처럼 키가 크고 쭉 뻗은 몸매의 여자. 분명 경호 회사 마크가 들어간 체육복을 입고 있는데 여자의 이미지와 맞지 않아서 그런지 다른 옷인 줄 알았다. 언뜻 이국의 공주처럼 느껴지는 우아함마저 갖추고 있는 그녀는 붉은빛이 나는 흐린 갈색 머리카락에 이목구비가 선명한 외국인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 남현은 경호 회사에 의뢰를 하러 온 여자인 줄 알았다. 너무 아름다워서 신변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저는 이은이라고 합니다. 경호원을 찾으러 오셨다면 이 하루살이들보다 제가 한 수 위에요.”
“아…….”
남현은 바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외모와 완전히 어긋나지는 않지만 씩씩한 여자의 목소리가 말하는 내용이 이상했다. 영어가 나올 것 같은 얼굴로 또박또박 정확하게 한국말을 하는 것부터 놀라운데 다른 경호원들보다 더 낫다고 말하니 이해할 수 없을 수밖에.
“또 제 것만 빼고 보여주셨군요.”
“아, 아니야. 그럴 리가. 하하하.”
팀장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너머로 다른 팀원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이은이 팀원들을 날카롭게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

남현의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태도에 지환은 속으로 웃었다. 보통은 순종적인 아녀자처럼 굴었지만 가끔 의외의 상황에서 고집을 부리곤 했기 때문이다. 이번 일도 아마 갑자기 늘어난 일을 처리하는 데 힘이 들어 벌인 일이라 생각했다. 그에게 힘들다 말하기는 자존심이 상하고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힘들게 살 수는 없기에 비서를 고용했으리라. 싫은 소리 듣기 싫어하는 아내처럼 고집스럽게 턱을 세워 올리고선 남현을 보며 처음의 당황을 모두 정리했다.
“다 좋은데 요즘 상황이 좋지 않아서 그게 조금 걱정이군.”
새로 들어온 비서가 주환의 나쁜 상황에 몰려 혹시라도 다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다.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실은 그런 걸 생각해서 다방면에 능력 있는, 말하자면 저의 개인 경호원처럼, 뭐, 그런 사람을 들였습니다.”
“그렇다면 무조건 좋아. 아주 실력이 좋은 사람인가 보군. 특전사 출신이라도 되나?”
주환은 마음이 놓였다. 배 비서가 그때문에 다칠 일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오 년 넘게 함께 일하면서 마음을 열어 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가 되었는데 불미스러운 일로 잃고 싶지 않았다. 알아서 경호원을 채용했다는 사실에 칭찬을 해 주고 싶었다. 당분간 배 비서의 안전엔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뻤다.
“아니, 뭐, 비슷하기는 하지만 꼭 그렇게 특전사 쪽으로는……. 음! 밖에 있는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주환은 특수 부대 출신들 중에 누군가를 기대하며 문을 바라보았다. 남현이 요즘 겁을 먹은 탓에 안심할 수 있는 든든한 사람을 기대했다.
“이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주환은 또다시 잠깐 동안 아무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몇 번 없는 경험을 지금 연속해서 하는 중이었다. 눈을 깜빡여 혹시라도 잘못 본 것이길 바랐다. 그도 그럴 것이 문을 통해 들어온 사람은 근육질의 단단한 남자가 아니라 늘씬하고 연약해 보이는 지극히 여성스러운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냥 여성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아름다운 여자였다. 다른 누군가가 뒤를 따라 들어오는 건 아닐까 하며 다시 문을 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뒤이어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남현이 이은 옆에 서서 불안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주환은 그의 눈앞에 있는 여자가 남현이 뽑은 경호원 겸 비서라는 사실을 억지로 기억해냈다. 곧이어 이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실체 없는 향기에 현기증을 잠깐 느끼며 아주 잠시 동안 눈을 감았다 다시 떴다. 그의 태도에 남현의 표정이 더욱 나빠졌다. 주환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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