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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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 출간작 : 야상곡 첫 번째(단편집), 로맨틱 야상곡(단편집), 남자의 구애, 야자타임

<책소개>

“보고 싶었어. 잘 지내는지. 네가 어떻게 변했는지…….”

“짜증 나게 하지 말고 가. 난 너 보고 싶지 않으니까.”

9년 전 미완인 채로 끝나 버린 그와 다시 만나기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싸늘한 반응뿐.

재강에게 벌어졌던 끔찍한 일은

따뜻하고 자상했던 그의 모습을 완전히 앗아 가 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덕분에 자꾸 웃게 된다. 잘 들어, 소람아. 네가 좋아.”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을 잊게 할 만큼

그는 이미 그녀에게 끌리고 있었다.

<본문 중에>

네 시간의 비행 끝에 소람은 인천공항에 발을 디뎠다. 공항버스를 타고 서울로 이동한 그녀는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사람이 적어 2인실을 혼자 쓰게 되어 왠지 좋은 예감을 느꼈다.

거울을 보며 용모를 다듬은 소람은 핸드백을 매고 방을 나섰다. 휴식을 취하고 천천히 움직여도 충분했을 테지만 마음이 급했다. 어두워지기 시작한 골목길을 벗어나 택시에 오른 그녀는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인사 부서 이재강 씨를 찾아왔는데요. 혹시 퇴근하셨나요?”

안내데스크 직원에게 말을 건넨 소람이 퇴근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초조하게 확인했다. 그러자 직원이 상기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아직 퇴근 안 하셨을 거예요. 방문증 끊어 드릴 테니 빨리 가 보세요.”

보안이 삼엄한 회사는 아니었기에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쉽게 방문증을 받을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직원이 알려 준 층에서 내린 소람은 인사 부서 사무실 앞에 섰다. 퇴근하는 많은 인파 속에서 혹시나 재강을 만나지 못할까 봐 그녀는 안절부절못했다. 차라리 집 앞으로 가서 기다릴 걸 그랬나, 하는 후회도 들었다. 목을 길게 빼고 두리번거리며 재강을 찾던 소람은 초조함에 물고 있던 엄지손가락을 놓았다. 그레이 슈트를 입은 한 남자가 막 사무실을 빠져나와 정면으로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눈에 그가 재강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달라진 점은 큰 키와 분위기밖에 없었다. 하지만 높은 콧대 아래 늘 미소를 매달고 있던 그의 입술은 굳게 다물린 채였고, 따뜻하던 눈빛은 냉기가 흐르는 듯 싸늘했다. 달라진 그의 분위기에 그녀는 선뜻 말을 걸 수 없었다.

“저기.”

목소리를 겨우 짜낸 그녀가 입을 열었지만 그의 보폭은 줄어들지 않았다.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자 소람은 심장이 덜컹거리는 것을 느껴야 했다.

그런 재강을 잡기 위해 소람은 빠르게 뒤돌아섰다. 하지만 그는 이미 멀어진 후였다. 가볍게 주먹을 말아 쥔 소람은 서둘러 재강을 뒤따라갔다.

밖으로 나온 재강은 계속해서 인도를 걷고 있었다. 재강의 뒷모습은 그의 얼굴만큼이나 냉랭해 보였다. 해가 저물어 쌀쌀해진 기온에 소람이 팔짱을 끼고 몸을 움츠렸다.

“재강아. 이재강!”

가로등 개수를 세며 조용히 그의 뒤를 따르던 소람이 재강을 불렀다.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에도 그가 무심하게 뒤를 돌아보지 않자 그녀의 눈빛이 실망감으로 물들었다.

참지 못한 소람이 재강의 앞을 막아섰다. 드디어 그와 눈을 마주한 그녀는 벅찬 감정을 느꼈다. 재회의 기쁨으로 한껏 올라간 그녀의 입가가 떨리기 시작했다.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여 그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담는 그녀와 상반되게 재강은 미미한 반응조차 없었다.

“뭡니까?”

몇 년 동안 그리워했던 그의 목소리가 귀에 감겨들었지만 그 대답은 그녀에게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머리가 흔들릴 정도로 놀란 소람의 눈빛이 망연해졌다.

“나야, 차소람.”

“그런데요?”

그녀를 알아본 기색도 하지 않은 그가 재촉하듯 메탈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느리게 걸음을 뗀 소람이 재강의 코앞에 다가섰다.

“정말 기억 안 나?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소람은 채근하듯 재강의 상의 소매를 잡았다. 갑작스러운 손길에 눈썹을 찌푸린 그가 그녀의 손을 탁 쳐냈다.

“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너 왜 그래? 나 이민 가고 얼마 안 있어서 갑자기 연락 끊더니. 무슨 일 있었던 거야?”

“그쪽 모른다고요.”

일언지하에 소람의 말을 부정한 재강이 몸을 돌렸다. 이마를 부여잡은 소람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재강을 바라보았다. 분명 외모와 목소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재강이 맞았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소람은 멀어지는 재강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상황을 파악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소람은 재강의 뒤를 쫓는 것을 포기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는 하나, 그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불의의 사고로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건 아닌지 염려가 될 만큼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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