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령 학생은 왜 지원한 거죠?”
“네?”
“노래 실력이 그리 뛰어난 것도 아니고, 춤 실력이 우월한 것도 아니어서 묻는 거예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가수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며 이 자리에 온 오디션 준비생들과는 오디션 보는 이유조차가 다르니까. 내가 오디션에 지원한 이유는…….
“아, 저는.”
“…….”
“사람을 찾으러 왔어요.”
“사람이요?”
“네, 제 남자친구를 찾으러 왔습니다!”

사라진 남자친구 찾으러 왔단다!
열아홉 해가 되도록 열일곱의 첫사랑을 잊지 못해 찾으러 나선 온다령.
귀여운 여우의 남자친구 찾기.
과연 첫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님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될까?


-본문 중에서-


“화보 촬영인데, 안 쓰게 생겼냐?”
말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화보촬영이란 말에 지레 짐작, 그가 모델임을 알 수 있었다. 옷 입는 것도 패션센스가 있었고, 기럭지도 훤칠했고, 얼굴도 매력이 있었기에 지레 짐작 했다. 그나저나 그가 모델인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서 긁힌 선글라스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덜어주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물어낸다는 것은 아니고.
“거기에는 선글라스 안 어울려요.”
“뭐라는 거야.”
“선글라스 하지 말라고요.”
“그럼 어쩌라고?”
“그쪽 얼굴은 말끔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선글라스를 끼면 얼굴이 안 살아요. 앞머리로 얼굴 다 가리고, 눈까지 가려서 뭐하려고요? 선글라스는 선택 미스에요. 얼굴을 다 가리는 것보다 다른 액세서리를 이용해서 얼굴 반은 드러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음……, 귀걸이나 음, 모자요! 그냥 모자 말고 페도라 쓰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그때 잘 어울리시던데.”
남은 열심히 예를 들어가며 말해주었는데, 눈썹을 꿈틀거리며 썩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확실히 선글라스보다는 페도라가 나은데 말이지. 귀걸이도 괜찮을 테고.
“음, 이거 할래요?”
짜증만 가득 안고 있는 석류찬에게 귀에 끼고 있던 귀걸이를 내밀었다. 학교에서 학생부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늘 밴드로 가리고 있던 귀걸이를 떼서 그에게 준 것인데, 반응이 영 탐탁지 않다.
“귀도 뚫었으니까 끼우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껴 봐요. 옷에도 잘 어울리고,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모양이 마음에 안 들어요? 이거 제가 제작한 거라 흔하지 않아요.”
검푸른 빛 도는 큐빅이 박혀 있는 작지도 크지도 않은 귀걸이 하나를 그의 앞에 놔주었다.
“끼고 싶으면 끼고, 말라면 말아요. 그리고 저 여기서 청소하니까 어떻게 해서든 선글라스 값은 갚아보도록 할게요. 음, 그래도 선글라스보다는 페도라가 어울릴 것 같아요.”
“네가 패션을 알아?”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패션에 관심이 많긴 했어요.”
“너 지금은 내가 바빠서 그냥 넘어가는데, 선글라스 물어내야 하는 거 잊지마. 알았어?”
그는 으름장을 놓고 내 귀걸이를 가지고 나갔다. 거 되게 빡빡하게 구네. 그나저나 이 선글라스를 어쩐담. 긁혀버린 자국이 선명한 선글라스를 보자 내 가슴이 쫙 갈라지는 기분이다.
“90만원이면, 알바를…… 석 달 넘게 해야 되는 거네. 언제 다 하냐.”
주말만 스타제이의 청소를 맡고 있는 내가 한 달에 받는 일당은 삼십 만원 안팎인데, 석류찬의 선글라스 값을 갚으려면 총 90만원이 필요했으니, 석 달 간은 꼼짝없이 열심히 일해야 했다. 지운이의 행방도 찾아야 했고, 스타제이의 연습실 위치도 아직 알아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아, 꼬였다. 청소를 목적으로 들어온 것도 아니었는데, 청소만 열심히 해야 되구나.
“저기, 청소부 옷 입고 있는 학생.”
“네?”
화장실에서 물기가 덜 짜진 대걸레를 들고 더러운 물을 버린 빈 양동이를 든 채, 털털한 걸음으로 복도를 나서고 있을 때, 누군가 나를 가리키며 불렀다. 멈춰서고 뒤를 돌자, 날 부른 것으로 생각되는 늘씬한 여자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이름이 뭐예요?”
“왜요?”
대뜸 이름부터 물어오는 여자의 행동에 의아함을 가득 안은 채, 되물었다. 여자는 가만히 있어도 포스가 느껴졌다. 잠시 주눅이 든 채, 여자를 쳐다봤다.
“류찬이한테 선글라스 대신에 귀걸이 착용하게 했죠? 페도라도 쓰게 해주고?”
설마, 선글라스 값 때문인가? 물어낸다고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일러바친 건가! 치사한 사람. 속으로 갖은 욕을 퍼부으려 준비하고 있는데, 그녀가 다소곳한 자세로 상냥하게 말해왔다.
“나쁜 뜻으로 묻는 거 아니에요, 돈을 청구하란 말도 아니고요. 그냥 단지 이름이 궁금해서 그래요. 이름이 뭐예요?”
“온다령인데요.”
“나이는요?”
“열아홉이요.”
“어린데, 왜 청소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냥요. 여기서 꼭 해야 되는 일이 있어서요.”
물어오는 그녀의 물음에 계속해서 답을 하게 되는 건, 그녀의 포스에 눌리기도 했지만 그녀의 상냥함 때문도 있었다. 아마 후자에 속하는 이유겠다. 강한 포스에서 느껴져 나오는 상냥함은 사람을 편하게 해주었다.
“아, 여기서 꼭 해야 할 일이라면 청소 말고 다른 일도 많은데. 해볼 생각 있어요?”
“뭘요?”
“스타일리스트, 해볼 생각 있어요?”
“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지운이를 빨리 찾는 일뿐이었는데 뜻밖의 제안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의 말을 따르면, 석류찬의 선글라스가 긁혔다는 얘기를 듣고서 선글라스를 대체할 만한 것으로 페도라를 가져갔는데 그가 어떤 애가 페도라를 말 하더라 했단다. 그게 나였고, 귀걸이도 착용하게 해주었다는 것에 그녀가 감탄하여 좋은 뜻을 가지고 물어온 듯 했다. 뜻밖의 제안을 받고, 그녀의 명함 한 장을 받아들었다. 첫 번째 알바를 마치고 월요일이 되는 날, 보미에게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더니 보미 역시 믿기지 않는 일에 적잖이 놀랐다.
“곰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너 참 재주도 좋아.”
“운이 좋았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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