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도 종이책 출간작 "샨의 여자"의 두 번째 외전.

얼음감옥에서 탈옥한 블은 고양이가 되어 대한민국으로 오게 된다. 혼자서 외롭게 살고 있던 유미는 길거리에서 블을 발견하고 고양이라고 생각한 채 집으로 데려와서 보살펴주기 시작하는데, 알고 보니 블은 인간 남자였다!




▶ 내용 발췌

― 아, 짜증나.
블은 꼬리로 휴지를 잡아 얼굴을 닦았으나 김칫국물은 빠지지 않았다. 투덜거리던 그는 욕실로 걸어갔다. 수도를 틀어 얼굴을 씻었지만 털이 젖어서 그런지 여전했다.
김치는 맛있지만 국물은 정말 지독하네.
블은 혀를 내두르다가 거울을 보았다. 작은 고양이가 비춰지고 있었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고, 동시에 욕구가 솟구쳤다. 보잘것없는 고양이의 형체에서 벗어나 당당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고픈 강렬한 욕망.
블은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한달 쯤 전에 인간으로 돌아갔을 때는 5분밖에 버티지 못 하고 쓰러졌으나, 유미의 보살핌과 회복력 아래 이젠 약간이나마 힘이 돌아온 상태였다. 조금은 더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블은 변신을 시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긴 은발에 거대한 근육을 갖춘 건장한 남자가 되었다.
“하아…….”
격심한 현기증이 이는 동시에 입에서 긴 신음이 길게 흘러나왔고 온몸이 해파리처럼 흐느적거렸다. 하지만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법. 블은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샤워 꼭지를 돌려 물을 틀었다. 수증기가 일어날 정도로 뜨겁고 강한 물줄기가 알몸으로 쏟아졌다.
다소 아찔했으나, 긴장도 풀리자 블은 샤워를 만족스럽게 생각하며 꼭지를 잠그고는 욕실 밖으로 나왔다. 수건으로 몸을 닦을 정신은 없었다. 타는 듯한 갈증만 가득했으니까. 블은 부엌으로 걸어가 냉장고를 열었다. 막 병째로 물을 벌컥벌컥 마셨을 때였다. 시선을 느낀 블은 병을 내려놓고 몸을 훽 돌리며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하지만 현관 쪽에 등장한 건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블은 눈을 깜빡인 뒤 말했다.
“야근한다더니 일찍 왔네?”
“내일로 미뤄졌…….”
유미는 대답을 하다 말았고, 블은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머리가 세 개인 사람을 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왜 그래?”
블의 질문에 유미는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한참 뒤에나 말이 흘러나왔다.
“누, 누구시죠? 누군데 내 집에……. 그리고…….”
블이 자신이 현재 취하고 있는 형체를 깨달았을 때, 유미의 시선이 밑으로 향했다. 바로 벌거벗고 있는 그의 다리 사이로. 동시에 유미의 얼굴이 토마토마냥 시뻘겋게 변했다.
“변, 변태애애애애!”

wdlsr@naver.com
한국로맨스소설작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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