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그를 보호해야 했다. 

그의 보호를 받아야만 했다.

그 어떤 관계도 아니었지만 

그랬기에 더더욱 함께 있고 싶었다.

피가 섞이지 않은 누이의 아이, 노루를 맡게 된 이리. 10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지만, 현재의 안락함을 깨고 싶지 않았기에 외면하려 했다. 결국 노루는 독일행을 결심하는데…….

사람들의 시선은 변치 않을 터였다. 남들이 보기에 그는 조카를 아끼는 삼촌이었고, 두 사람의 관계도, 그의 마음도 거기서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노루가 비에 젖지 않으면 그걸로 됐다. 우산을 가지고 온 학부모들 사이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던 아이의 환한 얼굴을 보았을 때 느낀 감정은 순수한 기쁨이었다고, 지금도 맹세할 수 있다. ……해서 노루에게 무엇도 기대하지 않고, 어떤 부담도 주지 않으려 했는데. 

「외삼촌은 나랑 지내는 거 안 불편해요?」

「남들과 달라서 힘들었던 적 있어요?」

그 아이의 입에서 왜 새삼 그런 말이 나오게 된 걸까.

2. 작가 소개

목화솜

소년의 사랑을 전파하기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BL 백 권 쓰고 싶습니다.

▣ 출간작

외로움의 온도(전2권)

3. 차례

#01. 은이리

#02. 반노루

#03. 띠동갑

#04. 자목련 

#05. 가족놀이

4. 미리 보기

“이만 끊겠습니다.”

‘통화 종료’라는 글자가 사라진 뒤에도 이리는 한동안 액정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최근 무언가 이상해졌다고 느낀 것은 역시 그저 감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확히는 지난주부터였던가. 어째 나쁜 예감이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그는 뻣뻣해진 손가락을 억지로 움직였다. 목록에서 최근 통화 내역을 찾아 발신인의 번호를 저장하려던 손은, 공중에서 한번 멈칫하고는 이내 삭제 버튼을 눌러버렸다.

필요하면 또 전화하겠지.

아예 전화하지 않으면 더 좋고.

휴대전화를 뒤집어버린 그는 상대방의 연락처를 지웠던 그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주임님, 바쁘세요?”

뒤에서 밝은 목소리가 말을 걸었다. 억지로 꾸민 듯 부자연스러운 어조였다. 후배인 목련이었다.

이리는 어깨 너머로만 무슨 일이냐는 눈짓을 보냈다. 방해해서 미안하다는 듯, 그녀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팀원들 커피 사러 가는데, 주임님도 한잔 사다 드릴까 하고요.”

그녀라면 말을 걸기 전부터 그가 됐다고 할 줄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도 굳이 묻는 것은 지난주 그에게 한번 신세를 졌기 때문. 이쪽에서는 별로 마음에 두고 있지 않으나 미안하고 쪽팔린 마음에 커피 한잔이라도 대접하고 싶은 것이리라. 또 그게 아니더라도 팀원들을 챙기는 것이 자기 일의 하나라고 여기는 그녀였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됐어, 난.”

짧게 내뱉고 고개를 돌리는 그의 머릿속은 이미 방금 전 통화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어쩌면 그자도 그저, 일이기 때문에 형식상 전화를 걸었는지도 모른다. 담임교사로서 학생의 성적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니까. 그것도 전교 석차가 한 자리를 넘어가본 적이 없는 학생이라면 더더욱.

「전교 석차가 10등 밖으로 밀려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런 첫마디를 들었을 때에는 그래서 뭘 어쩌란 건가 싶었다. 한 학년 학생 수가 600명을 넘어가는 큰 학교다. 600명 중 60명 안에만 들어도 상위 10퍼센트가 아닌가. 그러나, 녀석의 담임교사라는 작자가 다음에 내뱉은 말에는 약간 신경이 쓰였다. 

「요즘 아이한테 무슨 일이 있나요?」

‘아이’라는 말이 묘하게 거슬렸다. 이를 드러낼 수는 없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니 상대는 ‘그래요…….’ 하고 말끝을 흐리는 것이었다.

「어쨌든, 외삼촌 되시는 분께서 신경을 좀 써주십시오. 중요한 시기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저희들이 노루한테 기대가 큽니다.」

저희들이라니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지적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이리는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담임이라는 작자는 이쪽의 반응이 못내 불만스러운 눈치였다. 역시 친부모가 아니니 학생 지도에 관심이 덜하다고 여기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리는 상대가 바라는 답이 뭔지 관심도 없었고 안다 해도 그대로 따르고픈 마음도 없었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오직,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라는 그 말뿐.

그 아이, 노루에게 무슨 일이 있는 줄이야 며칠 전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다. 전화를 받고서는 그게 떨어진 성적 때문이었나 싶기도 했지만 그런 걸로 며칠씩이나 고민을 할 녀석은 아니었다. 더구나 이리는 소년에게 성적에 대한 압박은 한 번도 준 적이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이 저 알아서 공부하고 매학기 꼬박꼬박 상을 타 오는 아이였다. 한번 성적이 떨어진 걸로 낙심할 만큼 심약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도 이리는 알고 있었다.

그러면, 대체 무엇 때문에?

팽개쳐두었던 일을 잡으면서도 이리의 머릿속에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조카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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