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동안 오직 한 남자만 바라보고 살아온 매혹적인 여인 이연희.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첫사랑 한상규. 그러나 그 첫사랑을 허무하게 대학 동창에게 빼앗겨야만 했고, 연희는 결국 커다란 상처를 가슴에 새기게 된다. 그 상처를 안고 한국을 떠났다가, 4년 만에 다시 돌아 온 그녀는 작은 카페 하나를 차리게 되고 그곳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랑이 두 번째로 찾아오는데……. 그 남자 김지훈. 3개월 동안 그녀를 바라보다 드디어 그녀를 얻게 되고 연희와 지훈은 애틋한 사랑을 시작한다. 그러나 연희 앞에 다시 그녀의 첫사랑 상규가 나타나고, 그녀에게 돌아오겠다고 하는데…….
처절했던 첫사랑의 아픔을 간직한 연희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 연희를 만난 지훈, 그리고 연희의 아픔이었던 상규. 이 세 사람이 엮어가는 애틋한 사랑이야기.

<본문 중에서>

“cafe MOA보다는 못하지만, 이거 괜찮더군요.”
그는 아직 따뜻한 온기가 감도는 캔 커피 하나를 그녀에게 내밀며 그녀 옆에 앉았다.
“왜죠?”
갑작스레 그녀가 물었다. 순간 당황한 지훈은 커피를 따서 한 모금 마셨다.
“좋아지더군요. 그쪽이…….”
담담히 물은 그녀의 질문에 너무도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지훈에게 연희는 큰 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았던 것 같더군요. 처음, 서점에서 봤을 때…….”
“서점이요?”
연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점에서 이 사람을 본 적이 있었나?
“사거리 문성 빌딩 지하에 있는 대천 서점, 거기서 처음 봤습니다. 연희 씨를…….”
연희 씨라……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다정함을 느껴 기대고 싶었다.
“아, 대천 서점…… 가끔 가요. 거기서 절 보셨나요?”
맑고 큰 갈색 눈을 동그랗게 뜨며, 조그맣고 도톰한 입술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본 지훈은 가슴이 뛰었다. 아마 자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더 많이 이 여자에게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서른셋……, 제 나이입니다. 연희 씨를 한 번 진지하게 만나보고 싶군요. 아마 오래도록 차가웠던 제 마음을 녹여 놓은 사람은 연희 씨가 처음일지 싶습니다.”
피워 놓았던 모닥불이 점점 꺼지려고 했다. 불씨가 점점 작아짐에 따라 공원 가로등에 의지해 온 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와 그렇게 헤어지고 닫아 두었던 마음……. 이 남자의 마음이 차가웠다면 그녀의 마음은 이미 얼음이었다. 이 얼음을 이 사람이 녹일 수 있을까? 그동안 이 얼음을 깨려고 도전한 몇몇 남자들이 있었지만 쉽게 깨어지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연희는 다른 사람은 거부해 왔다. 근데 이 사람은 다르게 다가왔다. 마치 얼음 모퉁이 한구석이 살짝 녹아내린 듯한 느낌이었다.
“서른……, 제 나이에요. 서른까지 살아오면서 참 많이도 힘이 들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어쩜 제겐 금기시된 목록 중 하나일지도 몰라요.”
지훈은 그녀가 마시지 않고 만지작거리던 캔 커피를 가져가더니 꼭지를 땄다. 그녀에게 커피를 건네면서 나직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그 금기를 깨고 싶군…….”
연희의 눈빛이 흔들렸다. 짙은 갈색 눈이 불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그 떨림이 고스라니 드러났다. 이 남자가 싫지 않다. 왜일까……. 가만히 생각에 잠기던 그녀는 그가 따준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면서 입술을 떼었다. 이미 식어 차가운 커피였다.
“저, 감당하기 힘들 거예요. 무척 힘들고 어려운 여자거든요.”
쌀쌀한 바람이 두 사람이 앉은 벤츠를 쓸고 지나갔다. 그녀의 머리가 바람의 방향에 따라가 날렸다. 짙은 커피 향기가 지훈에게 다가왔다.
“쉬운 문제는 늘 시시하더군요. 언제나 남들이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운 문제만 붙잡고……, 그리고 그걸 결국 풀어냈을 때의 그 희열감……. 제가 맡고 싶군요. 감당하기 힘들고 어려운 여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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