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글쎄요…… 난 어디서 온 걸까요? 아주 먼 곳에서 온 것 같은데……. 아주 그립고, 소중한 걸 찾아서…….”

앗셀 제국 대대로 걸출한 무인(武人)을 배출해온 반시온 가(家)의 쌍둥이 형제 중 하나인 가네샤 반시온. 앗셀 황실의 직속기사단인 가네샤는 어느 날 눈밭에서 기억을 잃은 한 여인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이사라’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소중한 사람을 애타게 찾는 이사라. 그런데 그녀를 보면 왜 심장이 욱신거릴까…….

“아주 소중하고 그리운 사람. 내가 기억을 다 잃어버려도 좋을 만큼 좋아한 사람. 아마 난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 같아요.”

“…….”

‘망할 놈의 신 같으니라고. 기어이 이 소리를 듣게 하려고 아까 마음도 정리하지 못하게 한 거냐! 내가 왜! 고백도 못한 상황에서 차이는 것부터 해야 하는데?’

신이 눈앞에 있다면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 ‘가하 에픽’은 다양한 시대, 색다른 소재, 독특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도서출판 가하의 새로운 브랜드입니다. 로맨틱한 판타지가 가득한 가하 에픽, 지금 만나보세요!

2. 작가 소개

깡다케이

반짝거리고 예쁜 로맨스가 좋아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현재 조아라(www.joara.com)에서 연재 활동 중입니다.

▣ 출간작

템페스트

야만과 이체

3. 차례

#레테의 숲

#Angel Dust (1)

4. 미리 보기

“나한테 맨날 이런 음식만 해줬잖아요. 그걸 난 다 먹었지. 살찌는 데 좋은 음식인 것도 모르고. 가네샤는 활동량이 많으니까 괜찮지만…… 아니, 오늘 같은 일은 전혀 괜찮지 않지만! 아까 심장이 멎는 줄 알았잖아요. 사흘 만에 나타난 사람이 머리부터 피를 뚝뚝 흘리고 문 앞에 서 있어서 많이 다친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요? 아, 아직도 손발이 떨리네.”

이사라의 목소리에 떨림이 묻어난다. 그에 마음 한켠이 욱신거린다.

‘악! 이거 싫어! 다친 것도 아닌데 왜 욱신거리는 거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감각에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일부러 말을 돌린다.

“그냥 사고가 좀 있었어.”

그래, 사고다.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그런 사고.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그것보다 사흘 동안 뭐 했어?”

“사흘 동안? 아, 이것저것 좀 찾아봤어요. 무스타파 빈 우르크라는 초대 앗셀 황제부터 차츰차츰 범위를 넓히는 식으로.”

“그래서 성과는 있고?”

그 말에 이사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무스타파에 대한 기록을 읽을 때마다 나오는 이름 하나하나를 보면서 내가 찾고 있는 게 뭔지 어렴풋이 감이 잡혔어요. 난 그 황제의 이름을 통해 누군가를 찾고 있는 거예요.”

그 말은 찾고 있는 게 사람이란 뜻이었다.

“아주 소중하고 그리운 사람. 내가 기억을 다 잃어버려도 좋을 만큼 좋아한 사람. 아마 난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 같아요.”

“…….”

‘망할 놈의 신 같으니라고. 기어이 이 소리를 듣게 하려고 아까 마음도 정리하지 못하게 한 거냐! 내가 왜! 고백도 못한 상황에서 차이는 것부터 해야 하는데?’

신이 눈앞에 있다면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 ◆ ◇

천하의 가네샤 반시온이 왜 자신의 감정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백 한마디 하지 못하고 접을 생각부터 했는가. 그것은 스스로도 무의식중에 눈치 채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뭔가를 찾아 헤매는 이사라의 눈동자에 비치는 것이 끝 모를 애정이라는 것을.

가족을 향한 것도 아니고, 물건에 대한 것은 더더욱 아닌 그 애틋함이 연인을 향한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시작할 생각을 애초에 하지 않았던 거다. 근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걸 주변 사람들이 부추겨서 끄집어냈다. 일생에 정말 도움 하나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왜 이렇게 아침부터 뚱하냐?”

“제가 언제요.”

여기 그 결정타를 날린 이가 말을 건넨다.

“뭐가 불만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집에는 들어가려무나. 그렇게 집에 가고 싶어 안달이었잖아. 근데 요새 집에 안 들어간다는 소문이…….”

“잘못 들으셨겠죠. 잘 들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아주 늦게 들어가서 아주 일찍 나오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날 네가 그렇게 돌아가고 무슨 진전이나 있을까 했는데 네 모습을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왜? 이사라랑 잘 안 되냐?”

또 결정적으로 쓸데없는 말로 사람 속을 긁는다.

“부단장님, 이사라 얘기는 지금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일하면 안 될까요? 아주 빡세게! 그렇지, 동부에 도적들이 출몰한다는데 도적소탕이라도 갈까요?”

모처럼 의욕을 보이는 가네샤지만 말투에서 느껴지는 짜증을 알아채지 못할 부단장도 아니었다. 가네샤의 그 같은 대답에 한참을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루크 부단장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웃는다.

“그래, 한마디로 실연당했다 이거지?”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왜 한마디로 저런 정리가 나올 수 있는 건지 가네샤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어딘지 모르게 즐거운 낯빛을 하고 있는 루크 부단장의 얼굴을 보면서 가네샤는 빨리 자신의 지위를 높이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눈에 확 띄는 그런 일을 맡아서 꼭 성공시켜야지. 그렇게 공적을 하나하나 쌓아서 그 공로로 출세하리라. 그래서 꼭, 이 사람 위에 설 테다. 이대론 스트레스 받아서 살 수가 없다.

왜 자꾸 가만있는 사람을 참깨 볶듯 볶아대? 실연이고 뭐고 처음부터 그런 전개가 가능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 관계가 될 만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저 인간의 몇 마디 때문에 지금 자신의 꼴이 너무 우스워졌다.

진짜 선의(善意)로 시작한 거라고. 이 말을 가네샤 자신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한 백 번쯤 한 것 같다. 근데 왜 아무도 안 믿어줘? 믿어주기는커녕 의심, 의심, 의심. 그래서 결국은…… 결국은……!

기억을 되찾는 것을 도와주겠다, 자립하는 걸 도와주겠다 약속을 했으니 이제 와서 자기가 한 말을 번복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걸 도와주자니 심사가 여간 뒤틀리는 게 아니다. 구하지 말았어야 해, 그게 아니라면 카스트림까지 데리고 오질 말았든가.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있는 것 같다고? 내가 그걸 어떻게 도와줘?’

한 입으로 두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집에 들어가면 뭔가를 바라는 듯한 얼굴로 눈을 빛내는 이사라가 무섭게 느껴진다. 초대 황제의 기록에 나온 이름들을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찾아 살펴볼 심산인 건지 가네샤만 보면 관련 문서와 관련 장소를 알려달라 조르니 어떻게 무섭지 않을 수가 있을까. 가네샤가 가르쳐주길, 안내해주길 원하는 그 눈빛이 빤히 보이는데 가르쳐주지 않을 수도 없고, 가르쳐주자니 본인의 처지가 너무 비참했다.

그러다 기억이 돌아오면? 사랑하는 사람이 기억나면? 눈앞에 나타나면? 그런 다음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니 너무 초라해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알아차렸을 때 바로 접었어야 했는데. 그 찰나의 기회마저 날려버리고 이게 뭐 하는 짓이람.

지금까지처럼 끝내고 싶을 때 끝내지지가 않는다. 대체 무슨 차이가 있어서 이렇게 진전 없는 마음을 끌어안고 질질 끌고 다니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봐도 답이 없다.

‘차라리 고백을 해? 그리고 깔끔하게 차이면 차라리 마음을 쉽게 접을 수……. 악! 대체 왜 차일 걸 알면서 고백씩이나 해야 하냐고! 차인다는 전제하에 고백해보겠다는 생각을 하다니, 천하의 가네샤 반시온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하루 종일 가네샤의 뒤를 쫓아다니며 실연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해 설교 아닌 설교를 해대는 루크 부단장에 못 이겨 오늘은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루크 부단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윙윙거리고 맴도는 것만 같다.

그래. 일단 도와주기로 한 거 도와주자. 그리고 이사라가 기억을 찾든, 그 사랑하는 사람을 찾든 그다음에 정정당당히 싸워서 해결을 봐도 봐야지,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 되잖아. 도무지 싸워야 할 실체가 보이질 않으니 망상의 날개만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커다래지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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