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인어공주의 물거품 같은 사랑이 이런 것일까. 곧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행복해지는 지금 같은 마음…….

온몸이 얼음으로 만들어진 얼음 왕자가 살고 있는 새하얀 얼음 왕국. 그곳에 문을 두드린 길 잃은 한 소녀. 따뜻한 온기를 가진 그 소녀의 단 사흘만 성에 머무르게 해달라는 간절한 부탁에 왕자는 이를 허락하게 된다. 그것이 실수였을까? 얼음 왕자에게 걸린 심장의 저주가 깨어나고야 마는데……. 환생화(還生話)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 ‘얼음 왕자의 사랑’!

“애송이가 없어서 많이 굶주렸던 모양이야? 아무에게나 달려드는 걸 보니. 생각보다 쉬운 여자였던 모양이군.”

“그렇게 보였다면 유감이네요. 가벼운 키스 같은 건 그쪽한테는 인사치레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 아닌가요? 나한테도 별반 다를 게 없어요. 고마움의 뜻이니까요. 이렇게 쉽게 돈을 탕감해준다는데 당연히 해드려야죠.”

※ ‘가하 에픽’은 다양한 시대, 색다른 소재, 독특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도서출판 가하의 새로운 브랜드입니다. 로맨틱한 판타지가 가득한 가하 에픽, 지금 만나보세요!

2. 작가 소개

청화(聽樺)

저질 체력인 탓에 산보다 바다를 좋아해서 항상 바다 근처에 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물 공포증이 있어 해수욕을 절대 할 수 없는 일인.

가슴 벅찬 감동과 눈물을 쏙 뽑아내는 애절함이 공존하는 작품을 써보는 것이 생의 목표인 은둔형 외톨이.

▣ 출간작

7천 년 전의 그대에게(환생화(還生話) 시리즈 1부)

얼음 왕자의 사랑(환생화(還生話) 시리즈 2부)

그대입니다(환생화(還生話) 시리즈 3부)

3. 차례

#프롤로그 4

#1. 노출

#2. 분노

#3. 진심

#4. 계약

#5. 약속

#6. 생일

#7. 키스

#8. 보답

#9. 협박

#10. 방황

#11. 이유

#12. 자각

#13. 고백

#번외1. 하얀 천사

#번외2. 얼음 왕자 이야기

4. 미리 보기

아령은 자신의 키에 맞춰 끌어당긴 그의 입술이 맞닿자,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터져버릴 것처럼 날뛰는 심장은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한껏 뒤꿈치를 들어올렸던 두 다리도 후들거렸다.

펜트하우스로 무작정 달려갔던 그날 밤, 만취상태인 그가 갑작스레 했던 키스처럼. 감미롭고 황홀했던 그 순간을 고스란히 그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아령은 자신의 입술로 그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 듯이 건드렸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혀끝을 내밀어 그의 입술을 둥글게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불쑥 그의 혀가 자신의 입 속으로 파고들어왔다.

번쩍 눈이 뜨인 아령은 놀란 마음에 그를 힘껏 밀어버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나버린 돌발상황.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할지. 머릿속은 새빨간 신호가 밝혀진 채 모든 이성이 마비된 상태였다.

조건을 내건 건 그였지만,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덤벼 든 자신의 대담한 행동으로 그가 더 난처하고 민망해져버린 건지도 몰랐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아령은 당황한 눈망울을 감추며 새빨개진 얼굴을 숙여버리고 말았다.

“저…… 그, 그게…….”

그냥 살짝 입을 맞추고 고마움을 표하면 될 것이라 너무 쉽게 단정 지었던 건지도 몰랐다. 그는 남자라는 사실을 간과한 채. 경험이 없는 서툰 키스에 자신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우습게도 그의 혀가 들어오는 그 짧은 순간에 수만 가지의 생각이 밀려든 탓이었다.

갖가지 음식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 뒤라 분명 자신의 입 속은 자극적인 냄새로 뒤섞여 있으리라는. 왜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이 자신의 행동을 좌우했던 것일까? 키스도 할 줄 모르냐는 빈정 어린 말을 듣는 것보다도 입 냄새에 인상을 찡그릴지도 모르는 그를 떠올리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영화에서는 아무렇게나 키스를 퍼붓던데, 어째서 자신은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인지. 그토록 원해 놓고도 부끄럽고, 자존심만 상했다.

아니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다 핑계일지도 몰랐다. 정신을 몽땅 빼앗아 가버릴 그의 키스를 받다 보면 황홀경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지르고 그의 목에 매달리려 할지도 몰랐다. 지금이라면 분명 그럴지도 몰랐다. 어쨌든 문제는 갑작스레 밀쳐버린 자신의 행동 때문에 그의 미간이 구겨졌다는 똑같은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래나 저래나 똑같았을 결과 말이다.

“상대가 나라서 그만둔 건가?”

“네?”

“용기는 가상했는데 말이지.”

그가 뭐라고 물어 와도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답을 해도 멍청해 보일 것 같아서. 키스를 거부당하는 느낌이 어떤 것일지 조금은 알 것 같았으니까. 중저음의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는 싸늘한 바람과 더불어 아령의 가슴을 꽁꽁 얼려놓고 있었다.

“애송이가 없어서 많이 굶주렸던 모양이야? 아무에게나 달려드는 걸 보니. 생각보다 쉬운 여자였던 모양이군.”

아령은 맞잡은 두 손으로 왼쪽 가슴을 가렸다. 산산이 깨어진 심장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처음부터 그는 장난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령에게는 정말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상상했던 순간이었는지도 몰랐다. 우습게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덫이었던 거였다. 이렇게 조각조각 나버리는 걸 보니.

“그렇게 보였다면 유감이네요. 가벼운 키스 같은 건 그쪽한테는 인사치레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 아닌가요? 나한테도 별반 다를 게 없어요. 고마움의 뜻이니까요. 이렇게 쉽게 돈을 탕감해준다는데 당연히 해드려야죠.”

비아냥에 더욱 당당하게 대답하는 그녀를 보자 지환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더니 이내 아랫입술이 슬며시 말려들어갔다. 후덥지근하던 발코니에는 순식간에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것 같은 오한이 스며들었다. 싸늘한 바람 때문일까? 아령의 머릿속도 얼음처럼 차갑게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그는 신세를 지고 있는 집주인이자, 친구의 애인일 뿐. 사랑하는 연인인 설희의 소중한 친구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이 이런 자리를 마련해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돈으로 대가를 치를 약속이었으니 그도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런 줄도 모르고 홀로 들떠서 오버한 꼴이라니. 그가 얼마나 자신을 우습게 여겼을까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돌이켜 보면 키스를 거부한 것이 잘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진심으로 그를 원했으니까. 그것만큼은 절대 거짓이라 인정하고 싶진 않았다.

“그게 애송이와 나누는 키스인가? 다른 여자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라서 말이지.”

“그런가요? 전 그쪽과는 다르게 한 사람하고만 해봐서 잘 모르겠네요.”

“……그래?”

더욱 난처한 질문만 하는 그를 바라보던 아령의 얼굴은 잿빛이 되었다. ‘당신이 가르쳐준 거잖아요.’라고 말할 순 없었다. 그러면 정말 모든 것이 다 흐트러져버릴 테니까. 숨겨오던 사랑도 거품이 되어버릴 테고, 친구를 위한답시고 흔들리던 의리도 재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건 진실을 얘기하지만 진실이 될 수 없는 말들뿐이었다.

12시를 넘기지 말라던 마법사의 말을 어긴 신데렐라가 된 것처럼 입고 있던 화려한 옷도 사라져버리고, 신고 있던 유리 구두마저 깨어진 볼품없는 모습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원래 이런 것이었는데. 잠시 현실을 도외시 했던 자신의 본모습이 너무나 뼈저리게 다가와 있었다.

“난 그만 퇴장할 시간이군. 오늘은 친구들과 여기서 즐기는 게 어때? 오랜만에 나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말이야.”

“나야 좋죠. 숨도 쉬기 힘든 월세생활에서 해방이니까요.”

그가 자신에게 하는 것처럼 아령도 그를 담담하게 대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가시 돋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며 쌀쌀맞게 지나쳐 가버렸다. 화가 난 것 같은 지환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령은 괜한 짓을 한 자신을 후회하며 가슴을 내리쳤다. 그렇게도 아파하더니 감각이 사라져버렸는지 심장은 뛰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정지해버린 세상처럼.

친구들과 인사를 건네며 돌아서는 지환을 보면서 아령은 그가 남기고 간 와인 잔을 들어 올렸다. 온기라곤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얼음장 같은 와인 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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