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오르면 그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천년을 내려온 나라 건(乾).
‘죽은 자(死者)의 칼’이라 불리는 건(乾) 역사상 최고라 일컫는 무사, 류.
그리고 고귀한 신분으로 나라의 대례를 주도하는 연무단의 단주, 아리.
잘못 꿰어진 첫 만남으로 인해 운명은 그들의 사랑을 비틀었고
끝내 두 사람에게 죽음을 선사하였다.
죽는 순간 류에 대한 사랑을 깨달은 아리의 염원은
비틀어진 운명을 바로 잡기 위해 그녀를 스무 살, 류를 만나기 전으로 이끈다.
과연 아리는 전생의 운명을 바꾸어 현재의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운명의 수레바퀴의 정해진 궤도와 그것을 바꾸고자 하는 아리의 노력이
교묘하게 교차하며 아리와 류를 새로운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당긴다.

아리 : 고귀한 신분의 귀척으로 냉정한 이성과 지혜를 겸비한 여인. 나라의 대례를 주도하는 연무단의 단주이다.
류와의 잘못된 인연으로 전생을 비극으로 맞았기에 그와 연을 맺지 않으려 하나 사랑은 어찌할 수 없는 법. 류와의 만남이 거듭될 때마다 아리의 번뇌 또한 깊어간다.

류 : 평민 출신으로 타고난 용맹과 실력, 그리고 인덕으로 중장군의 지위에 오른 무사. 아리를 첫 만남에서부터 마음에 두나 자꾸 속마음을 속이는 아리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다. 그러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리의 사랑을 이끌어 낸다.

**

“바람이 내게 이걸 건네주었소. 마치 그대와 내가 서로를 알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이오.”
류가 농을 하며 댕기를 여인에게 건넸다.
오랜만의 일이었다. 여인에게 관심을 갖고 수작을 거는 것은.
류는 그런 자신이 멋쩍어 웃었다.
“버리십시오.”
여인이 쌀쌀맞게 말했다. 너무도 차가워 웃는 류를 그대로 얼릴 듯하였다.
류가 얼굴을 굳혔다.
“무슨 뜻이오?”
“그대의 손을 탔으니 내게는 쓸모없는 물건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꽉 다문 입술이 단호하였다.
여인은 그렇게 말하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뒤돌아섰다. 앞서 걸어가는 걸음에는 서두름이 어려 있었다. 그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더러워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듯하였다.
그 모습에 류는 노화가 끓어올랐다. 천한 출신으로 중장군의 지위에 오르기까지 뭇 사람들의 천시와 천대를 수없이 받아왔고 이보다 더 심한 모욕도 겪어봤지만 이처럼 화가 솟구친 것은 처음이었다.
류는 성큼성큼 걸어 여인의 손목을 거칠게 낚아챘다. 하지만 손안에 잡힌 손목이 너무도 여리고 가늘어 자신도 모르게 힘을 스르륵 뺐다. 조금만 힘을 주었다가는 뚝 부러질 것만 같았다.
“무례한!”
여인이 화를 내며 류의 손을 내쳤다.
“열은 열로 물리치는 것이 이치이듯 무례에는 무례로 맞서는 것이 순리 아니겠소? 그러하지 않는다면 그대의 버르장머리는 누가 고치겠소?”
류가 노기를 억누르고 싱글싱글 웃었다.
“감히 천한 출신의 중장군 따위가!”
짝!
여인의 고운 손이 류의 뺨에 선명한 붉은 자국을 남겼다.
“옷차림이 수수하다고 하여 내가 네 희롱거리라도 된다 싶었더냐? 천것이 알량한 중장군에 오르더니 세상이 다 네 것인 양 눈에 뵈는 게 없는 것이더냐? 나는 네놈 따위가 수작을 걸 만한 하찮은 궁인 따위가 아니니라!”
여인은 싸늘하게 내뱉었다.
류는 씁쓸하게 웃었다.
여인은 겉은 단아하고 수수하나 그 속은 여느 귀척의 여인 못지않게 오만하였다.
“아, 그러십니까? 미천한 소인이 미처 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무례를 범했나이다. 이 댕기가 제 손에 들어오자마자 버렸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류는 댕기를 손에서 떨어뜨렸다. 그리고 시선을 여인에게 고정시킨 채 발아래 떨어진 댕기를 살며시 지르밟았다.
여인의 양미간이 파르르 떨렸다. 얼굴에 열기가 오르는지 뽀얀 볼에 불그스름하게 홍조가 들었다. 노기를 홧홧하게 세우고 있었지만 그것이 더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이, 이!”
여인이 말을 맺지 못하고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류는 여인의 손을 붙잡았다.
“놓아라!”
“놓으면 또 뺨을 맞을 게 뻔한데 어떻게 놓겠습니까?”
류는 여인의 화를 일부러 돋우며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여인이 류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거세게 몸부림을 쳤다.
“가만있지 않으면 확 안아버릴 것이오.”
류가 여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와 동시에 여인의 격렬한 몸짓이 멈추었다.
류는 여인의 인형 같은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나비는 꽃의 아름다움에 이끌리는 게 아니라 향기에 이끌린다오. 그대는 껍데기는 그럭저럭 봐 줄만 한데 알맹이가 성그니 사내의 사랑을 받으려면 그 못된 버르장머리부터 고쳐야겠소.”
류는 여인을 놓아주며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여인을 남겨두고 휘적휘적 앞서 걸어갔다.

- 본문 중에서 -

 
2017년 세이렌 공모전 입선 수상.
2016년 카카오 페이지 x 동아 장르 소설 공모전 특별상 수상.
2013년 북큐브 주관 ‘2013년 대한민국 e 작가상’ 입선 수상.

지은 책으로는 ≪입술에 스치는 혀≫, ≪삐뽀삐뽀! 사랑주의보≫, ≪초야 上, 下≫, ≪중독된 연인 1, 2≫, ≪사랑에 빠지는 7초의 법칙≫, ≪키스의 열량≫, ≪레디 액션!≫, ≪사랑에도 정의가 필요하다≫ 등이 있다.
hong-ryan@hanmail.net

미디어 리뷰가 없습니다.

별점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