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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악마를 집어삼킨 어린양
보풀 지음로망띠끄201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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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 979-11-86054-0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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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입사해서 좋아라했더니, 요상한 별명이 붙은 것도 모자라 ‘개만족’ 부서라니.
난 몰랐어! 몰랐다구!
어린양의 요졸복통 회사 적응기.
-본문 중에서-
“실수였지만, 사과드리겠습니다.”
“사과할 짓을 하긴 했나 보네?”
사장님의 말투는 내가 일부러 사장님의 입술을 훔쳤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니까 방금 있었던 일은 어쩔 수 없었던 사고였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언제 사과를 했냐는 듯이, 화를 내는 나를 보며 사장님이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사고든 뭐든 사과는 받지 않겠어.”
사과를 받지 않겠다는 사람에게 굳이 잘못도 없는 내가 사과를 강요할 필요는 없지.
“그럼 사과 안 한 걸로 하…… 읍!”
언뜻 사장님의 얼굴 위로 장난기 어린 미소가 스쳤고, 나머지 말은 사장님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벌어진 입으로 입술보다 뜨거운 것이 침입해 들어왔다. 사장님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자, 머리를 움켜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낯 뜨거운 소리가 귀에 들렸다. 뜨겁고 축축한 것들이 부딪치는 소리였다.
혼미해져 가는 어지러운 머리를 뚫고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한 만큼 되갚아 줄 거니까…….”
<미리보기>
음식점 주차장에서 가만히 앉아서 오지 않는 사장님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뭔가 울컥하고 넘어온다. 그게 뭔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그저 마냥 화가 날 뿐이었다.
젠장,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 거지? 운전석에 앉아서 엉덩이만을 이용해서 펄쩍펄쩍 몇 번 뛰었다.
“밥을 먹었으면 즉각, 즉각 나오라고!”
들어주는 이 없는 불평을 혼자 요란하게 차까지 들썩일 정도로 하고 있으려니, 어두운 주차장을 가로지르는 고양이 한 마리가 놀라서 도망치는 게 보였다.
지금쯤 비싸고 맛있는 저녁을 먹은 후, 멋들어지게 건배를 하고 있겠지?
이세아든, 다른 여자든, 누구나 한 번쯤 뒤돌아보게 생긴 미인이 ‘사장님, 정말 좋아요’라고 남자의 애간장을 녹이는 아양을 떨면 귀신도 홀린다는 그 얼굴로 ‘나도, 좋아’ 이러면서 아주 짝짜꿍을 하고 있겠지?
또 한 번 엉덩이를 들썩 들썩거렸다. 사장님이 내게 심통을 부려도 이렇게 화가 나진 않았었는데, 이상하다.
에잉, 모르겠다. 그러든지 말든지.
한동안 짜증과 싸우던 나는 의자를 뒤로 젖혀 몸을 편하게 눕혔다. 그리고는 여자와 함께 ‘하하 호호’ 하고 있을 사장님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눈을 꼭 감았다. 나타나지 않는 사람을 눈 뜨고 성의를 다해서 기다리고 싶지는 않았다. 눈을 감으니 잊고 있었던 피곤이 몰려왔다.
어두운 무의식의 저편에서 뭔가가 내 얼굴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현실감 없는 꿈속에서 그 느낌만이 생생했다.
부드럽지만 딱딱하고 차가운 그것이 내 얼굴을 스르륵 훑어 내릴 때, 눈이 번쩍 떠졌다. 악몽을 꾼 사람처럼 흠칫 몸을 일으킨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수석에 사장님이 묘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자다 일어난 것이 창피해서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
“깨…… 깨우시지 그러셨어요.”
잠으로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니, 사장님이 웃는다.
“머리를 돌로 내려쳐도 모르게 코를 골며 자던걸.”
장난기 가득한 사장님의 얼굴이 어두운 차안에서 매력적으로 보였다.
“제가 코를요?”
이상하다. 나는 코를 골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게다가 아주 얕은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코를 골다니.
“그래, 코! 엄청 골더라. 난 어린양 가면을 쓴 아저씨인 게 아닌지 의심까지 했다니까.”
자다 일어나서인지 놀리는 듯한 사장님의 말에 귀찮아서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것에 대해서 물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요. 아까 그건 뭐였어요?”
“뭐가?”
“방금까지 제 얼굴 위에 떠 있던 사장님 손이요.”
어울리지 않게 당황한 얼굴로 재빨리 손을 뒤로 감추는 사장님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설마, 정말 돌로 제 머리를 내리치려고 그러신 거예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내 말에 사장님이 눈에 띄게 당황하는 게 보였다. 평소 같으면 내가 더 당황할 만한 말로 맞받아쳤을 텐데.
“아, 아니…… 그게…….”
“우와, 사장님 정말 너무하시네요. 사람 그렇게 보긴 했지만, 정말 이러실 줄이야.”
혹시라도 어디 맞은 곳이 없나 장난스럽게 더듬더듬 머리를 더듬고 있으려니, 사장님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보통, 사람 그렇게 안 봤다고 하는 거 아냐?”
“그렇긴 하지만, 어느 모로 보나 사장님은 충분히 그러실 수 있는 분이라…….”
여태껏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사장님의 눈썹이 실룩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심술궂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흐응, 그렇단 말이지? 뭐, 그렇다면 소원대로 그렇게 해줘야겠지.”
내 머리를 내려칠 돌이라도 찾는 사람처럼 두리번거리는 사장님을 보며 얼른 말했다.
“전 소원이라고까진 말 안 했어요!”
내 말에 사장님이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런데 돌로 내리치려던 게 아니라면 아까 그 손은 대체 뭐였어요?”
의문을 담아서 말똥말똥 쳐다보니, 사장님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변했다.
“나, 나, 나…… 졸려. 그러니 그만 물어. 무조건 잘 거니까, 깨우지 말고 집에 도착하면 그때 깨워.”
“아니, 왜 말은 더듬고 그러세요?”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는 사장님의 곧게 뻗은 눈썹이 실룩실룩 거린다.
“묻지 말랬지!”
당황해서 얼굴을 잔뜩 붉히거나, 사소한 것에도 심술궂게 말을 하거나 하는 사장님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네, 네. 알겠습니다.”
여자랑 먹은 밥이 잘못되기라도 한 걸까? 고소하게. 아니면 비싼 밥 먹고 왜 저렇게 이상하게 행동하는 거지? 적응 안 되게.
문득 옆에서 사장님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햐, 나 참, 기가 막혀서.”
“저도 그런데요.”
아무렇게나 내려뜨린 사장님의 손을 힐끗 봤다. 아까 내 얼굴 주변에서 도대체 뭘 한 거야, 악마님의 손아!
“어린양, 너 많이 컸다.”
언제 눈을 떴는지, 사장님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잘 모르시는 것 같아 말씀드리지만, 입사하기 전부터 전 원래 다 컸었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사장님을 봤다. 어때? 나 만만하지 않지?
“어린양, 그 반항적인 눈빛은 뭐야?”
불쑥 다가오는 사장님을 피해서 갈 곳도 없는 차 안에서 주춤 물러났다. 내 몸의 온도보다 낮은 차문이 등에 닿는 게 느껴졌다.
“제가…… 뭘요?”
방금까지도 꼬박꼬박 대답도 잘하던 내가 찔끔하고 겁을 집어 먹는 게 만족스러운지, 사장님이 다시 평온한 얼굴로 돌아와 말했다.
“그렇게 떨 거 없어. 마음에 든다는 말이니까. 아주 마음에 들어서 어린양 한 마리쯤은 거뜬히 한 입에 집어삼킬 수 있을 것 같아.”
“무, 무슨 그런…… 하나도 웃기지 않는 농담을…….”
사장님의 어딘지 노골적인 시선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몸을 감싸 안았다. 엄청스럽게 이상했지만,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던 사장님으로 돌아와 주세요!
“이런, 오해를 했나 보네.”
눈빛은 벌써 나를 집어삼킨 것 같은데, 오해라니요.
불편한 공기가 어색해서 침을 꼴깍 삼키니, 사장님이 내 목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사실 난 양고기를 좋아하거든, 그것도 무척이나.”
나는 사장님의 뜨거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덤덤함으로 가장하고 말했다.
“전혀 오해 같지 않지만, 제가 오해했다 치죠. 그런데요, 사장님?”
차를 출발하려다 말고 다시 눈을 감고 있는 사장님을 쳐다봤다.
“왜, 또? 졸린다고 했잖아!”
귀신도 뿅 갈 정도로 하품도 멋들어지게 하는 사장님을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졸리신 건 잘 알겠는데요.”
“그럼, 뭘 모르겠는데?”
“모르고 계시는 건 사장님 같으신데요.”
내 말에 아까의 그 부끄러움을 알던 사장님으로 다시 변신했다.
“내, 내가 뭘?”
사장님은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 같은 얼굴로 소리를 질렀지만, 이상하게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별말 안 했는데, 왜 얼굴을 붉히세요?”
“더, 더워서 그래!”
겨울에 덥다고 하면서 넥타이를 거친 동작으로 푸는 사장님의 모습을 멀뚱히 지켜봤다.
“오늘따라 참 이상하시네요.”
“뭐가 또?”
내가 왜 이러는지 진정 모르는 얼굴이었다.
“지금 사장님께서 앉아 계신 자리는 조수석인데요.”
“그게 뭐?”
어쩐 일인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사장님이 내 눈을 피했다.
“사장님께선 사장님답게 뒷자리에 앉으셔야죠. 왜 평소에 하지도 않던 행동을 하시는 겁니까?”
얼른 사장님을 떨어내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사장님 때문에 차를 출발시킬 수가 없었다.
“난, 난 이 자리가 좋아. 이 차는 내 차니까, 내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을 거야!”
오늘따라 왜 조수석을 고집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만, 또다시 울컥 하고 뭔가 올라왔다.
“흐음, 그런데 여자분은 왜 같이 안 오셨어요? 같이 오셨더라면, 오늘은 절대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뒤에 앉고 싶으셨을 텐데요. 그리고 식당에서 하던 걸마저 하실 수도 있으시고요.”
어깨를 흔들며 “사장님, 정말 좋아요”라고 아양을 떠는 여자 흉내를 내니, 사장님이 웃음을 터트린다.
“어린양, 너 질투해?”
“질투가 아닌, 사장님의 유흥을 생각하는 직원의 갸륵한 마음입니다.”
“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사장님의 얼굴 위로 어딘지 따뜻한 기운이 퍼지는 것 같았다. 나는 애써 사장님의 다정해 보이기까지 한 잘난 얼굴에서 시선을 거뒀다.
“어쨌든, 오늘은 그 자리가 좋으시다는 거죠? 그럼 주무세요.”
차를 출발시켰다. 차는 조용한 주차장을 빠져나와 캄캄한 밤이 되면 더욱 사람들로 북적대는 도로로 나왔다.
방금까지 졸린다고 하품까지 하던 사장님의 것이 분명한 시선이 내 얼굴을 뚫을 기세로 닿는 게 느껴졌다.
“졸린다면서요?”
“응, 졸려.”
잔뜩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눈을 감으셔야죠.”
“감을 수가 없어.”
알쏭달쏭 퀴즈도 아니고, 졸린데 눈이 감기지 않는다니. 운전대를 잡고 있지 않다면 내가 직접 눈을 감겨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왜요?”
“나도 몰라.”
“사장님께서 모르시는 것도 다 있으세요?”
잔뜩 비꽈서 말했지만, 돌아온 것은 아주 허스키해서 달콤하기까지 한 목소리였다.
“그러게…….”
평소의 백배쯤 이상한 사장님의 행동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장님의 뜨거운 시선은 여전히 내게 향해 있었고, 차는 미끄러지듯 도로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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