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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바닐라 에스프레소 새벽반
세이온 지음로망띠끄2014.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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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평점 | :  [참여수 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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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 979-11-258-264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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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로 카페 '바닐라 에스프레소'의 직원이 된 세 사람. 아는 것이라고는 서로의 이름과 얼굴뿐. 몇 살인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는 것투성이며 사실, 알고 싶지도 않다. 거기에다 성격과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다른 그 남자와 그 여자. 사소한 오해와 갖가지 삽질들로 서로를 헐뜯고 미워하기 바빴던 두 사람이 어느 새부터인가 서로에게 스며들기 시작한다. 사실대로 말해봐, 당신. 나 좋아하고 있는 거 맞지
바닐라 에스프레소 새벽반
-본문 중에서-
“그란데 사이즈가.”
상자 위쪽으로 올라가던 이소의 눈동자에 힘이 빠졌다. 하필 갖고나가려는 크기의 종이컵이 제일 위에 있는 상자 안에 있었다.
뒤꿈치를 세우고 최대한 손을 뻗으며 낑낑대는데 별안간 시원한 향기가 화악 끼쳐오더니 불쑥 손 하나가 뒤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이소가 잡으려던 상자를 집어 어렵지 않게 꺼냈다. 고개를 돌리니 재현이었다. 부욱, 테이프를 뜯어내 상자 안의 종이컵을 꺼내던 재현이 무심하게 말했다.
“집에 갈 때 내 건 돌려주고 가요.”
“뭐가 매니저님 건데요?”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의 시선은 각각 상자 안의 종이컵, 아까 베였던 재현의 손가락에 머물러있었다.
“그 비녀.”
‘비녀?’
상처에서 눈길을 거둔 이소가 고개를 들자, 재현은 말없이 표정으로 한 번 더 말하며 이소가 가지고 나가려던 종이컵을 품에 안고 사라졌다.
“비녀? 아! 펜! 네 거였냐?”
중요한 건가? 아니지. 저 성격에 중요한 거면 진작 달라고 했겠지. 그냥 글러 다니는 펜 중 하나인 줄 알았는데.
이소는 떨떠름한 표정을 하며 활짝 오픈된 상자의 뚜껑을 닫고는 빈손으로 창고를 나섰다. 하지만 바로 작업대 앞으로 가지 않고 자신의 가방이 있는 탈의실로 향했다.
한가해진 틈을 타 이소와 치우가 마실 라떼를 준비하던 재현은 얼음이 들어있는 냉동고를 열며 즐거운 듯 말하는 이소를 돌아봤다.
“우리 이따가 간식 먹어요.”
“무슨 간식? 이소 씨가 싸온 거예요?”
치우의 놀란 듯한 목소리에 이소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꺄. 이소 씨 최고.”
애교 섞인 치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재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시럽통을 집으려다 잠시 멈칫했던 재현은 이내 길게 숨을 내쉬며 시럽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다 만들어진 커피를 각각 이소와 치우에게 내밀었다. 머릿속이 멍한 듯 기분 나쁜 느낌이 가시지 않자, 재현은 평소보다 더 진한 아메리카노를 자신의 몫으로 만들었다. 눈을 감고 머그잔을 입에 대려는데 갑자기 손에 쥐어졌던 무게감이 사라졌다. 재현이 눈을 뜨자, 이소가 코앞에 서서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뭡니까?”
동그랗고 반짝거리는 눈동자에 한껏 당황한 재현이 묻자, 이소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급기야 손까지 올려 재현의 이마에 손바닥을 갖다 대었다.
재현은 인상을 쓰며 물러나려 했지만 막상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손이 차가워서일까, 아니면 작아서일까. 아니, 다른 이유 때문인가? 이상하게도 편안해졌다.
“뜨거운데? 매니저님 열 있는데? 혹시 감기예요?”
‘감기?’
그래서 하루 종일 멍했던 거였나?
“오늘 좀 이상한 거 알아요, 매니저님?”
동생 대하듯 달래며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는 이소의 눈에 스르르 눈을 뜨며 그녀를 내려다보는 재현의 눈동자가 비춰졌다. 제법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거라 그런지 왠지 기분이 묘해졌다. 이런 건 무슨 감정이지?
자신의 손길에 잠자코 이마를 내어주고 있는 남자가 어쩐지 다른 날과는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았다. 아파서 그런 건가?
이소의 손길이 기분 좋은 건지 재현의 눈이 감겼다 떠지는 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있었다. 한참동안 바라보던 이소는 묘한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서둘러 손을 내렸다. 그리고는 에이프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 뒤 재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이소의 손이 떨어지자, 잠시 아쉬워하는 듯한 표정이 되었던 재현은 별안간 손길이 느껴지자 다시 당황했다.
이소는 재현의 상처 난 손가락에 자신이 준비해두었던 밴드를 정성스럽게 붙였다. 이소의 머리끝을 내려다보던 재현의 눈동자가 서서히 이소의 손가락으로 내려갔다. 사방팔방 온 동네 신경 쓰고 다니는 타입은 피곤했다. 그저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몫만 하면 피곤할 일도 얼굴 붉힐 일도 없는 법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피곤하다.
자신이 그렇게나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비록 말을 하지는 않아도 사람을 바라보는 그 시선에서 어느 정도의 감정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건 이미 첫 만남 때 눈치 챘고. 그나저나 자신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힘들어하는 자신을 보며 고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을 법도 한데 뭐가 이리 걱정스럽다는 듯 대하고 있는 걸까? 아아, 남자로 안 보이고 동생으로 느껴져서? 너무 복잡한 여자다.
무슨 대수술이라도 하듯 신중하고 꼼꼼하게 밴드를 붙이는 모습에 재현의 입술에서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같이 있으면 심심하지는 않겠다, 이 여자.
어느새 밴드를 다 붙였는지 이소는 재현의 커다란 손을 놓고는 싱긋 웃었다.
“예쁘다!”
이소는 손가락에 감긴 밴드를 내려다보며 뿌듯하게 웃었다. 하지만 재현의 얼굴은 불만스럽게 변했다. 자신의 손가락에 감긴 건 그냥 밴드도 아니고 어린이 캐릭터 밴드였다. 20대 남자에게 또로로 밴드가 웬 말이란 말인가?
“이거 방수도 돼요. 물 닿아도 안 아파요.”
“아, 네.”
“미안해요, 괜히 나 때문에. 대신 상처 아물 때까지 매니저님 밴드는 제가 다 책임질게요.”
“사양합니다.”
“하지 마세요.”
오랜만에 보는 두 사람의 눈싸움에 치우는 턱을 괴고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냉큼 일어섰다.
“어서 오세요. 바닐라 에스프레소입니다.”
말이라도 맞춘 듯 동시에 나오는 세 사람의 목소리가 한가로운 새벽에 기분 좋게 울리고 있었다.
<미리보기>
막 동이 틀 무렵은 새벽반의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다른 직장은 출근 전의 시간대이기에 그 시간에 카페 직원들은 꽤 한가한 상태였다. 그래서 이소는 지금 카페 창가에 앉아 손님인 척 흉내 내며 창밖을 바라보는 재현을 구경 중이었다.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저렇게 해? 꽤나 진지한 얼굴을 하고.
“손님, 카라멜 라떼예요.”
비어있는 테이블에 별안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잔이 나타나자 재현은 다소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이소가 쟁반을 팔에 끼운 채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을게요.”
재현은 여느 손님의 말투를 흉내 내며 건성으로 답했다. 이를 눈을 가늘게 뜨고 지켜보던 이소가 손바닥을 처억 내밀었다. 뭐냐는 듯한 재현의 눈빛에 이소가 뻔뻔스레 대꾸했다.
“저희는 선불입니다.”
어이없다는 듯 웃는 재현을 보며 이소는 손바닥을 더 가까이 내밀었다. 까닥까닥 손짓까지 하며. 눈동자만 슬며시 내려 손바닥을 가만히 바라보는 재현의 모습에 이소의 입이 멍하게 벌어졌다.
‘오히려 섹시한 남자로 보인다면 몰라도.’
어째서 이 순간 인아의 말이 생각나는 것일까. 재현이 시선을 드는 걸 확인한 이소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아주 꽉.
재현은 에이프런 주머니에 손을 넣는가 싶더니 이소의 손바닥 위에 자신의 주먹 쥔 손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재현의 손은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천천히 주먹 쥔 손을 편 재현은 이번엔 맞닿아있는 이소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따스함이 전해져오자, 당황한 이소가 손을 빼려했지만 재현은 놔주지 않았다. 자신의 손보다 훨씬 커다란 손은 크기만 큰 게 아니라 악력 역시도 훨씬 셌다. 닿아있는 손바닥이 왠지 모르게 찌릿찌릿 거리는 것만 같았다. 단박에 고개를 들자, 짓궂게 웃고 있는 재현이 보였다. 장난이라는 걸 눈치 챈 이소가 안도하며 작게 숨을 내뱉었지만 어쩐지 심장은 진정되지 않고 있었다. 근데 이거 직장 내 성희롱 아닌가? 아니, 애당초 가슴이 설레는 건 성희롱 범주에 들어가지 않나?
이소가 깊은 고민에 빠져있는 동안에 작은 손을 한번 꽉 힘주어 잡았다가 놓아준 재현은 머그잔을 들어 입가에 갖다 대었다. 재현의 손이 사라지자, 따스한 감촉 역시도 사라졌다.
“응?”
하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감촉 하나가 있었다. 고개를 숙이니 손바닥 위에 놓여있던 노란색 사탕 하나가 보였다. 아까 어린 여자들이 시키라는 커피는 안 시키고 꺅꺅 대며 재현에게 건넸던 사탕이었다. 손바닥 위에 있는 사탕 한 번, 재현 한 번 쳐다보던 이소는 뚱한 얼굴을 하며 돌아섰다. 요즘 커피 한 잔이 얼만데 고작 이 알사탕 한 개 하고 퉁치다니.
하지만 투덜대면서도 이소는 사탕 봉지를 벗겨 동그란 사탕을 입안에 넣었다. 순식간에 입안에 달콤함이 퍼지며 상큼한 맛이 났다. 레몬 사탕이로구나.
“이소 씨.”
레몬 사탕이라고 또 좋다고 배시시 웃으며 걸음을 옮기려는 찰라, 뒤에서 재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뭐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린 이소에게 테이블에 턱을 괴고 가만히 보고 있던 재현이 물어왔다.
“사람들이 보통 친해지고 싶을 땐 젤 먼저 어떤 걸 물어보지?”
“……네?”
얼떨떨한 얼굴로 뒤늦게 대답하는 이소를 보던 재현의 입가가 스르륵 올라갔다.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이소는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기분이 이상했다.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왜 저 놈이 웃는데 눈물이 날 것 같지?
그저 한탄에 비슷했던 자신의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해준 남자가, 그저 흘려버리지 않고 고민까지 해가면서 자신에게 이제 막 다가오려는 이 남자가, 너무 따뜻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고마워서 자꾸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어쩐지 자꾸 기대를 하게 만든다, 저 남자는.
입 안에서 퍼지는 달콤함이 배가 되어 가슴으로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섹시하면서 달콤한 남자라.
‘그럼 넘어가줘.’
그럴까? 그냥 넘어가 줄까? 지금 이 자리에는 없지만 어쩐지 인아의 격양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 넘어가라고!
이소는 큭큭 웃음을 흘렸고 재현은 그녀의 반응이 다소 의외였는지 미소를 지운 채 물끄러미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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