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벳 차트워드는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며 가파른 절벽 끝에 서 있었다. 저 아래에서는 장난감 인형처럼 아주 작게 보이는 남자들이 큰 낫을 들고 바쁘게 걸어 다녔고, 몇몇 남자들은 말을 타고 있었으며, 또 몇몇은 소떼를 몰고 있는 모습이 아련하게 보였다.
그러나 엘리자벳은 몸가짐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는 듯 벼랑 아래로 시선을 두지 않아 바쁘게 움직이는 그들을 볼 수 없었다. 온기가 느껴지는 따스한 바람이 그녀를 절벽 끝으로 밀어붙일 정도로 강하게 불어 왔으나 그녀는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오늘 그녀에게 비록 피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긴 했으나, 아무리 절망의 끝에 서 있을지라도 바람에게 흔들림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의 푸른 빛 눈에 더 이상 눈물은 흔적조차 없이 말라 있었고, 그녀의 목구멍은 분노와 흘러넘치는 눈물을 삼키느라 부어올랐다. 그녀가 숨을 쉴 때마다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다시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매혹적인 머리를 헝클어뜨리면서, 여기저기 찢겨지고 더러워진 붉은 실크 드레스를 제멋대로 들추었다. 친구 결혼식에 입고 갔던 화려한 의상은 온데간데없이 이미 누더기가 되었고, 헝클어진 머리와 상처투성이인 얼굴, 그리고 팔은 등 뒤로 묶여 있어 한눈에 보아도 그녀는 지금 최악의 상황이었다.
엘리자벳은 8월의 눈부신 햇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 한번 깜박이는 법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이제까지 살면서 종종 ‘고요하고 섬세한 천사’로 불리곤 했으나, 지금처럼 순례자들이나 걸치고 있음직한 누더기에다가 헝클어진 머리로 있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엘리자벳의 마음에는 따뜻함이라든가 용서라는 단어는 모두 지워져버려, 분노와 저주를 가득 담은 눈동자로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죽을 때까지 싸울 거야. 어떤 남자도 날 정복할 수 없어. 어느 남자도 멋대로 날 굴복시킬 수 없어 !󰡓
바로 그때였다.
󰡒신의 도움을 구하고 있는 거냐?󰡓
그녀를 납치한 존이 느물스럽게 웃으며 서서히 곁으로 다가왔다. 마치 세상의 시간을 모두 소유하고 있기라도 하듯이 아주 천천히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고,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이 뿜어내는 살기로 그는 주춤 물러섰다. 그는, 그의 주인인 패그널 월덴햄처럼 허풍쟁이에다 그의 주인이 없을 때는 턱없이 겁쟁이였다. 존은 헛기침을 해대면서 거드름을 피우며 엘리자벳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팔을 잡았다.
󰡒너는 스스로 대단한 여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지금은 내가 네 주인이야.󰡓
그녀는 한치의 고통스러움 ―한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 도 내색하지 않고 아주 단호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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