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시연은 갑자기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되었다.
“어딜?”
“당신이 가자는 곳.”
그는 자신의 귀가 의심스러웠다.
“다시 한 번 말해 줄래요? 내가 제대로 들은 건지…….”
“가요. 바로 위에 빈 방도 많을 텐데.”
시연은 바로 앞에 놓인 마티니를 단숨에 들이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얼떨결에 서둘러 계산을 하고는 그녀 뒤를 뒤따라 나오면서도 혹시 자신이 꿈을 꾸는 건 아닌가 혼란스러웠다. 시연은 그의 뜨거운 의문에 찬 시선을 등 뒤로 느꼈지만 절대 뒤돌아보지 않고 흔들림 없는 발걸음으로 로비로 올라갔다.
“진심……입니까?”
등 뒤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입가에 묘한 웃음 한 조각이 걸렸다.
“네.”
“지금 마음이 바뀌어도 괜찮아요. 그러니…….”
그는 갑작스런 그녀의 심경 변화에 한마디 덧붙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에요. 절대 마음 안 바뀌어요. 오늘이 아니면……. 아니, 당신이 정 싫다면 여기에서 헤어져요.”
그녀는 돌아서서 또렷한 눈빛으로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좋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줘요.”
그는 혹시라도 그녀가 또 마음을 바꿀세라 서둘러 호텔 프런트로 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시연은 다리를 휘청거렸다. 손을 가슴에 얹고는 심호흡을 했다.
“한 번 저질러 보는 거야. 내 나이 서른. 내 주위에 있는 사람 그 누구도 날 처녀라고 생각하지 않을 텐데. 왜 혼자서 그 처녀성을 고이 간직해야 하는 거야? 그리고 저렇게 멋진 남자를 만날 운이 도대체 몇 퍼센트나 되겠어? 좋아. 이번 기회에 한번 저질러 보는 거야.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가상 데이트야. 이 가상 세상 속에서 못할 일이 뭐가 있어? 거기다 그는 애인도 있는데. 아냐. 바보. 지금은 내 애인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슴 한쪽이 뻐근한 게 아릿하게 아파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갑시다.”
“네? 네.”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서 내려섰다. 그를 따라 808호 룸 앞에 섰다. 그가 문을 여는 동안 갑자기 갈등이 생겼다. 여기에서 돌아가 버릴까. 내일 아침에 후회하면 어떡하지. 그녀는 저절로 뒷걸음질 쳤다.
“자!”
그런 그녀에게 그가 손을 내밀었다. 시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면서 저 손을 잡아야 할지 말지 갈등했다. 그 몇 초간이 몇 시간은 되는 듯이 길게만 느껴졌다. 그녀는 입술을 질근 깨물었다. 그의 손을 잡았다. 룸으로 들어서자 널찍한 침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부끄러운 마음에 얼른 시선을 피했다.
“누가 먼저 샤워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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