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반한다는 건, 누군가에게 반할 수 있다는 건 멋있는 일.


입학 후 대학 생활 3년 내내 좀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도련님 김우현.
자존심 강한 그가 한여름, 그녀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그것도 4년 전에!

그런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홀연히 그녀의 곁을 떠난다.


“한여름.”
“아마, 내일부터 못 볼 거야.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될 땐…… 빨라도 5년쯤 걸릴지도 모르겠다.”
“5년?”
“잘 지내. 제때 졸업 잘하고. 나 없는 동안 연애도 해보고. 아, 결혼은 안 돼. 5년 뒤 널 갖는 건 내가 될 것 같다, 아마도.”
“야, 너 지금 무슨 말을 하…….”
“5년 뒤, 그땐 너도 내게 반하게 될 거야.”


진중한 그의 성격을 아는 탓일까,
그가 건 말도 안 되는 최면에 걸리고 싶었던 것일까.
이상하게 그의 말은 지독한 최면이 되어 그녀를 얽매게 되는데…….



-목차-

시작
1. 도련님 VS 한여름
2. 그가 사는 집
3. 연극
4. 누군가에게 반한다는 건
5. 고백
6. 해후(邂逅)
7. 그리움
8. 폭풍 후에 오는 것들
9. 최면
10. 연인이란……
11. 폭풍
12. 인사
13. 행복하세요
14. 행복을 주는 사람
에필로그



-본문 중-

“야, 김우현! 너 이제 나 잊었냐?”
무엇인가가 속에서 울컥, 올라오는 느낌이다. 화가 났다기보단…… 역시 실망감이 더 큰? 놀라워하는 우석이나 민규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의 표정은 너무나 평소와 똑같았다. 섭섭할 정도로.
그래, 차라리 그가 화를 냈더라면 최소한 지금과 같이 마음이 쓰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보통의 사람처럼 표현을 했더라면…….
그는 그녀의 낡은 운동화를 가져와 직접 신겨주었다. 그것도 한쪽 무릎을 꿇고 자신의 정장 바지가 더러워지는 것은 생각조차 않고.
어쩌면 요셉이 말처럼 이런 사람이기에 그동안 그녀를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곧기만 한 성격…… 그래서 고집이 세다는 말을 듣기도 했겠지. 확실히 그녀가 알고 있는 그는 변하지 않았다.
“넌…… 내가 지겨워진 적 없었어?”
그는 묵묵히 풀려버린 끈만 메어주고 있었다. 뭐, 그가 말을 씹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 이력이 날 만도 했다.
“없긴. 잊어보려고 해봤댔잖아.”
그가 변하지 않았다는 건 취소다, 취소. 역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그는 예전과 비슷했지만 묘하게 부드러워진 표정이라든지, 몸에 배어 있는 여유는 이제 더 이상 22살의 김우현이 아니라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끈을 잘 묶어야 해. 풀린 끈 밟고 넘어져 다치면 어쩔 거야? 갈게.”
끈을 다 묶고 나자 미련조차 없는 듯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무릎을 탁탁 털고 다시 뒤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야! 너 나 이젠 잊었냐고!”
거짓말처럼 그의 걸음이 멈추었다. 하지만 뒤돌아보지는 않았다.
“잊진 않았어. 비우려 노력 중인 거지. 내가 싫다는 사람 끝까지 담아둘 순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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