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각 반에 적어도 하나씩은 꼭 있다, 이런 녀석.
공부는 1등, 운동은 만능, 기다란 기럭지는 기본, 거기에 잘생긴 얼굴마저 표준 사양인 녀석.
내 마음대로 정하 얄미운 첫사랑, 김기준.

초등학교 전체를 뒤져도 흔하지 않다, 이런 여자애.
공부도 1등, 예쁜 얼굴도 1등, 그런데 개그맨의 피가 흐르는 엉뚱한 개구쟁이.
내 마음대로 정한 엉뚱한 첫사랑, 강준영.

로또에 당첨될 확률과 혼자만의 첫사랑을 다시 만날 확률 중 어느 쪽이 더 높을까?
다시 만난 왕년의 범생이와 엉뚱녀의 상큼 발랄한 연애 한판!

“누구는? 누구는 뭐 연애할 시간이나 있었고? 야, 난 아직 여자랑 한 번도…….”
“여자랑 한 번도 뭐? 응? 말해 봐.”

여자랑 한 번도 뭘까? 영화 보기? 손잡기? 뽀뽀? 아니면 호, 혹시 그거?

“네가 안 해봤다는 게 혹시 그거야?”
“그거, 라니?”
“남자랑 여자랑 하는 거고, 둘이서만 하는 거고, 끝나고 나면 숨이 찬 거지? S자로 시작하고?”

기준이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차 안에 크게 울렸다.

“그럼 그거네. 스포츠 댄스. 푸흐흐흐흐.”

[미리보기]

준영의 집 앞에 차를 두고 같이 걸어왔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데 아파트 단지 옆에 자그마한 공원이 보였다. 갑자기 걸음을 멈춘 준영이 기준의 팔을 잡고 뒷걸음을 쳤다. 얼결에 끌려간 기준을 데리고 준영이 멈춘 곳은 편의점 앞이었다.
“우리 아이스크림 사서 저기 공원에서 먹자.”
준영은 기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기준이 손을 잡았다. 준영은 잡힌 손과 기준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아, 이건 또 무슨 장난인가.
“푸하하하하……. 너, 너 방금 강아지 같았어. 아하하하하. 손 달라는 게 아니고 지갑 달라는 거였는데, 우하하하하. 나 지갑 안 가지고 왔단 말이야. 크크큭.”
살면서 지금 이 순간만큼 무안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런데 제 손바닥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작은 손을 잡고 보니 놓고 싶지 않다. 기준은 벌게진 얼굴로 준영의 손을 잡은 채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잡혀가듯 딸려온 준영과 냉장고 앞에 섰다. 차마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아이스크림만 뒤적거리며 기준이 물었다.
“어떤 거 좋아해?”
준영도 손을 뺄 생각 안 하고 얌전히 잡힌 채 다른 손으로 아이스크림을 골라들었다.
“이거. 맛이 복잡하지 않고 심플해. 사람들을 유혹해 보겠다고 느끼한 초콜릿을 입지도 않았고, 끈적끈적한 딸기잼을 안에 숨겨두는 얄팍한 수도 쓰지 않았어. 보기엔 엄청 먹음직해 보이지만 막상 깨물면 입안에서 거치적거리는 땅콩가루도 없어. 그래서 이 녀석이 가진 맛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어서 좋아. 너처럼.”
고백하듯 수줍게 말하는 준영의 손에 들린 건 우유 맛 아이스크림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전에 얼어 버린 기준을 준영이 잡아끌었다.
“얼른 계산하고 가자.”
“어, 그래.”
기준은 지갑을 열고 돈을 꺼내느라 할 수 없이 준영의 손을 놨다. 손안에 그대로 남은 보드라운 감촉만은 꽉 쥐고 놔주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준영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다시 손을 내밀었다.
“또 뭐 살 거 있어?”
“풋! 아니, 지금은 지갑 말고 손!”
훈련 잘 된 강아지처럼 기준은 준영의 손바닥 위에 손을 척 올렸다. 씩 웃은 준영이 손을 잡고 앞뒤로 흔들면서 걸었다. 나란히 운동복을 입고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손까지 잡고 걷는 두 사람은 딱 밤 마실 나온 행복한 신혼부부처럼 보였다. 공원 안에 들어선 두 사람은 칠이 벗겨지고 반질반질해진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여름이 끝나가는 공원의 밤바람이 시원했다. 기준의 머리를 만지고 온 바람이 두 사람의 잡은 손에도 앉았다가 준영의 머리를 헝클고 지나갔다. 머뭇거리던 기준의 손이 준영의 앞머리를 가지런히 내리고 다시 손을 꼭 잡았다. 두 사람의 마주 닿은 어깨는 바람에게도 틈을 내주지 않았다.
“아, 좋다. 바람도, 아이스크림도.”
너도. 준영은 시선을 멀리 둔 채 미소만 지었다.
“그러게. 바람도, 아이스크림도 좋네. 그리고 강준영, 너도.”
네가 제일 좋지만. 기준도 준영이 보는 곳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같은 곳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볼이 같은 색으로 물들었다.

 

여름궁전

매번 다른 글을 써도
바라는 것은 늘 한 가지입니다.
읽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
밝고, 유쾌하고, 따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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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작

종이책 - <첫사랑, 그 엉뚱한 진실>, <그녀의 최강男>, <첫눈 속을 걷다>, <우리, 영화처럼>
전자책 - <첫사랑, 그 엉뚱한 진실>, <그녀의 최강男>, <첫눈 속을 걷다>, <사랑도 웹툰처럼>, <수상하고 무뚝뚝한 태권도 관장(개정판)>, <공수한 장가보내기>, <우리, 영화처럼>, <우리가 기억하는 사랑>, <숨이 멎을 듯>, <공정한 연애하기>, <더 모먼트: 별이 되는 순간들>, <첫사랑과 커피를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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