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대공이 은혜를 갚겠다고 찾아왔다 1권 - 로맨스 소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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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300-52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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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소개

“은혜를 갚기 위해 왔습니다, 일레나 님.”

일레나는 만신창이의 남자를 주워다 정성껏 돌봐줬다. 치료해놓고 보니 흐뭇하게도, 남색 머리에 황금안을 지닌 엄청난 미남이었다.

제 이름이 체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 못 한다던 꽃미남은, 어느 날 편지만 한 장 남겨놓은 채 날아가버렸다.

그리고 1년 뒤, 일레나는 제집을 둘러싼 시커먼 무리를 발견하는데.

“정말 대공 전하가 맞으시다구요?”

“예. 맞습니다.”

“대체 왜…… 대공 전하가 대체 왜.”

“은혜를 갚기 위해서입니다.”

돌봐줬던 꽃미남은 은혜 갚는 대공이 되기 위해 돌아왔다.

체르디에 르벤다르트, 르벤다 제국의 대공.

일레나가 한사코 거절하는데도 은혜를 갚겠다며, 물러나질 않고 버틴다.

“그러니까. 같이 갑시다. 제국으로.”

“대공님.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여길 떠날 수 없어요.”

“그럼 저도 여기 있을 텐데요?”

일주일의 실랑이 끝에, 결국 일레나는 르벤다 제국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대공가에서 일레나는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서서히 제 목표를 정비한다.

그녀는 본디 로지아트 자작가의 영애, 하나 가문은 누명을 뒤집어쓰고 멸문당했다. 원수들에게 복수를.

“저는 도와드릴 수 있거든요. 일레나 님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그런데 이 남자. 뭐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왜 자꾸만 이런 말을 하는 거지?

“모든 건 일레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왜 자꾸 흔들리는 거지?

2. 작가 소개

솔솔

꽉 닫힌 새드 빼고 다 좋아합니다.

3. 차례

#프롤로그

#제국으로

#우선 적응부터 하고 (1)

#우선 적응부터 하고 (2)

4. 미리 보기

“은혜를 갚기 위해 왔습니다, 일레나 님.”

너무나도 낡아서 삐걱거리는 내 안락의자에 긴 다리를 꼬고 앉은 그는,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중이었다.

무려 네 번이나!

나의 믿음을 얻기 위해 인내하는 것일까 싶었지만, 안 믿기는 것을 어쩔 수는 없었다. 신뢰는 억지로 가지려 노력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었으니.

미안, 체르. 아니, 대공 전하.

아. 이제 보니 나에게 알려준 이름도 본명에서 따온 거였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배신감에 지그시 그를 바라보았다.

나를 향한 황금빛 눈동자는 한 치의 동요 없이 고요하게 빛날 뿐이었다.

“정말 대공 전하가 맞으시다구요?”

“예. 맞습니다.”

“대체 왜…… 대공 전하가 대체 왜.”

“은혜를 갚기 위해서입니다.”

기품 있는 태도로, 반복되는 같은 질문에도 짜증 하나 없는 눈으로 그가 대답했다.

내내 흐트러짐 없는 그의 태도에, 아까보다는 조금 진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내가 구해줬던 집도 가족도 없는 불쌍한 꽃미남이 자신은 르벤다 제국의 대공이라며 1년 만에 내 앞에 나타났다.

그 유명한 체르디에 르벤다르트가. 그것도 은혜를 갚겠다면서.

이걸 바로 믿으라구?

혹시 누군가 재미없는 장난을 치는가, 싶기도 했다.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않나.

그러나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은 없다. 왜냐면 집 앞에 그의 유명한 펠리 기사단이 죽치고 있었으니.

아무리 내가 왕국 변두리에서만 자란 시골 사람이었어도 펠리 기사단의 문양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느 간 큰 인간이 그 유명한 문양을 도용해서 수십 명이나 되는 기사를 위장해 한낱 시골집에 끌고 올까.

놀란 것은 둘째 치고 서서히 부담이 밀려왔다.

아무리 내가 베푼 선의가 쉽게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 이리도 요란하고 대단하게 보답받을 정도는 아닌데.

까치도 아니고 무슨 은혜 갚는 대공이라니…….

문득 똑같은 말을 다섯 번째로 되풀이한 그를, 이만 이 불쌍한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혜를…… 대체 어떻게 갚겠다는 거예요?”

“그것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가 어떤 일을 당할 줄 알고 대공님을 따라오라는 건가요?”

“후회할 일은 없을 겁니다. 모든 건 일레나 님의 뜻대로.”

“…….”

그는 이미 마음을 정하고 온 듯했다. 나에게 보답을 받으라 강요하는 것으로…….

그가 바라는 대답 대신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돌려 돌려 거절하는 내 마음을 모른 척하는 저 미남을 어떻게 포기시켜야 할까.

혼란스러운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그가 눈앞에서 흔들리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넘기며 덧붙였다. 의자에 깊숙이 파묻었던 상체를 숙이면서.

“만약 일레나 님이 가지 않는다면.”

그가 말을 멈춘 순간, 나도 같이 숨을 멈추었다.

“저도 여기 있겠습니다. 일레나 님이 마음을 바꾸실 때까지.”

탁, 긴장이 풀려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저 남자가 진짜 미쳤나. 설마 다친 후유증이 1년 뒤에 나타난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황당해하는데, 왠지 그가 미세하게 미소 짓는 것 같았다.

대공은 앞으로 기울였던 몸을 바로 하고는 오만하게까지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같이 갑시다. 제국으로.”

더는 서 있을 힘도 없어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 상황이, 실감이 안 나서.

세차게 도리질을 치고 나서 앞을 바라봤지만, 여전히 그 자리 그곳에 짙은 남색의 머리칼을 한 그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차분하게.

그리고 자신은 이 소동과 무관하다는 듯 조용히 앉아 있는 그는, 우습게도 참 잘생겼다.

잘생기고 돈 많고 빽도 든든한 남자가 나에게 은혜를 갚는다고 찾아왔다. 반면에 나는 돈도 빽도 하다못해 가족도 없는 혈혈단신이다.

덥석 받아들일 것이지, 저 제안을 수락할지 말지 고민하는 게 웃길 수도 있다.

목숨값이라고 치면 그래, 사실 과한 것도 아니다. 근데도 고민이 됐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굴러들어온 복을 찬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나고 자란 고향을 버리고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매일같이 인사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살았던 곳이고.

근데 이런 곳을 뒤로하고 떠난단 중대한 결정을 어느 누가 반나절도 안 돼서 할 수 있냐구.

거절해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은 후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약해지지 말아야지.

두 눈에 힘을 주고 똑바로 대공을 바라보자, 그도 나를 곧게 마주했다.

“저는 가지 않을래요, 대공님.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여길 떠날 수 없어요.”

“그럼 저도 여기 있을 텐데요?”

“대공님 바쁘시잖아요. 그런데 여기 계시게요?”

“네. 일은 여기서도 할 수 있거든요.”

말을 마친 후 그는 세상 상큼하게 웃었다. 문득 저 예쁜 입을 한 대만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는 당장 잡혀가겠지. 황족 모독죄로…….

상상하는 순간 온몸에 찬물을 뒤집어쓴 양 소름이 돋았다.

나는 몸을 작게 떨고는, 마음을 굳히곤 말을 이어갔다. 떨리는 두 손은 꼬옥 맞잡은 채.

“보답은 받은 거로 하죠. 상대가 이렇게까지 사양하는데 계속 보답하겠다 주장하시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부모님께선 남이 베푼 은혜를 꼭 갚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제국으로 가시면…….”

대공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곧 덧붙였다.

“원하는 것을 이루실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 말을 하는 대공의 눈빛이 왜인지 나를 꿰뚫는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치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설마 그가 내 뒷조사를 했나?

“설마 제 뒷조사하셨어요?”

“아뇨. 그럴 리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리는 모습이 의심스럽기 그지없었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내 언행도 한낱 몰락 귀족이 대공을 대하는 태도로선 매우 불손했다. 아무리 은인이라도, 그가 날 이 자리에서 벌하겠다고 하면 화를 피할 수는 없을 거다.

그 생각이 들자 뱃속에서부터 치미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 나를 쭉 지켜만 보고 있던 대공이 몸을 일으키며 침묵을 깼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맞은편 바닥에 앉아 깊은 황금빛 눈으로 내 눈을 응시했다.

다물려 있던 붉은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비밀 이야기를 하듯 작게 속삭였다.

“저는 정말 안 갈 겁니다. 왜냐면 저는 도와드릴 수 있거든요. 일레나 님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진지한 어조와 흔들림 없는 눈에서 확신이 느껴졌다.

정말 도와준다고? 그가?

마음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그 무언가가 고개를 들려 했지만, 애써 억눌렀다. 내 스스로 해야만 하는 일이다.

나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으로 대공에게 말했다. 환하게 웃으면서.

“일주일 뒤에 따라갈게요, 그럼. 먼저 가보세요. 꼭 갈 거니까 걱정 마시구요.”

“예. 그럼 일주일 뒤에 같이 떠나도록 하죠.”

그도 대답했다. 나보다 더 환하게 웃으면서.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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