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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나를 주워 가세요 1권
현아진 지음도서출판 가하2021.06.22
| 판매정가 | : |
|---|---|
| 판매가격 | : 4,000원 |
| 적 립 금 | : 0원 |
| 파일용량 | : 932 KByte |
| 이용환경 | : PC/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타블렛 |
| 독자평점 | :  [참여수 2명] |
| 듣기기능 | :  TTS 제공 |
| ISBN | : 979-11-300-507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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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소개
지헌이 바라는 베이비시터 구인 조건은 단 하나였다.
“죽어가는 새끼 고양이를 지나치지 못하고 줍는 정도면 돼.”
그렇게 지헌에게 온 베이비시터는
아이와 모녀처럼 닮은 박율아였다.
“낯이 익은데. 나 본 적 없습니까?”
그의 물음에 율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없는 것 같습니다, 아버님.”
“……듣기 거북한데.”
뭐, 첫 만남을 잊었어도 괜찮다.
박율아를 다시 본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짐승 새끼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2. 작가 소개
현아진
건강하고 느린 삶을 지향.
겨울과 여행, 바닷속 동물을 사랑한다.
▣ 출간작
아이 아빠는 처음이에요
백색의 밤
3. 차례
#프롤로그
#1
#2
#3
#4
#5
4. 미리 보기
살다 보면 유난히 재수가 없는 날이 있다. 율아는 그게 오늘인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를 마친 후 차비 아끼겠다고 한 시간을 걸어 도착한 집 앞에는 낯익은 대부업체 직원이 서 있었다. 우락부락한 사내가 하필이면 망가진 전봇대 아래에서 손을 까닥거렸다.
“사장님이 보자신다.”
“이 밤중에 저를요?”
부모님이 이자 지급을 미룰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났던 그는 긴말 않고 승합차를 가리켰다. 직원과 승합차는 익숙하지만 사장은 아니다. 율아는 H대부업체 사장과 안면을 튼 적이 없다.
“어허. 좋게 가자고.”
눈치 빠른 직원은 율아가 뒷걸음칠 기미를 보이자 드르륵, 문이 열린 차 안으로 무작정 밀어넣었다. 그 바람에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가 떨어졌지만 주울 시간도 주지 않았다.
작년 말부터 3월에 이르기까지 밤낮없이 아르바이트를 다니느라 삐쩍 말라가던 몸은 팔을 틀어쥐는 악력에 반항 한번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새하얗게 질린 낯빛을 동정받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율아는 욱신거리는 두 팔을 교차해 문질렀다.
“잠시만요, 저 이번 달 이자 안 빼먹고 입금했는…….”
“야이 씨. 조용히 안 해?”
제일 인상이 험악한 민머리 남자가 눈을 부라렸다. 어깨를 잔뜩 움츠린 율아를 쳐다보던 신입이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다. 율아는 처음 보는 직원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렸다.
“근데 형님. 사장님께서 정중히 모셔오라고 하지 않으셨슴까?”
“이 새끼 이거 아직도 멀었네, 멀었어. 후딱 잡아 오란 소리지 뭔 씨.”
신입은 형님의 욕지거리에, 그렇구나 하고 납득해버렸다. 율아는 창밖만 바라보며 거친 대화를 일부러라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럼 그 남자는 누굽니까?”
“새끼가 아는 게 없어. 호안그룹 전무이사시니까 눈치껏 잘해, 새끼야.”
“엄청 젊어 보이던데 벌써 전무란 말임까?”
“그뿐이냐. 무려 호안그룹을 통째로 물려받을 후계자시잖아.”
“예에?”
그나마 덜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떡 하나 물려주듯 알려주자 신입은 입까지 쩍 벌렸다. 신입의 반응을 남자들은 비웃어댔다.
끼이익. 차는 얼마 안 가 H대부업체 건물 앞에서 급정차했다. 율아는 속이 다 울렁거렸지만 남자들은 익숙한지 별말이 없었다.
“야. 내려.”
구석에 찌그러지듯 앉아 있던 율아가 몸을 감싸며 차에서 내렸다. 인도에 침을 뱉은 민머리 남자가 멀끔한 건물을 향해 율아의 어깨를 밀쳤다.
입구는 잘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어둑했다.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제대로 작동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의문이 들었다.
율아는 피곤에 전 얼굴을 쓸어내리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 야심한 시각에 이런 데 끌려왔으니, 온몸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사장님. 박 사장 딸 데려왔습니다.”
“오, 박율아 씨. 반가…….”
민머리 사내가 의기양양하게 율아의 팔을 잡아채 사무실에다 밀어넣었다. 새 담배를 손가락에 걸치고 있던 선규가 인사를 하다 말고 눈살을 확 찌푸렸다.
“모셔오랬더니 이 새끼들이, 니들이 무슨 깡패 새끼야? 사장 말을 어디로 처들은 거야.”
허옇게 사색이 된 율아를 보고 선규가 정색하며 담배를 부러뜨렸다. 선규는 율아를 지나쳐 민머리 직원을 끌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쾅, 닫힌 문소리에 움찔한 율아는 주변을 재바르게 훑다 굳어버렸다. 이곳에는 저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긴 다리를 꼬아 앉은 채 손깍지를 끼고 있는 남자의 절제된 분위기는 겁먹은 율아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율아는 순간이나마 현 상황을 잊어버렸다. 조각상같이 새하얀 피부는 율아보다 고왔다. 뚜렷한 이목구비로 이루어진 조화롭고 아름다운 얼굴은 걸작을 마주한 듯한 기분에 빠져들게 했다.
흑발을 잔머리 없이 말끔하게 넘긴 헤어스타일 아래 반듯한 이마는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하고, 오뚝 솟은 콧대 아래 굳게 다물고 있는 불그스름한 입술은 자극적이었다. 인간미가 부족해 보일 만큼 냉철한 기운을 뿜어내는 그늘진 긴 눈매가 점점 가늘어졌다.
동글동글한 눈동자가 집중하느라 깜빡임도 없자 지헌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낯이 익어요.”
“네?”
“나 본 적 없습니까?”
점잖게 울리는 저음이 귓속으로 꽂혀들었다. 율아는 퍼뜩 정신이 들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눈앞의 남자는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감히 잊을 수 없는 생김새였다.
“네, 없는데요.”
소심한 대답을 내놓은 순간, 선규가 손을 탈탈 털며 안으로 들어섰다.
“박율아 씨. 미안하게 됐어, 많이 놀랐지? 자 앉아, 앉아.”
선규는 지헌의 맞은편 소파에 율아를 앉혀놓고 싱글벙글했다. 직원들보다는 유한 태도지만 갑자기 끌려와 있는 처지의 율아는 떨리는 제 손만 내려다봤다.
“어때. 오케이?”
“음.”
선규는 자꾸만 채근했지만 지헌은 율아를 보느라 대답을 명확하게 하지 않았다. 뭐가 어떻고 오케이인지 이해는 안 갔지만, 생각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모셔오란 시간부터가 한밤중이고, 그 지시를 내렸다는 게 대부업체 사장이니 좋은 일은 아닐 터다.
원금은 엄두도 못 내고 이자만 찔끔찔끔 갚아가는 율아를 보다 못한 빚쟁이가 아름답게 생긴 저 남자와 뭔가를 꾸미는 게 아닐까.
“직접 보니까 아닌 것 같아? 바꿀래?”
선규가 내뱉는 말은 더 수상쩍었다.
“아, 맞아. 박율아 씨. 쌍둥이 동생들 말이야, 지금 고1인가 그렇지?”
이 와중에 열일곱 살밖에 안 된 이란성 쌍둥이 동생들까지 갑자기 언급됐다.
“동생들은 안 돼요!”
하얗게 질린 율아는 실실 웃고 있는 선규에게 무릎을 꿇으며 매달렸다. 선규는 당황해서 어이쿠, 하며 소파를 짚었다. 그는 율아에게 나이 차 나는 동생들이 있단 걸 지헌에게 알려주려던 의도였으나,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긴 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게요. 제발요, 사장님…….”
율아에겐 이제 둘밖에 남지 않은 가족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힘이 없단 사실이 가장 분하고 속상했다.
다니던 회사는 망했고 재취업은 실패하고,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만 전전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상황이 나았을까.
“제 동생들은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가느다란 열 손가락으로 선규의 바짓단을 세게 그러쥐었다.
“동생들한테 무슨 일 생기면 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저를 어쩌려는 건 참고 견딜 수 있어도 동생들은 죽어도 안 된다는 으름장을 놓는다.
“박율아 씨. 어떤 상상을 했는진 알겠는데 그런 거 아니야. 여긴 대부업체지 깡패소굴이 아니래도.”
평소 같으면 바짓단을 붙잡는 손 같은 건 단박에 뿌리쳤을 텐데, 선규는 여자와 아이에 한해선 무른 경향이 있다. 얼른 율아를 일으켜주려던 선규는 소파에서 일어서는 지헌의 모습에 손을 바로 거뒀다.
바짓단에서 바들거리던 두 손이 지헌의 커다란 손아귀에 감싸여 떨어져나갔다. 크기가 솥뚜껑만 한 데다 두꺼운 뼈대의 하얀 손은 뜨거웠다.
“일어나죠.”
지헌은 단호히 속삭이며 율아를 쉽게 일으켜 세웠다. 율아의 짧은 머리칼이 흔들거리자 샴푸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개성 없는 평범한 향을 지헌은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이상한 오해를 할 줄은 몰랐는데, 그녀가 얼마나 궁지에 몰려 있는지 알 수 있는 한 장면이었다. 그럼에도 동생들을 지키겠다고 선규 같은 사람에게 되도 않는 겁박까지 하다니, 부러워할 만한 게 더 늘어나는 건 싫다.
“직장을 구하고 있나 본데.”
그의 손 하나만으로도 다 잡히는 작은 두 손을 놓자 눈물을 대롱대롱 매단 눈이 지헌을 힐끗 올려다봤다. 작은 얼굴에 오목조목하게 들어찬 눈, 코, 입은 나이에 비해 앳됐다. 흙탕물이 튄 흰 운동화를 벗으나 마나 166센티미터인 율아는 지헌과 비교하면 한참 작았다.
자그마한 것에 귀염성을 느낀 적이 극히 드문 지헌은 발그레한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슬쩍 닦아줬다. 율아는 한 뼘 거리에 있는 남자에게서 청량한 향기를 맡았다.
“베이비시터 일.”
“…….”
“해볼 생각 있습니까?”
어조는 분명 부드러운데, 이상하게도 권유 같지가 않고 은근한 압박이 느껴졌다.
뺨에 살짝 닿았던 기다란 검지가 축축해 보였다. 지헌이 엄지손가락으로 젖은 검지를 보란 듯 문질렀다. 짠 눈물을 짓이기는 서늘함이었다.
“할게요.”
눈치라면 어릴 적부터 질리게 보아왔던 율아였다. 미동 하나 없이 자신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검은 눈동자는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그 정도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팔려가는 것보다 베이비시터 쪽을 택하는 게 당연했다.
“베이비시터, 할 수 있어요.”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제 뜻은 명확하게 전했다. 지헌은 두 사람을 빤히 보고 있는 선규를 향해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선규의 얼굴에 짓궂음이 배어났다. 고개를 숙인 율아는 볼 수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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