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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폐하, 또 죽이진 말아주세요 4권
에클레어 지음도서출판 가하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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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환경 | : PC/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타블렛 |
| 독자평점 | :  [참여수 0명] |
| 듣기기능 | :  TTS 제공 |
| ISBN | : 979-11-300-471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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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소개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는 있을까? 나는 이토록 모자란 치고, 당신은 그토록 메마른 자인데.
처음엔 그저 황제가 될 그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결코 죽이지 않을 절대적인 그의 편. 내 가문의 안위를 위해 세뇌하듯 했던 말이 시나브로 진심이 되었다. 그가 행복하길, 행복할 수 없다면 인간다운 삶을 살길.
그가 내게 진짜 마음을 줄 거란 기대는 처음부터 없었는데…….
“전하.”
“왜, 또. 모자라?”
“저한테 너무 잘해주지 마세요.”
“뭔 소리야. 언제는 잘해달라며?”
“조금만 잘해주세요.”
“늦었어. 나는 이제 너를 내 목숨처럼 아낄 테니.”
“…….”
“후회할 거면 지금부터 하도록 해.”
2. 작가 소개
에클레어
쓰고 싶은 글을(만) 씁니다.
3. 차례
#10. 자각 없이 피는 꽃
#11-1. 두 번째 데뷔탕트
#11-2. 두 번째 데뷔탕트
4. 미리 보기
“아버지, 저 이만 갈게요.”
“이대로 가도 괜찮겠니?”
“어쩔 수 없지요.”
나는 어머니의 걱정 어린 물음에 한숨으로 대답했다. 벨루아에는 황태자를 모셔갈 만큼 좋은 마차가 거의 없었다. 결국 벨루아의 문양이 새겨진 저택의 마차를 빌려 쓸 수밖에 없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험 많은 벨루아의 마부가 때마침 앓아눕는 바람에 그의 아들이 고삐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루페르트가 이런 자잘한 디테일에 신경 쓸 만큼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일반적인 황족이라면 경을 치고도 남을 노릇이었으니까.
나는 척 봐도 어리숙한 어린 마부의 얼굴을 흘깃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벨루아와 황도의 거리가 우스운 정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아무 마차나 탔다가는 루페르트가 황도에 제대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겁도 없이 혼자 내려온 그의 호위를 위해 아버지는 벨루아에서 제일 빼어난 기사 넷을 우리에게 붙여주었다.
“아가씨, 마차에 오르시죠.”
그 넷 중 한 명인 젊은 기사 베일리스가 내게 손을 내민다. 그는 연애나 남자에 관심이 없는 나조차 얼굴을 기억할 만큼 굉장한 미남이었는데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벨루아에서 르한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었다. 미모보다도 실력이 출중한지라 아버지가 굉장히 아끼는 기사인데 그를 왜 내 상경길에 붙여주는 걸까.
“고마워요, 베일리스 경.”
“제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그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제국에선 흔하지 않은 검은 눈의 희귀성이 그 미모를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나는 그의 오뚝한 코와 루페르트의 날카로운 코를 속으로 비교하며 누가 더 잘났는지 찰나 고민했다.
“저를 기억하실 줄 몰랐습니다.”
“으음.”
사실 나는 베일리스 경과의 사사로운 친분이 없는 것으로 기억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으니 마치 내가 그와 아는 사이라도 되는 듯하다. 조금 기뻐 보이는 듯 미소를 짓는 그에게 대고 대뜸 ‘얼굴이 잘생겨서 기억할 뿐이에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당연히 기억하죠.”
“이 손수건 꼭 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도련님이 방해만 안 하셨어도 진작 드렸을 텐데.”
내가 마차의 발판에 발을 딛는 것을 지켜보던 베일리스는 품을 뒤져 하얀 손수건 하나를 꺼냈다. 벨루아의 전나무가 수놓인 손수건은 분명 내 것이긴 했지만 그 누구에게도 건넨 적이 없는데. 어린 귀족여성의 손수건이라 하면, 그 물건 자체보단 부여되는 의미가 어마어마하여 타인에게 함부로 주기에는 조금 꺼림칙한 것이다.
“어…….”
나는 얼떨결에 돌려받은 ‘내 손수건’과 함께 손에 들린 장미를 내려다보며 무어라 대답할지 몰라 말을 골랐다. 그러나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베일리스가 먼저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럼 황도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베일리스는 이미 마차에 올라 있는 루페르트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나를 에스코트한 뒤 마차의 문을 닫았다. 루페르트는 창문으로 우리를 마중해주는 사람들의 얼굴을 천천히 둘러보다 내가 마차에 오르고 나서야 시선을 거둬들였다.
“결혼 생각 없다며?”
벨루아로 내려왔더니 머리에서 부품 하나가 빠져버린 걸까. 나는 소파 위를 구르고 있을지 모를 그의 머리부품을 찾기 위해서 손을 더듬거렸다.
“뭐 해?”
“전하 머리부품 찾아요. 연금술로 만들어 붙이신 건가요?”
“뒤지고 싶어?”
“그럼 말을 좀 알아듣게 해주세요. 뜬금없이 무슨 결혼이에요?”
“손수건.”
“언제 줬는지 기억도 안 나요.”
진심이었다.
내가 손수건을 도대체 언제 줬지? 황도에서 베일리스 경과 마주친 일이 없으니, 내가 루페르트의 시녀가 되기 전에 줬다는 건데. 회귀를 하기도 전, 아주 어렸을 때 일인 모양이다. 베일리스가 벨루아에 그렇게나 오래 소속되어 있었다니.
“나도 줘.”
“……왜요?”
“남들 다 주는 걸 왜 난 안 줘? 네 주인인데.”
“전하, 레이디의 손수건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세요? 기사들처럼 결투 신청할 때 쓰는 건 아니에요.”
나는 손수건을 그의 면전에다 던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실실 웃었다. 마차 밖을 흘깃 보니 아직도 사람들이 한 무더기였다. 황족인 그를 함부로 대하면 잘못된 소문으로 벨루아의 명성에 금이 갈 수도 있다.
“어머니! 저 가요! 르한! 너! 내가 한 말 잊지 마!”
나는 조금씩 속도를 붙이는 마차의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손을 흔들었다. 르한이 내 경고를 알아들은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인다. 당시 루페르트에게 혼이 팔려 제대로 혼내지 못한 것이 마음에 남는데.
“야.”
“왜요.”
나는 슬슬 평소와 달리 내게 말을 거는 루페르트가 귀찮아지고 있었다. 그의 부름에 불퉁하게 대답했음에도 그는 큰 상관이 없었는지 내게 손을 내밀 뿐이다.
“내놔.”
“돈이요?”
“뭔 개소리야. 장미 내놔.”
갑자기 꽃이라도 구경하고 싶어지셨나. 나는 별생각 없이 그에게 베일리스가 준 장미를 건네주었다. 그의 반응을 알았더라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텐데.
“꺅! 전하! 뭐 하세요!”
“냄새나.”
“장미에서 향기가 나지 무슨 냄새가 나요?”
“머리 아파.”
아무렇지 않게 창문 밖으로 장미를 휙 던져버린 그의 태도에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왜 남의 꽃을 버리고 난리란 말인가. 베일리스 같은 미남자에게 꽃을 받아본 적은 처음이라 제법 흡족했던 터였던지라 나는 창문에 달라붙었다.
“왜 심술이세요! 왜!”
“너, 결혼할 생각 하지 마.”
“장미랑 결혼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그리고 왜 결혼은 하지 말라고 하세요, 자꾸?”
“넌 평생 내 시녀나 해.”
“히익! 싫어요!”
나는 그의 명령에 기가 막혀 소리를 높였다. 결혼에 대한 로망이 엄청난 것은 아니고 벨루아가 그의 손아귀에서 안전할 거라는 확신을 얻기 전까지는 그의 곁에 붙어 있을 작정이었지만 막상 저렇게 대놓고 앞길을 막으니 반발심이 생긴다.
내 거절에 기분이 상했는지 루페르트가 손에 힘을 주며 나를 노려본다. 손등에 두드러진 핏줄에 조금 겁이 난 나는 더듬더듬 말을 덧붙였다.
“시, 시녀장이잖아요. 승급은 해야죠.”
“궁내무관이라도 시켜줘?”
“궁내 법규라도 바꾸실 셈이세요?”
여자는 궁내무관이 될 수 없다. 궁내무관은커녕 행정귀족도 할 수 없다. 내 새침한 반박에 루페르트는 사색에 잠겼다.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이 언뜻 고민에 휩싸인 듯 보인다. 나는 별 쓸모없는 고민을 하는 그를 흘겨보다 쿠션을 정리해 몸을 뉘였다. 어머니가 보면 버릇이 없다 놀라셨겠지만 루페르트는 내 행동이 예법에 어긋나는지도 모를 사람이다.
“그럼 결혼할래?”
“뭐라고요?”
목이 조금 말라 테이블에 놓인 주전자로 손을 뻗던 나는 갑자기 툭 던져진 그의 물음에 놀라 펄쩍 뛰었다. 내 반동에 흔들린 주전자가 엎어지며 물을 줄줄 쏟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이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혼미해진 정신에 애써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어우. 피곤해서 그런지 헛소리가 들려요.”
“헛소리 아닌데. 태자비라도 시켜줘?”
그의 헛소리는 스케일이 커도 너무 컸다. 나는 도무지 무시할 수도 없을 만큼 진지한 루페르트의 물음에 마른세수를 했다. 얼굴에 열이 오른다. 난생처음, 성인이 될 때까지도 받아본 적 없는 청혼을 지금 받다니. 그것도 이런 식으로! 세상에 이렇게나 낭만 없는 청혼이 또 있을까.
“진짜, 전하, 어디 아프세요?”
“반응이 왜 그래? 승급시켜달라며?”
“태자비가 무슨 승급이에요?”
“네가 황제가 되고 싶지 않은 이상 그보다 더 높은 지위가 어디 있는데?”
그가 내 반응에 억울하기라도 한 모양인지 입술을 짓씹는다. 나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그와 더는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아 돌아누워버렸다.
“야.”
“전하랑 결혼할 생각 추호도 없어요. 말 걸지 마세요.”
“왜? 밖에 저 기사랑 하려고?”
“베일리스 경 이야기가 왜 여기서 나와요? 장미꽃 받으면 다 결혼하나요?”
“나보다 잘생겼어?”
“와, 전하 지금 너무 유치해요.”
결혼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물론 외모만 따지자면-지위를 따져도-그는 최고의 신랑감이었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내가 그를 남편으로 사랑할 수 있을 리 없고, 루페르트 또한 나를 여인으로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아니, 애초에 사랑하지도 않는다. 내가 결혼해서 황궁을 벗어나는 일이 그 정도로 싫은가.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어.”
“난생처음 받은 청혼을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만드신 것에 화가 나서요.”
그는 내 말에 품을 주섬주섬 뒤지더니 주머니 하나를 꺼내었다. 붉은 공단으로 만들어진 고급스러운 주머니에서 대강 아무 보석-고르는 손짓이 정말 성의 없었다-이나 집은 그가 내게 손을 뻗는다.
“자.”
“…….”
“다 줄까?”
“보석을 끼얹으면 없던 낭만이 생기나 봐요?”
나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루페르트의 손에서 주머니를 낚아챘다.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며 무게도 제법 묵직한 것을 보니, 안에 든 게 보통 값어치가 나가는 건 아닐 터다.
“이건 벨루아에 묵으신 비용으로 받을게요.”
“……벨루아 저택이 그 정도 금액을 받을 만큼 호화스러운 숙박시설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상여금이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흥 소리를 내며 고개를 다시 돌리며 대화를 끝내버렸다. 내가 쿠션과 쿠션 사이에 머리를 들이밀어 귀를 막아버리자 루페르트는 그제야 포기한 듯 잠잠해졌다. 웅얼거리며 혼잣말을 덧붙인 것 같기는 하지만 궁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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