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 또 죽이진 말아주세요 3권 - 로맨스 소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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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300-47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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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소개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는 있을까? 나는 이토록 모자란 치고, 당신은 그토록 메마른 자인데.

처음엔 그저 황제가 될 그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결코 죽이지 않을 절대적인 그의 편. 내 가문의 안위를 위해 세뇌하듯 했던 말이 시나브로 진심이 되었다. 그가 행복하길, 행복할 수 없다면 인간다운 삶을 살길.

그가 내게 진짜 마음을 줄 거란 기대는 처음부터 없었는데…….

“전하.”

“왜, 또. 모자라?”

“저한테 너무 잘해주지 마세요.”

“뭔 소리야. 언제는 잘해달라며?”

“조금만 잘해주세요.”

“늦었어. 나는 이제 너를 내 목숨처럼 아낄 테니.”

“…….”

“후회할 거면 지금부터 하도록 해.”

2. 작가 소개

에클레어

쓰고 싶은 글을(만) 씁니다.

3. 차례

#7. 퍼즐 조각

#8. 소유의 의미

#9. 열여섯, 태자

4. 미리 보기

“전하.”

“왜?”

“왜 아르눌프 전하에게 가서 난리를 치신 거예요?”

“너 맞았잖아.”

“전하도 맞으시잖아요.”

내 말이 어이가 없었는지 루페르트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는다.

“너랑 나랑 같냐.”

“뭐가 달라요? 아니, 전하가 맞은 게 더 큰일이죠.”

“달라. 그러니까 멍청하게 맞고 오지 마, 머저리 같은 게. 귀찮아 죽겠으니까.”

내가 맞고 오면 자신이 나를 때린 사람을 박살내야 하니 귀찮다는 뜻인가. 나는 조금 아연해졌다.

“제가 소중하세요?”

헛.

바람 빠지는 소리는 루페르트가 아닌 내가 낸 것이다. 라리에트, 너 미쳤니? 그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지만 않았다면 내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을 굴렀을 것이다. 뭐 그딴 걸 질문이라고 해? 입 밖으로 튀어나온 물음은 뱉자마자 후회할 유였다.

“네가 소중하냐고?”

살다 살다 이런 헛소리는 처음 들어본다는 듯 기막혀할 줄 알았는데 그는 예상외로 웃지도, 인상을 찡그리지도 않았다. 그는 내 질문을 진지하게 고찰하는 양 제 턱을 잠깐 쓸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

“제가 소중하다고요?”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귀 뚫어줘?”

“아, 아니요. 들었어요.”

그의 귀 뚫어준다는 말이 귀이개로 귀를 후벼주겠다는 뜻은 아님을 아르눌프를 통해 과격한 방식으로 배운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대답은 들었지만 믿기지 않았다. 소중해? 내가? 그에게?

“왜, 못 믿겠어?”

내가 제 말을 못 받아들이고 있단 걸 알았는지 루페르트가 묻는다. 나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못 믿겠다.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 노력을 했으면서 정작 그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 싫기도 했지만, 내가 그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기는 어려웠다.

“믿지 마, 그럼.”

“기분 나쁘세요?”

“아니. 네 믿음이 내게 왜 중요하지?”

루페르트가 다시 걷기 시작해 나도 그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의 표정을 보기 위해 발을 빨리 놀려 그의 옆에서 걸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평온하다. 한 줌의 동요도 없는 깊은 호수와 같았다.

“소중한 사람의 신뢰를 원하잖아요, 보통은.”

“넌 네 소중한 리본의 신뢰 따위를 원하나?”

“제가 지금 공단 리본 정도라는 말씀이세요?”

그가 내가 머리를 높게 올려 묶는 데 쓴 리본, 마침 바람에 휘날려 팔랑이는 그것을 가리킨다. 물건 취급 받는 것에 워낙 익숙해 화도 나지 않는다. 차라리 그렇게 말해주니 믿음이 갔다.

“소중한 사람이 아니라 소중한 물건이군요, 저.”

“그게 뭐가 중요해.”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에게 원하는 것은 감정적인 유대나 정서적 보살핌이 아닌, 말 그대로 신체의 보호였으니까. 나와 내 가문의 존재가 끊기지 않고 연속되는 것.

내가 대답이 없자 불만이라도 품었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발을 멈추고 나를 슬쩍 돌아보았다.

“네가 아껴달라며. 말했잖아. 나는 사람 같은 거 아낄 줄 몰라.”

“토리는요?”

“토리는 달라.”

“전하, 저는 전하가 사람을 아낄 줄 모르는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그의 걸음을 재촉하며 말을 이었다. 어느새 저녁이 되어가고 있었다. 뉘엿뉘엿 기우는 해가 잘 정돈된 붉은 궁의 정원을 물들였다. 가을 따라 피는 꽃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몸을 흔드는 풍경이 제법 아름다웠다.

그러나 루페르트는 그런 꽃들에게 눈길 한번 주는 법 없이 앞만 보고 걸었다. 그는 항시 여유가 없다. 그에게는 눈앞에 주어진 목표가 있었고, 그는 그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서 살았다. 시간낭비를 하는 법도 없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최단기간 내에 시행했을 테니까.

그럼에도 나를 위해 움직였다. 나로 인해.

나는 풀물로 적셔진 그의 검은 구두코를 바라보다 고개를 들었다. 머리라도 얻어맞은 듯, 벼락같이 깨닫고 말았다. 그가 나를 아끼지 않을 리 없겠구나.

급하게 달려왔던 것이다. 내 얻어맞은 몰골을 보고 분에 차서. 자신이 여장을 한 상태라 풀밭을 지나면 드레스가 엉망이 되리라는 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 나는 그의 옷들을 가져오려다 얻어맞았는데, 그 때문에 그는 본인의 드레스를 망쳐버린 꼴이 됐다.

“전하가 저를 아껴주신다 생각해요, 저.”

“못 믿겠다며.”

“아니에요. 믿을게요.”

그런 처참한 환경에서 자란 이에게 이 정도의 보호는 아껴주는 것이지 않겠는가. 루페르트는 생전 그런 보호를 받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테니까. 소중하게 여겨진 적이 없는 사람이 타인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힘들 터다.

그렇게 생각하니 루페르트에게 더없이 미안해졌다. 나는 그를 마음속까지 귀히 여기지는 못할 테니까. 끝까지 원망하고, 괴물이라 미워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필요해서 달콤한 말을 속삭이겠지. 나는 정말 이기적인 어른이었다.

“전하.”

나는 내게 등을 보이는 루페르트의 소맷부리를 붙잡았다. 화려하지만 낡은 드레스 밑으로 가는 손목이 눈에 들어온다. 정말 가늘었다. 성장해버려 사람들의 눈에 띌까 제대로 먹지 못해서. 울컥했다. 나는 왜 힘없는 어른일까. 지금은 어른조차 아니다. 어린 그의 주변에는 어쩜 제대로 된 어른이 단 한 명도 없나. 다독이고 괜찮다 말해줄 사람이 어찌 이토록 전무할 수가 있나.

“좀 제대로 드세요, 너무 마르셨어요.”

“왜 갑자기 난리야.”

“저도 전하를 소중히 여기도록 노력할게요.”

그를 향한 미움이 내 영혼을 죄 집어삼키더라도.

“전하는 행복해지실 수 있을 거예요.”

“…….”

“행복해지실 거예요. 매일 입가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하고 겨워 밤에 눈을 감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헛소리.”

“제가 장담해요. 저한테는 미래가 보이거든요.”

내가 본 미래는 루페르트의 행복과는 사뭇 거리가 있었지만 나는 애써 확신을 가졌다. 그를 좋아할 수는 없어도 그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모순일까? 모순이었지만 나는 그가 정말로 행복해지길 바랐다. 그가 행복하다면, 나의 안위를 이용해서 어린아이를 이용하는 내 죄책감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것 같았으니까.

루페르트는 아득바득 우기는 내게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금 찾아온 침묵이 더는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아 나도 입을 다물었다.

붙잡은 그의 소매를 놓지 않고 걸었다. 그도 나를 쳐내지 않아 우리는 별궁에 도착할 때까지 나란히 걸었다. 붉은 노을이 마음을 녹일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그가 나를 밀어내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상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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