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뭐가 문제야? 남주 같은 건 바꾸면 되지!”

여동생이 쓴 소설, 이렇게 진행하면 인기 없어! 잘 진행되던 이야기를 중간에 자신이 파투내는 바람에 본격 남주가 체인지되고, 그 소설은 대 to the 박!

하지만 이게 뭐야!

눈을 떠보니 내가 그 소설 안에 있고,

거울 속 이 미녀는 바로바로, 이제는 조연이 되어버린 미래 폭군의 누나 ‘알리시아’!

여조도 악조도 아닌 몇 줄 안 나오는 비중 없는 캐릭터로, 부귀영화는커녕 이리저리 치이다 폭군(예정)남동생이랑 같이 목이 잘리게 생겼다!

내가 어쩌자고 그런 소릴 해가지고, 이제 와 혀를 자를 수도 없고…….

안 되겠다! 살아날 길은 이 소설을 벗어나는 것뿐!!

결국 몇 줄 안 나오는 남주의 친구인 상인을 꼬셔 이 나라를 뜨기로 한다.

그. 런. 데.

막상 밤을 함께 지낸 후 보게 된 남자의 외모가 심상치 않다.

“어, 어젯밤엔 분명 그 이름 말고 다른 이름으로 들었던 것 같은데. 으음, 뭐라더라. 라, 란슬롯 님이랬던가.”

“아, 그거 내 친구.”

“…….”

“왜, 문제 있어?”

저기요.

문제가 있냐고? 많지, 많다마다.

……남주가 왜 내 침대에서 나와!

2. 작가 소개

아페르타

3. 차례

2부

#5

#6

#7

#8

3부

#1

4. 미리 보기

“그럼 이곳에서 당신은 뭘 하겠다는 건지?”

아레스가 한 팔로 턱을 받쳤다. 본인이 무관심을 원한다니 최대한 맞춰야 보겠지만 그녀의 안위가 걸린 일에는 이처럼 예민해졌다.

“전에 외부 대장간 이야기를 잠시 드린 적 있죠? 제가 맞춘 틀에 기성품을 찍어내려면 타 지역에서 가져오는 걸로는 한계가 있어요. 또 틀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제가 손보는 데만도 수개월이 걸릴 테니까요.”

“……그래서 아예 대장간을 세우시겠다?”

역시 눈치 하나는 빠른 남자다. 이런 점에서 편하다는 것 하나는 부인할 수 없는지라 그녀의 마음이 내심 복잡해졌다.

“네. 각하께서 제 데뷔탕트 볼에서 감사하게도 폐하의 이름으로 거액을 기부해주셨잖아요. 기억하시죠?”

“……그랬을걸.”

“전쟁고아를 위해 사용할 기금이었으니까요. 일루나 지역의 백성 절반 이상이 외지에서 온 전쟁미망인이나 고아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가난이 가난을 부른다고, 남편이 전쟁에서 죽고 돈 한 푼 없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곳이 수도에선 일루나 한 곳뿐이죠.”

“우아, 황녀님께선 언제 그것까지 다 조사를 하셨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준비성이 철저하시군요.”

“아뇨. 사실 조사는 아니고…… 수년 전에 제가 거기서 살아볼까 했었거든요.”

“아…….”

순간적인 침묵이 기사들 사이를 떠돌았다. 지금은 아레스의 명에 따라 그녀에게 충성을 바치는 자들이라지만 대부분이 고위귀족 출신이다.

당황스럽겠지, 알리시아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양 으쓱거렸다.

“어머니는 아프시지, 그 나이에 화병에 다 걸리는 동생이 그때라고 달랐겠어요? 그러니 저도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먹고살죠.”

“……황녀님.”

“가진 돈으로 겨우 자리 잡을 만한 데가 일루나 하나였어요. 누구한테 발목 잡혀 못 오게 됐지만 거기 모인 사람들 전부 저보다 못했으면 못했지 낫진 않을 거예요. 저는 최소한 먹고살 기술 정도는 있었으니까.”

그녀가 당당하게 말을 이어갈수록 괜히 민망해하던 기사들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조르쥬를 휘어잡을 때도 그랬지만 동정을 사자고 꺼낸 이야기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담담히 말하는 알리시아에게 웰링턴 경이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그러셨군요, 황녀님.”

“뭐 그런 제가 지금은 블릿슈에서 제일 땅값 비싼 데 살고 있으니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아는 거 아니겠어요?”

농담 아닌 농담에 몇몇 기사들이 웃으며 동조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다 견딜 만한 그녀도 이상하게 아레스에겐 눈길을 주기가 어려웠다.

“어쨌든 이대로라면 일루나는 100년이 지나도 전쟁고아들만 가득한 빈민가가 될 거예요. 각하가 기부한 막대한 돈을 풀면 적어도 몇 년은 배곯을 걱정은 없겠지만 또 그 이후에는 더 큰 빈민가가 될 뿐이겠죠.”

“어째서요? 그래도 단 몇 년이라도 형편이 나아진다면…….”

“한번 배를 채워봤으면 다시 못 굶는 법 아니겠어요? 자본 없고 기술 없는 무법지대에서 안 굶으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죠.”

살인과 약탈, 빈민촌에서 일어나는 범죄라는 것이란 한숨이 나올 만큼 뻔했다. 꾸준히 없었으면 모를까, 한번 고기 맛을 본 자들에게 그 맛을 잊고 살라는 것만큼 잔인한 주문은 없다.

“끝까지 책임져줄 거 아니면 확실한 구제가 필요해요. 자기 손으로 벌어서 먹고살 일자리가 있어야 자립심도 생기겠죠. 검은 태양에서도 어차피 수도 어딘가엔 전용 대장간이 있어야 했구요.”

“네. 뭐 황녀님 뜻은 다 좋은데.”

막스 경이 슬쩍 손을 들고 끼어들었다. 아레스 앞에서 알리시아의 말을 끊는 자체가 민망한 표정이었지만 확실히 해두어 나쁠 것도 없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귀족들의 지지세력 아니겠습니까? 일루나에 대장간을 세워 백성의 호감을 얻는 것도 좋긴 하겠지만 귀족들이 선뜻 그런 데 나설 리가…….”

“그러니 명분이라 했겠지.”

“각하.”

“귀족들은 오직 명분이 있어야 움직여. 우리가 보기엔 흥청망청하는 파티 하나도 그럴듯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이제 전쟁도 끝이 났겠다, 선황의 추모기간 동안 연회까지 제대로 못 연 자들이니 어떻게 첫 테이프를 잘 끊을지 눈이 벌게져 있을 테지.”

아레스가 쓴웃음을 삼켰다. 귀족으로 태어난 이상 그들의 습성을 알 수밖에 없다. 본인이 익숙해지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각하의 말대로 귀족들의 공식연회는 추모기간이 끝난 지금부터 시작이죠. 앞으로 레이디들의 데뷔 무대며 각종 연회가 줄을 이을 텐데 어느 가문이든 이왕이면 좋은 명분을 찾고 싶어 하지 않겠어요?”

“…….”

“자그마치 2년 만에 열리는 사교 연회인걸요. 처음이 중요하다고, 좋은 일에 나선다면 가문의 이미지 관리에 더할 나위 없겠죠. 일단 내로라하는 가문에 초대장을 보낼 거예요. 물론 그중에서 진심으로 참여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더 좋을 거구요.”

알리시아가 책상 위 지도를 다시 돌돌 말았다.

딱히 귀족들을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진다면 영 승산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럼 전 이제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아서요. 먼저 나가볼게요.”

“잠깐, 그보다 정작 나한테 해야 할 일은 안 한 걸로 아는데?”

툭, 아레스가 가볍게 막 말려 올라가는 지도 끝을 눌렀다. 그래봐야 손톱 끝만 닿았다지만 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아무리 당겨봐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받아야 할 답변을 못 받았지 않나.”

“무슨…… 아니, 설마.”

이 남자가 또 왜 이래,

영문을 몰라 그를 바라보던 그녀가 입을 떡 벌렸다.

물을 걸 물어야지! 원래 남의 눈 신경 안 쓰는 그 성격이야 익히 알았지만 대놓고 묻겠다 선전포고를 한 이후 세상에 더없이 뻔뻔해졌다. 누가 볼까 책상 맞은편으로 상체를 낮춘 그녀가 입 모양을 뚜렷이 했다.

‘미쳤어요?’

‘아니. 내가 왜?’

기다란 눈매가 접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급격히 숨이 가빠졌다. 흐흠. 주위에서 들려오는 헛기침 소리가 만만찮은 걸 보면 이미 알아들을 사람은 다 들었다 봐도 무방했다.

사생활이라곤 요만큼도 없는 무신경한 남자들 사이에서 그녀도 더 버틸 재간이 없어졌다.

“제가 지금은 몹시 바빠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네요! 대장간 일이나 연회 일도 그렇고 동생 화병까지, 끝내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거든요?”

“혼자 하긴 힘들 텐데? 그 방면으로는 도와줄 만한 사람들도 몇 있고. 정 아니면 내가.”

“정중히 거절할게요. 이게 다 위대하신 각하께서 어린 소년의 꿈을 위해 처음부터 요정 여왕같이 깜찍한 레이디한테 청혼하셨으면 되는 일 아니겠어요?”

알리시아가 기어이 힘을 줘 지도를 빼앗았다.

또각거리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 뒤로 문이 닫히자마자 숨죽였던 헛기침 사이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커졌다.

“아, 배야. 전 한창때도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 요정 여왕보다는 바다마녀 전설 쪽이 취향이었죠. 물에 젖은 마녀라니, 우아, 나 그땐 진짜 영혼도 팔 뻔했는데.”

“조르쥬 부대장, 그만하지 못하겠나.”

“왜요? 귀족 나리들 보는 동화에는 설마 우리 바다마녀 누님이 빠지신 건 아니겠죠?”

간만에 화기애애하게 한마디씩 보태는 이들을 보며 아레스가 정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그나저나 우리 단장님, 진짜 대단한 처남을 맞으시게 생겼습니다. 요정 여왕이라니 스케일 한번, 크흐.”

“대단하시긴 하지, 무려 ‘황제 폐하’ 아니신가.”

“…….”

웃으면 죽인다는 말, 아직 취소 안 했다.

아레스가 어디 한번 계속해보라는 듯 사악한 미소로 응답했다. 오늘도 분위기 잘못 탔다며 고개를 젖히는 조르쥬의 옆에서 웰링턴 경이 혀를 찼다.

“각하께서 이해하시죠. 황녀님도 폐하 때문에 속이 상하시긴 한 듯합니다. 아직 보령이 어리셔서 그렇지 폐하께서도 남자 아닙니까. 뭐랄까, 그건 취향의 문제일 뿐인데.”

“취향?”

“네. 굳이 황녀님과 비교를 하셔서 그렇지 그맘땐 요정 여왕 이런 데 환상이 있을 수도 있는 나이죠.”

“흐음, 요정 여왕이라니. 취향 한번 고상하시군.”

방금까지 이곳에 있던 깜찍한 여자를 떠올리는 아레스의 감회가 새로워졌다. 물론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할 이들의 감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

“거의 똑같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