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아니, 당신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랑이 정말 사랑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더 많이 사랑해.

짙은 재즈가 흐르는 그곳에서 사랑을 잃어버린 휘성은 세령과 마주했다. 맨해튼 한 잔과 대화 두 마디. 그리고 키스. 온기만을 나누는 차가운 위로. 그렇게 그들은 사랑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을 알게 된 주변에서는 그 사랑을 축복하지만은 않는데…….

“눈 떠.”
세령은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휘석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난 여기에 줄곧 서 있었어.”
세령은 까치발을 딛고 휘석의 목을 끌어안았다.
“윤휘석! 떠나지 마. 내가 뭐라고 헛소리해도 날 떠나지 마.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날 떠나지 마.”
한 마디 할 때마다 그 버거운 감정을 토해내듯 아픈 표정이었다.
“바보 같은 여자야. 어떻게 해야 네가 날 믿겠니. 사랑해, 세령아. 널 떠나는 일은 없어. 절대로.”



작가 소개

이진세

필명 빈집.
‘마스카라’, ‘그 남자는 교정이 필요해’ 출간
‘시작하다(단편집)’, ‘초대’ 전자책 출간
단미그린비에서 일수장 찍으며 느리게 느리게 ‘나비내기’와 ‘마르스’ 연재 중.



미리 보기

약속한 사람이 오지 않는다니 일어나야 했지만 세령은 움직이지 않았다. 밖에 나가면 추울 것이다. 바깥의 추위를 가늠해보려 출구를 힐끗 보고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자 터틀넥 속으로 얼굴이 쏙 들어가 눈만 보였다. 밖에 나가도 추위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마시는 쪽이 나을 것 같았다.
“일행이 안 오시는 모양이군요.”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던 맞은편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나직하고 기품 있는 목소리였다.
“그래서요?”
얼굴은 여전히 옷 속에 감춘 채였지만 진섭이 오지 않는 일에 그가 연관되기라도 한 것처럼 세령의 말투는 시비조였다.
“제가 기다리는 사람도 안 올 것 같군요.”
“그런데요?”
“별 뜻 없습니다. 바람맞은 사람끼리 술이나 한 잔 하자는 거지.”
상대방의 목소리에는 정말 별 뜻이 없어 보였다. 세령은 피식 웃었다.
“그쪽이 낸다면 마셔 드릴 수는 있겠네요.”
“영광이군요.”
세령의 대답에 응하는 그의 한쪽 입술 끝이 약간 올라갔다.

“그러니까, 술 마시기 내기를 하자는 건가요?”
세령은 앞에 앉은 남자가 한 말을 되물었다.
“그래요.”
남자의 목소리에는 감정이 묻어 있지 않다. 묘한 반발심이 생겼다. 남 일에 좀처럼 간섭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기를 원하는 세령이었지만, 남자의 목소리에 어떤 감정이 묻어 나오는 것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계획한 만취에 대한 좋은 구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죠. 내기의 전리품은 뭘로 할까요?”
“이긴 사람이 원하는 것을 진 사람이 주는 것으로 합시다.”
남자는 말을 끝내고 종업원을 불렀다.
“그건 너무 광범위해요. 내가 이겨서 집 한 채 사 내라고 한다면 들어줄 수 있나요? 바다에 가서 고래를 잡아다 줄 수도 있어요? 주먹만한 다이아몬드는?”
세령은 되지도 않을 억지를 부려 보았다.
“뭘 원합니까?”
남자는 세령에게 물었다. 몰라, 내가 원하는 건 이 세상에 없어. 남자를 똑바로 보며 그녀는 동문서답을 했다.
“칵테일로 하죠, 계산하기 쉽게.”
“맨해튼?”
“좋아요.”
종업원이 가져온 칵테일 잔을 가볍게 부딪치고 세령은 단숨에 마셔 버렸다. 명치를 따라 흐르는 뜨끈한 느낌이 뱃속으로 사라졌다.
“나야 습관적으로 바람맞는다 치고, 그쪽은 어쩌다 바람을 맞았나요?”
세령은 아몬드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물었다.
“나오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한 약속이었다면 대답이 됩니까?”
남자는 다 마신 칵테일 잔을 오른손 검지로 톡톡 두들기며 바라보고 있었다.
톡, 톡.

미디어 리뷰가 없습니다.

별점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