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에 반한다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대책없는 일이렷다.
곱디 고운 대감 댁 아가씨, 허규원.
고운 심정에 도망친 노비들 도와주려다 한눈에 도령에게 반해
스스로 몸종임을 자처한다.

그것도 사내라 거짓까지 고하며!


이 귀여운 놈을 보아라.
생긴 것은 꼭 계집애같은 느낌인데 이름은 말복이다. 하는 것도 엉성하고
밥 짓는 것도 어설픈데 그 모습이 밉지 않으니 꼭 동생같구나.
저자의 떠도는 괴 소문의 주인이자 말복의 주인, 언.
어쩐지 자꾸, 자꾸만 이 몸종 놈이 애틋하고 안고 싶어지는 것은 어찌해야하는가?


-본문 중에서-

갑작스레 언이 성큼성큼 걸어와 허리를 숙여 바로 코앞으로 규원의 앞에 얼굴을 드밀었다.
“힉!”
정신을 차리니 바로 앞에 있는 그의 얼굴에 경악하며 들고 있는 것을 꽉 안은 그녀에게 언은 간지러운 부분을 더더욱 간질이는 것처럼 낮고 아슬아슬하게 속삭였다.
“왜, 싫으냐?”
“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해도 된다.”
“더운 날에 혹 피곤하신 것은 아니신지.”
겨우 더듬거리지는 않았지만 눈이 잘못 마주치며 홀딱 기절이라도 할까 봐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그러나 이리저리 따라오는 고개 때문에 자꾸 눈이 마주쳐 입 밖으로 뭐라도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이에 올라가는 그의 입꼬리가 상당히 묘하다.
“보아하니, 네놈도 소문을 듣긴 들었구나.”
“……예?”
“그래, 뭐라 들었느냐.”
아니, 왜 이러십니까. 소녀 죽습니다! 엉엉, 울기 직전으로 일그러진 규원에게 집요하게 달라붙어 갓 안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릴 듯 다가온다.
“궁금하지 않느냐. 나 같으면 아주 많이 궁금할 듯한데.”
“아닙니다. 저는, 저는 그저 도련님을 모시면 되는지라.”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조금씩 더 다가오는 그를 피해 한 걸음, 두 걸음 물러서는 규원을 따라 역시 한 걸음 다가선 그는 은근하게 말을 이어 갔다.
“오호. 모신다? 어찌 모실 것인데?”
“왜, 왜 이러십니까. 도련님 저 말복이입니다.”
대뜸 나온 말에도 먹히지 않았다. 두 손 끌어 모아 눈 꾹 감고 움츠리자 사르르 녹듯 미소를 짓는다.
“말복이라.”
“예, 예. 예……말복입니다.”
“알지. 내 것인 말복이 아니냐.”
쿵.
마음이 발끝까지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 어쩜 저렇게 가슴 설레게 하는 말을 잘도 하는 걸까. 내 것인, 그저 몸종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떨려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플 만큼 뛰는 가슴속에 척, 하고 유과를 올렸다. 지금껏 했던 것이 농이라는 듯 웃으며.
“유과 두 개면 어찌, 내게 장가라도 올 테냐?”
꽤나 과한 장난을 치며 톡톡 건드린 언은 당장이라도 규원이 사색이 되거나 넘어가기라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유과에 눈을 둔 그녀는 미간을 좁히며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말했다.
“두, 두 개로 어찌 사람을 탐하십니까.”
“……그게 문젠가.”
“그게 문젭니다.”
그보다 더한 문제는 없다고 하는 것처럼 까만 눈 데구루루 굴리며 말하는 규원에게 언은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다른 건 상관없단 말이지?”
그 웃음이 자못 음흉하다고 하면, 잘못된 것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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