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했다. 이 사람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로 인기를 누리는 작가 강인철. 은둔생활을 하는 그의 앞에 나타난, 조금은 엉뚱해 보이는 교정자 여란. 엇갈리는 듯, 마주치는 듯, 같은 집에서도 그의 얼굴을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글에 빠져들면서 여란은 인철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지만, 인철은 자신에 대한 관심을 거부하고 냉정하게만 대한다.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서서히 자신을 드러내는 인철. 이제 여란은 그의 인생을 교정해주기로 결심하는데…….

“미안하면 내게 키스해요.”
“네? 제가 어떻게 작가님한테 키스를 해요!”
목소리마저 갈라지며 어색하게 불쑥 나온 말인데 여란이 펄쩍 뛰었다. 당황해 또 붉어진 여란의 얼굴, 입술. 다시 꿀꺽 침이 넘어간다.
“당신이 못하면 내가…….”
다가간 손이 여란의 안경을 벗기고, 턱을 잡았다. 눈만 동그랗게 뜨고 그대로 얼어버린 여자. 인철은 그 여자의 입술을 얻기 위해 무릎으로 일어났다.
입술은 촉촉했다.

2. 작가 소개

이진세

필명 빈집.
‘마스카라’, ‘그 남자는 교정이 필요해’ 출간
‘시작하다(단편집)’, ‘초대’ 전자책 출간
단미그린비에서 일수장 찍으며 느리게 느리게 ‘나비내기’와 ‘마르스’ 연재 중.

3. 차례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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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4. 미리 보기

“저기요, 작가님?”
여란은 정확히 7시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 기척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올라가려다가 혹시 지난번처럼 옷을 갈아입는 중이라면 상당히 난감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불러야 하나 생각하고 있을 때 올라와요, 하는 대답이 들렸다. 여란은 후, 하고 깊게 숨을 내쉰 후에 올라갔다.
인철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지 창밖을 보고 있었다. 불 켜지 않은 방 안, 비낀 석양으로 생긴 실루엣은 그것 그대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비주얼이 되는 사람들은 참말 좋겠다, 여란은 쩝 입맛을 다셨다.
“불 켜세요.”
“네.”
인철의 지시에 따라 불을 켜고 여란은 책상 근처에 서 있었다. 이쪽으로 돌아서는 인철의 얼굴을 보다가 여란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어떤 몹쓸 사연이 있는 흉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쩌면 저렇게 완벽한 얼굴을 망쳐 놓았는지. 안타까웠다. 처음 보았을 때에는 당황스러웠었는데 지금은 그의 얼굴 중 한 부분이려니 하면서도 자꾸 안타깝고 서글퍼졌다.
“설명해봐요. 왜 그 단어를 지적했는지.”
“아, 네. 제가 느낀 천형은 보랏빛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지독한’이라는 단어가 은근히 반복이 되고 있어요.”
앉아 주셨으면 좋겠는데,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여란은 설명을 시작했다. 창문 옆 벽 쪽에 기대 서 있는 인철을 보면서 말을 하자니 자신이 말하는 내용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전작과 분명히 다른 분위기인데 이 단어 때문에 전작 ‘붉은 강’이 자꾸 떠오른다고나 할까요? 그때 주인공 말버릇 중 하나였었잖아요.”
“그래서?”
“음, 그래서 다른 단어로 대체하든가 삭제하든가 했으면 좋겠어요. 삭제해도 충분히 그 느낌이 살거든요. 분위기가 오히려 그 단어보다 표현이 잘 되어 있으니까요.”
“칭찬인가?”
“네?”
여란은 눈을 껌벅거리며 인철을 보았다. 누가 누굴 칭찬할 수 있단 말인가? 인철은 젊은 작가 중 손꼽히는 인물이고 자신은 대학 시절 소설을 쓰겠다고 잠깐 덤볐다가 단편 하나도 맺지 못하고 포기해버린 사람인데. 여란은 괜히 울적해져서 인철의 얼굴에 미소 비슷한 어떤 표정이 스친 것을 보지 못했다.
“지적했던 문법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얘기해봐요.”
“강 작가님의 이번 글은 문장의 길이가 긴 편이에요. 긴 문장의 경우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거든요. 거의 지적할 부분이 없긴 한데, 제가 적어 놓았던 두어 문장 정도가 약간 애매해요. 일반적인 문장이라고 보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데 아무래도 소설이다 보니까 조금 거슬리거든요. 아니 거슬린다기 보다는 음, 그러니까…….”
여란은 자기도 모르게 인철의 비위를 건드리게 된 건 아닌가 싶어 급히 덧붙이려 했다. 그러나 웬걸, 머릿속에 텅 빈 것처럼 대체할 만한 단어가 통 생각나지 않았다.
“됐어요. 충분히 알아들었어요.”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제가 말할 때 순발력이 좀 없어서…….”
“이미 읽어 본 내용이라 이해했어요.”
“다행이네요.”
여란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까다롭게 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다른 작가들보다 나았다. 정상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 그런가, 생각보다 인정이 빠른 편이었다.
“정여란 씨.”
“네?”
“안경 한 번 벗어봐요.”
“네에?”
생각지 못한 인철의 요구에 여란은 경악했다. 도무지 이 상황에서 왜 자신이 안경을 벗어야 하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을뿐더러, 뚜벅뚜벅 걸어오는 인철의 기세는 너무 위압적이었다.
“나는 내 오류를 인정했으니 정여란 씨 역시 그렇게 해줘야 하지 않나? 아무리 봐도 이 네모난 안경은 당신과 안 어울려.”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인철이 양쪽 안경다리에 손을 댔다. 쿵쿵, 쿵쿵, 심장이 주책없이 뛰기 시작했다. 여란은 인철의 셔츠 두 번째 단추에 시선을 고정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쓰기 시작한 안경은 이제 자신의 일부분이 되어서 잠자는 시간과 씻는 시간은 제외하고는 항상 끼고 있었다. 공중목욕탕에 가서 씻을 때, 가장 난감한 것이 안경이었다. 아무리 여자들만 있다고 하지만 남들은 자신을 속속들이 다 보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 때문에 공중목욕탕은 웬만하면 피하는 쪽이었다.
그래서일까 여란은 인철이 천천히 벗기고 있는 것이 안경이 아니라 자신이 걸치고 있는 옷인 것만 같았다.
안경이 얼굴에서 떨어지자 여란은 눈을 꼭 감았다.
“눈을 떠야 내 안목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면 뭔가 다른 걸 바라는 겁니까?”
뭔가 다른 거? 뭐? 눈 감고 있는 여자가 바랄 게 뭐가 있는데? 아! 키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여란은 눈을 번쩍 떴다. 은근히 키스를 바라고 있다는 오해는 사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말이다.
안경을 가지고 조금 물러선 인철이 안개 속에 서 있는 듯 부옇게 보였다. 여란은 자세히 보기 위해서 눈을 찡그렸다. 조금 선명해진 인철이 다시 다가와 안경을 끼워 주었다. 그때까지도 심장은 정상이 아니었다.
“내려가 봐요.”
“네?”
“얘기 다 끝났으니까 가 보라고.”
안경을 벗겨놓고서 그 사실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려가란다. 여란은 왠지 놀림당한 기분에 주먹을 꼭 쥐고 돌아섰다.
“정여란 씨, 웬만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는 안경 벗지 말지.”
쿠쿵, 심장이 바닥에 내려앉는 것과 동시에 다리가 휘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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