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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신데렐라 예행연습 1권

여해呂海 지음도서출판 가하201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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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님 ‘덕분에’ 이루는 신분상승 따위 날려버려!
웹 기획자 효령, 꿈에 그리던 프로젝트를 맡게 된 기쁨도 잠시, 클라이언트인 완벽주의자 규진 때문에 눈물로 지새는 밤 연속이다. 하지만 은근히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그. 과연 규진은 백마 탄 왕자님일까요? 효령은 구두를 잃어버린 신데렐라일까요?
2. 작가 소개
여해(呂海)
Wanna Be Storyteller
온라인 필명 네오메이커
밥벌이하느라 바쁜 호모 이코‘노믹’스
틈틈이 글쟁이의 기쁨을 만끽하는 호모 루덴스
충무공 이순신의 자 여해(汝諧)와 유사한 이름이 무척 자랑스러운 호모 코레아‘니우’스
백수가 체질이라 일하고 글 쓰는 틈틈이 놀 궁리만 하는 호모 날‘라리’안
역사와 사회에 관심 많은 호모 폴리티쿠스
가와사키 GTR 1400을 열렬히 짝사랑 중. 구입하는 대로 튜닝해서 사막에 끌고 갈 꿈에 부풀어 있다.
▣ 출간작
신데렐라 예행연습
비혼녀의 연애 USB
호모 메리지쿠스 - 결혼하는 인간
3. 차례
프롤로그
제1장 인생의 호랑당말코들
제2장 신데렐라 VS 캔디? 캔디는 패자, 신데렐라는 승자!
제3장 우연의 결과 VS 필연의 예고. 사랑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는 어디에?
제4장 Cose Della Vita - 인생의 여러 일들
4. 미리 보기
다음 날, 효령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들고 간신히 잠을 깼다.
취기 탓에 눈이 잘 떠지지가 않았지만 몸을 덮고 있는 이불의 감촉은 따스하고 포근했다. 누군가 잘 챙겨서 덮어 준 것이 분명했다. 까다로운 남자가 과일바구니를 들고 찾아와 함께 술을 마셨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갔나? 갔겠지? 배웅 안 해 줘도 알아서 자기 발로 갔겠지, 뭐.’
지난밤 규진과 나눴던 이야기들이 한두 마디씩 떠올랐다. 자세한 대화가 기억나진 않았다. 하지만 일할 때와는 달리 그가 편안하고 털털하게 그녀를 대해 주고 배려해 준 것만큼은 분명히 기억났다.
PM 이 대리는 여전히 두렵고 피곤한 존재임에 분명했지만, 인간 이규진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랑당말코는 아닌가 보네.’
긍정적인 평가였다.
천천히 실눈을 뜬 효령은 방 안 공기가 다른 것을 느끼며,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털고 좌우를 살폈다.
‘우리 집이 맞긴 한데 말이야……. 공기가 참 좋네. 오늘따라 오피스텔 창문 밖의 풍경이 유달리 선명하고. 관리인 아저씨가 오늘 오피스텔 창문 밖에서 닦는단 얘긴 안 했는데.’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뭔가 찌익찍 하는 기분 나쁜 소음이 들려왔다.
‘집에 쥐가 있나? 아닌데. 이상하네. 세탁기는 왜 지 혼자 돌아가? 내가 예약해 놨나? 아닌데. 이상하네.’
효령은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기분 나쁜 소음은 부엌 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소음의 근원지에 누군가 있는 것을 발견한 순간, 그녀는 갑자기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웅크리고 앉아 뭔가를 하고 있던 규진은 그녀를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일어났어?”
효령의 입이 멍청하게 벌어졌다.
‘아니 대체 이 냥반이 왜 여기 있지? 왜 아직 안 간 거지? 안경은 또 왜 빼고 있어? 아니, 저, 저, 저, 저 와이셔츠 단추는 왜 저렇게 많이 풀려 있어? 저, 저, 저건 또 뭐야? 손가락이 베일 만큼 칼주름이 잡혀 있던 바지는 왜 저렇게 자글자글 구질구질, 주름이 여자 블라우스 셔링처럼 잡혀 있는 거야?’
눈에 훤히 드러나는 그녀의 표정 변화에 규진은 잠시 입술을 깨물고 웃었다. 그 모습에 효령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말았다.
‘서, 설마…… 내가 사고…… 친 거야? 정말?’
광풍처럼 몰아닥치는 한기에 부르르 몸을 떨며 효령은 옷차림을 살피고 몸 상태를 가늠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게 아니면 뭐지?’
효령은 잔뜩 놀란 눈으로 규진을 미심쩍게 바라봤다. 열심히 주파수를 맞춘 후 강력한 텔레파시를 보냈다. ‘너 왜 여기 있냐, 왜 안 갔냐, 우리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라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규진은 그녀가 보내는 텔레파시와 주파수를 휙휙 물리치고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잘 잤어? 주량 센 줄 알았는데 아니네. 겨우 맥주 두 캔에 쓰러지데?”
친근하게 들리는 규진의 반말을 듣자, 지난밤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니, 사실 대화가 아닌 그녀의 일방적인 선언이었다.
『그래애? 나보다 겨우 세 살 많아? 잘난 척하더니 고작 세 살이야? 그것밖에 안 살았어? 됐어, 됐어. 야, 야. 다 필요 없고 이제 말 트자. 클라이언트고 뭐고 다 필요 없어. 세 살? 우습지. 난 아래위로 10년 커버해. 싫으면 넌 그냥 존댓말 해. 난 야자 틀래. 야자 터!』
정신이 번쩍 들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늘같은 클라이언트를 향해 너, 너, 너 하며 손가락질 했던 것이 생각나자 우르릉 쾅쾅 천둥벼락소리까지 들렸다.
‘이놈의 술이 웬수다, 웬수! 인간 김효령, 오늘부로 술 끊는다.’
술에 취했다가 깨어난 사람이 언제나 그러하듯 효령은 속으로 금주를 선언하며 울부짖었다.
그사이 규진이 침대 위에 털썩 앉았다. 애인의 집에 놀러온 남자처럼 자연스럽고 태연한 그 태도에 효령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규진에게 닿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며 그녀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효령은 ‘요’에 특히 힘을 주며 강조했다. 규진은 아주 조금 서운했다.
‘말 트자고 할 땐 언제고. 어떻게 된 거예요, 라……. 내가 자기를 덮친 줄 아나? 물론 원하거나 허락만 한다면야 당장이라도 그럴 수 있지만.’
그녀의 복숭앗빛 뺨과 코를 야금야금 깨물며, 지난밤에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 짓도 안 했으니 안심하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불끈 일었다. 자기를 옆에 두고도 푹 쓰러져 버려서 마음이 조금 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자기를 믿는 증거라고 생각했다는 것까지도 말하고 싶었다.
규진은 슬쩍 효령을 쳐다봤다. 파들파들 떠는 폼과 말투가 지난밤 ‘야자 터!’의 만행을 후회하고, 잠든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자를 안고 키스하고 싶은 욕심에 몸이 욱신거리는 속에서도 자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늘만큼은 그녀의 노력에 함께 동참하기로 했다. 물론 딱 오늘까지만.
규진은 욕구를 지그시 누른 후 손에 들고 있던 청 테이프를 들어 올리며 태연히 말했다.
“청소 좀 했어요. 빨래도 좀 하고.”
“예?”
효령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난 6개월간 바쁘다는 핑계로 청소라고는 무선 청소기로 두어 번 민 것이 고작이요, 먼지가 쌓이고 쌓여 인테리어가 될 때까지 내버려 둔 낯익은 방풍경이 하루아침에 달라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충 여기저기 떨어뜨려 놓은 빨랫감들이 하룻밤 사이에 물에 폭폭 적셔졌다가 건조대에 팽팽한 자태를 자랑하며 나란히 줄지어 놓여 있음은 물론이요, 심지어 자기가 대충 빨아 뭉개 놓은 걸레까지 곱게 접혀 있었다.
‘저 옷이 원래 저런 색깔이었던가? 저 티셔츠, 저 곰돌이 푸우 후드 티셔츠가 원래 저렇게 뽀얀 아이보리색이었나? 아니 저건 또 뭐야? 저거 우리 집 걸레 맞나? 행주 아닌가? 왜 저렇게 하얘? 왜 이렇게 뭐가 말끔한 거야!’
효령은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책상, 식탁, 옷장, 책장, 부엌 저편의 싱크대……. 심지어 휴지통까지!
방 안의 모든 가구란 가구, 휴지통과 기타의 모든 소품은 새것처럼 반짝거리다 못해 휘황찬란한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공기청정기를 돌린 것처럼 방 안의 공기가 상쾌한 이유는 단 하나, 집 안에 가득했던 먼지가 한 톨도 남김없이 사라진 덕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건 내 집이 아니잖아!’
효령은 비명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 깨끗해서 인테리어 잡지에나 나올 법한 집에 가면 오히려 불편해졌던 그녀였다. 과자 부스러기 하나라도 흘리면 안 될 것 같은 중압감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집이라는 건 원래 사람을 위하고, 사람을 편하게 쉴 수 있게끔 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요즘은 적반하장으로 집이 사람을 다스리는 것 같았다. 지나치게 깔끔해서 온종일 사람이 쓸고 닦게 하는 그런 집. ‘사람 있고 집 있지, 집 있고 사람 있냐’를 외치는 효령은 그런 불편함을 아주 싫어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더라도 지나치게 깔끔하고 깨끗한 집엔 두 번 다시 가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그녀의 경우는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커피를 마신 컵을 한 달 내내 바닥에서 뻥뻥 차고 다닐 정도라는 것이 문제이긴 했다.
“실연은 당했어도 사람은 살아야죠. 안 그래요? 아무리 슬프고 힘들어도 그렇지. 집 안 꼴이 이게 뭐예요? 짐승 우리도 아니고.”
“청소……하셨다……구요?”
타고난 그녀의 게으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규진은 놀란 기색에 만족하며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에 시작한 거, 욕실 청소도 했죠.”
효령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좌르륵 흘러내렸다.
‘욕실이라니? 거기가 어떤 곳인데? 거기도 곰팡이제거제만 대충 뿌려 놓고 신경 쓰지 않던 곳이라구. 그래도 나중에 시간 나면 청소하려 그랬단 말이야. 손님이면 손님답게 술이나 마시고 갈 것이지, 남의 집에 와서 왜 이래, 왜?’
놀람에서 경악으로, 그리고 창피함으로 숨 가쁘게 이동하던 효령의 감정은 서서히 분노감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내 집, 내 방은 어디 간 거야? 어느 누가 와서 어질러도 좋고 편하게 지내기 딱이던 내 집, 내 방은 어디 간 거냐고? 영화나 드라마에 나올 법한 저 가구들의 윤기와 광채는 무엇이며, 나와 함께 몇 개월간 동고동락하던 내 방 먼지들은 어딨냐고?
그 먼지가 어떤 먼진지 알아? 한 번 치우면 계속 치워야 하고, 계속 치우려면 귀찮고 힘들어서 모든 걸 포기하고 키운 먼지라고. 이렇게 깨끗하면 앞으로 어쩔 거야?
당신이 계속 와서 쓸고 닦고 치워 줄 거 아니면 손을 대지 말았어야지. 회사 갔다 와서 쉬지도 못하고 내가 줄창 닦고 치워야 해? 사람 있고 집 있는 거지, 집 있고 사람 있냐고!’
이상해 보이는 그녀의 기색에 규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고 있어요? 기 빠진 사람처럼.”
효령은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저, 저기요. 남의 집에 이렇게 손대시는 거…… 아니거든요. 그 사람 생활 패턴이 있고 그 사람 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렇게 하시면요…….”
규진은 효령의 그 말을 눈치 없이 툭 잘랐다.
“청소랑 빨래에 무슨 패턴이 있고 무슨 습관이 있어요? 빨래야 세제 풀고 애벌빨래 했다가 세탁기 돌리면 되고, 속옷은 따로 모아서 삶는 기능으로 빨면 되고. 청소도 그렇죠. 한 번 먼지떨이로 털고, 빗자루로 쓸고, 청소기 한 번 돌리고, 걸레로 닦고, 마지막으로 청 테이프 굴려서 남은 머리카락이랑 먼지 없애고. 간단하잖아요?”
속옷까지 빨았다는 말에 너무 기가 막힌 나머지 효령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애벌빨래라니. 그녀의 사전에 애벌빨래란 없었다. 때때로 급할 땐 속옷과 겉옷을 세탁기에 같이 넣어 돌리기까지 하는 그녀였다.
그로 인해 어머니 포천 김 여사의 모진 구박과 탄압과 응징이 이어졌지만 좋은 게 좋은 거요, 편한 게 좋은 거라고 믿는 효령은 자기만의 일관된 생각을 좀처럼 굽히지 않았다.
게으른 일관성은 청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냥반아. 내 기준에선 물수건이나 클리너 한 장씩 뽑아서 팔 길이를 반지름으로 한 바퀴 스윽 닦는 게 청소라고. 당신처럼 복잡한 과정 난 몰라. 그래. 다른 건 다 좋아. 좋다구. 우리 포천 김 여사도 그렇게 하니까 좋다 이거야.
그런데…… 뭐? 청 테이프? 청 테이프!
그건 절대로 용서가 안 돼. 내가 지금 호텔업에 종사하니, 요식업에 봉사하니? 이 냥반아.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지 알아?
그 먼지 한 톨을 못 참아서 청 테이프를 굴려? 그러면 허구한 날 쓸고 닦고 청 테이프를 굴려 대야 해? 남의 집에서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신 머릿속엔 뭐가 있는 거냐고, 이 냥반아!’
일하면서도 내내 학을 뗐던 남자의 철두철미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 효령은 치를 떨었다. 그리고 단정 지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완벽주의자가 아닌, 편집증에 결벽증까지 겹친 호랑당말코가 분명하다고.
‘유진아, 미안하다. 이 편집증에 결벽증 호랑당말코에 비하면, 약아 빠지고 가끔 못되게 굴었던 네가 훨씬 낫다. 널 감히 이 남자에 비교해서 미안하다. 똑같이 호랑당말코 과로 놔둬서 미안하다. 내가 죽을죄를 졌다. 그래도 기왕에 한 거, 네가 그냥 넘버 원 해라. 이 사람은 호랑당말코 넘버 제로 시키마.’
여전히 아무것도 짐작하지 못한 규진은 태연하게 말했다.
“속 안 쓰려요? 북엇국 좀 끓여 놨어요. 냉동실에 가쓰오부시랑 다시마랑 북어포 있기에 그걸로 만들었어요. 지난번에 보니까 고추는 안 먹는 것 같아서 그건 뺐고. 아, 손댄 김에 냉장고 정리도 좀 했어요.”
즉, 냉장고까지 홀딱 뒤집어놨다는 얘기였다.
규진은 칭찬 혹은 감사의 인사를 바라며 한 말이었지만, 한계치에 달했던 효령의 인내심은 그 순간 펑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이 호랑당말코야! 나가. 내 집에서 당장 나가. 나가란 말이야!”
웹 기획자 효령, 꿈에 그리던 프로젝트를 맡게 된 기쁨도 잠시, 클라이언트인 완벽주의자 규진 때문에 눈물로 지새는 밤 연속이다. 하지만 은근히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그. 과연 규진은 백마 탄 왕자님일까요? 효령은 구두를 잃어버린 신데렐라일까요?
2. 작가 소개
여해(呂海)
Wanna Be Storyteller
온라인 필명 네오메이커
밥벌이하느라 바쁜 호모 이코‘노믹’스
틈틈이 글쟁이의 기쁨을 만끽하는 호모 루덴스
충무공 이순신의 자 여해(汝諧)와 유사한 이름이 무척 자랑스러운 호모 코레아‘니우’스
백수가 체질이라 일하고 글 쓰는 틈틈이 놀 궁리만 하는 호모 날‘라리’안
역사와 사회에 관심 많은 호모 폴리티쿠스
가와사키 GTR 1400을 열렬히 짝사랑 중. 구입하는 대로 튜닝해서 사막에 끌고 갈 꿈에 부풀어 있다.
▣ 출간작
신데렐라 예행연습
비혼녀의 연애 USB
호모 메리지쿠스 - 결혼하는 인간
3. 차례
프롤로그
제1장 인생의 호랑당말코들
제2장 신데렐라 VS 캔디? 캔디는 패자, 신데렐라는 승자!
제3장 우연의 결과 VS 필연의 예고. 사랑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는 어디에?
제4장 Cose Della Vita - 인생의 여러 일들
4. 미리 보기
다음 날, 효령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들고 간신히 잠을 깼다.
취기 탓에 눈이 잘 떠지지가 않았지만 몸을 덮고 있는 이불의 감촉은 따스하고 포근했다. 누군가 잘 챙겨서 덮어 준 것이 분명했다. 까다로운 남자가 과일바구니를 들고 찾아와 함께 술을 마셨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갔나? 갔겠지? 배웅 안 해 줘도 알아서 자기 발로 갔겠지, 뭐.’
지난밤 규진과 나눴던 이야기들이 한두 마디씩 떠올랐다. 자세한 대화가 기억나진 않았다. 하지만 일할 때와는 달리 그가 편안하고 털털하게 그녀를 대해 주고 배려해 준 것만큼은 분명히 기억났다.
PM 이 대리는 여전히 두렵고 피곤한 존재임에 분명했지만, 인간 이규진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랑당말코는 아닌가 보네.’
긍정적인 평가였다.
천천히 실눈을 뜬 효령은 방 안 공기가 다른 것을 느끼며,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털고 좌우를 살폈다.
‘우리 집이 맞긴 한데 말이야……. 공기가 참 좋네. 오늘따라 오피스텔 창문 밖의 풍경이 유달리 선명하고. 관리인 아저씨가 오늘 오피스텔 창문 밖에서 닦는단 얘긴 안 했는데.’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뭔가 찌익찍 하는 기분 나쁜 소음이 들려왔다.
‘집에 쥐가 있나? 아닌데. 이상하네. 세탁기는 왜 지 혼자 돌아가? 내가 예약해 놨나? 아닌데. 이상하네.’
효령은 졸린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기분 나쁜 소음은 부엌 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소음의 근원지에 누군가 있는 것을 발견한 순간, 그녀는 갑자기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웅크리고 앉아 뭔가를 하고 있던 규진은 그녀를 돌아보며 활짝 웃었다.
“일어났어?”
효령의 입이 멍청하게 벌어졌다.
‘아니 대체 이 냥반이 왜 여기 있지? 왜 아직 안 간 거지? 안경은 또 왜 빼고 있어? 아니, 저, 저, 저, 저 와이셔츠 단추는 왜 저렇게 많이 풀려 있어? 저, 저, 저건 또 뭐야? 손가락이 베일 만큼 칼주름이 잡혀 있던 바지는 왜 저렇게 자글자글 구질구질, 주름이 여자 블라우스 셔링처럼 잡혀 있는 거야?’
눈에 훤히 드러나는 그녀의 표정 변화에 규진은 잠시 입술을 깨물고 웃었다. 그 모습에 효령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말았다.
‘서, 설마…… 내가 사고…… 친 거야? 정말?’
광풍처럼 몰아닥치는 한기에 부르르 몸을 떨며 효령은 옷차림을 살피고 몸 상태를 가늠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게 아니면 뭐지?’
효령은 잔뜩 놀란 눈으로 규진을 미심쩍게 바라봤다. 열심히 주파수를 맞춘 후 강력한 텔레파시를 보냈다. ‘너 왜 여기 있냐, 왜 안 갔냐, 우리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라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규진은 그녀가 보내는 텔레파시와 주파수를 휙휙 물리치고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잘 잤어? 주량 센 줄 알았는데 아니네. 겨우 맥주 두 캔에 쓰러지데?”
친근하게 들리는 규진의 반말을 듣자, 지난밤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니, 사실 대화가 아닌 그녀의 일방적인 선언이었다.
『그래애? 나보다 겨우 세 살 많아? 잘난 척하더니 고작 세 살이야? 그것밖에 안 살았어? 됐어, 됐어. 야, 야. 다 필요 없고 이제 말 트자. 클라이언트고 뭐고 다 필요 없어. 세 살? 우습지. 난 아래위로 10년 커버해. 싫으면 넌 그냥 존댓말 해. 난 야자 틀래. 야자 터!』
정신이 번쩍 들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늘같은 클라이언트를 향해 너, 너, 너 하며 손가락질 했던 것이 생각나자 우르릉 쾅쾅 천둥벼락소리까지 들렸다.
‘이놈의 술이 웬수다, 웬수! 인간 김효령, 오늘부로 술 끊는다.’
술에 취했다가 깨어난 사람이 언제나 그러하듯 효령은 속으로 금주를 선언하며 울부짖었다.
그사이 규진이 침대 위에 털썩 앉았다. 애인의 집에 놀러온 남자처럼 자연스럽고 태연한 그 태도에 효령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규진에게 닿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며 그녀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효령은 ‘요’에 특히 힘을 주며 강조했다. 규진은 아주 조금 서운했다.
‘말 트자고 할 땐 언제고. 어떻게 된 거예요, 라……. 내가 자기를 덮친 줄 아나? 물론 원하거나 허락만 한다면야 당장이라도 그럴 수 있지만.’
그녀의 복숭앗빛 뺨과 코를 야금야금 깨물며, 지난밤에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 짓도 안 했으니 안심하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불끈 일었다. 자기를 옆에 두고도 푹 쓰러져 버려서 마음이 조금 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자기를 믿는 증거라고 생각했다는 것까지도 말하고 싶었다.
규진은 슬쩍 효령을 쳐다봤다. 파들파들 떠는 폼과 말투가 지난밤 ‘야자 터!’의 만행을 후회하고, 잠든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자를 안고 키스하고 싶은 욕심에 몸이 욱신거리는 속에서도 자꾸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늘만큼은 그녀의 노력에 함께 동참하기로 했다. 물론 딱 오늘까지만.
규진은 욕구를 지그시 누른 후 손에 들고 있던 청 테이프를 들어 올리며 태연히 말했다.
“청소 좀 했어요. 빨래도 좀 하고.”
“예?”
효령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지난 6개월간 바쁘다는 핑계로 청소라고는 무선 청소기로 두어 번 민 것이 고작이요, 먼지가 쌓이고 쌓여 인테리어가 될 때까지 내버려 둔 낯익은 방풍경이 하루아침에 달라져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충 여기저기 떨어뜨려 놓은 빨랫감들이 하룻밤 사이에 물에 폭폭 적셔졌다가 건조대에 팽팽한 자태를 자랑하며 나란히 줄지어 놓여 있음은 물론이요, 심지어 자기가 대충 빨아 뭉개 놓은 걸레까지 곱게 접혀 있었다.
‘저 옷이 원래 저런 색깔이었던가? 저 티셔츠, 저 곰돌이 푸우 후드 티셔츠가 원래 저렇게 뽀얀 아이보리색이었나? 아니 저건 또 뭐야? 저거 우리 집 걸레 맞나? 행주 아닌가? 왜 저렇게 하얘? 왜 이렇게 뭐가 말끔한 거야!’
효령은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책상, 식탁, 옷장, 책장, 부엌 저편의 싱크대……. 심지어 휴지통까지!
방 안의 모든 가구란 가구, 휴지통과 기타의 모든 소품은 새것처럼 반짝거리다 못해 휘황찬란한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공기청정기를 돌린 것처럼 방 안의 공기가 상쾌한 이유는 단 하나, 집 안에 가득했던 먼지가 한 톨도 남김없이 사라진 덕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건 내 집이 아니잖아!’
효령은 비명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너무 깨끗해서 인테리어 잡지에나 나올 법한 집에 가면 오히려 불편해졌던 그녀였다. 과자 부스러기 하나라도 흘리면 안 될 것 같은 중압감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집이라는 건 원래 사람을 위하고, 사람을 편하게 쉴 수 있게끔 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요즘은 적반하장으로 집이 사람을 다스리는 것 같았다. 지나치게 깔끔해서 온종일 사람이 쓸고 닦게 하는 그런 집. ‘사람 있고 집 있지, 집 있고 사람 있냐’를 외치는 효령은 그런 불편함을 아주 싫어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더라도 지나치게 깔끔하고 깨끗한 집엔 두 번 다시 가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그녀의 경우는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커피를 마신 컵을 한 달 내내 바닥에서 뻥뻥 차고 다닐 정도라는 것이 문제이긴 했다.
“실연은 당했어도 사람은 살아야죠. 안 그래요? 아무리 슬프고 힘들어도 그렇지. 집 안 꼴이 이게 뭐예요? 짐승 우리도 아니고.”
“청소……하셨다……구요?”
타고난 그녀의 게으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규진은 놀란 기색에 만족하며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에 시작한 거, 욕실 청소도 했죠.”
효령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좌르륵 흘러내렸다.
‘욕실이라니? 거기가 어떤 곳인데? 거기도 곰팡이제거제만 대충 뿌려 놓고 신경 쓰지 않던 곳이라구. 그래도 나중에 시간 나면 청소하려 그랬단 말이야. 손님이면 손님답게 술이나 마시고 갈 것이지, 남의 집에 와서 왜 이래, 왜?’
놀람에서 경악으로, 그리고 창피함으로 숨 가쁘게 이동하던 효령의 감정은 서서히 분노감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내 집, 내 방은 어디 간 거야? 어느 누가 와서 어질러도 좋고 편하게 지내기 딱이던 내 집, 내 방은 어디 간 거냐고? 영화나 드라마에 나올 법한 저 가구들의 윤기와 광채는 무엇이며, 나와 함께 몇 개월간 동고동락하던 내 방 먼지들은 어딨냐고?
그 먼지가 어떤 먼진지 알아? 한 번 치우면 계속 치워야 하고, 계속 치우려면 귀찮고 힘들어서 모든 걸 포기하고 키운 먼지라고. 이렇게 깨끗하면 앞으로 어쩔 거야?
당신이 계속 와서 쓸고 닦고 치워 줄 거 아니면 손을 대지 말았어야지. 회사 갔다 와서 쉬지도 못하고 내가 줄창 닦고 치워야 해? 사람 있고 집 있는 거지, 집 있고 사람 있냐고!’
이상해 보이는 그녀의 기색에 규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러고 있어요? 기 빠진 사람처럼.”
효령은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저, 저기요. 남의 집에 이렇게 손대시는 거…… 아니거든요. 그 사람 생활 패턴이 있고 그 사람 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렇게 하시면요…….”
규진은 효령의 그 말을 눈치 없이 툭 잘랐다.
“청소랑 빨래에 무슨 패턴이 있고 무슨 습관이 있어요? 빨래야 세제 풀고 애벌빨래 했다가 세탁기 돌리면 되고, 속옷은 따로 모아서 삶는 기능으로 빨면 되고. 청소도 그렇죠. 한 번 먼지떨이로 털고, 빗자루로 쓸고, 청소기 한 번 돌리고, 걸레로 닦고, 마지막으로 청 테이프 굴려서 남은 머리카락이랑 먼지 없애고. 간단하잖아요?”
속옷까지 빨았다는 말에 너무 기가 막힌 나머지 효령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애벌빨래라니. 그녀의 사전에 애벌빨래란 없었다. 때때로 급할 땐 속옷과 겉옷을 세탁기에 같이 넣어 돌리기까지 하는 그녀였다.
그로 인해 어머니 포천 김 여사의 모진 구박과 탄압과 응징이 이어졌지만 좋은 게 좋은 거요, 편한 게 좋은 거라고 믿는 효령은 자기만의 일관된 생각을 좀처럼 굽히지 않았다.
게으른 일관성은 청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냥반아. 내 기준에선 물수건이나 클리너 한 장씩 뽑아서 팔 길이를 반지름으로 한 바퀴 스윽 닦는 게 청소라고. 당신처럼 복잡한 과정 난 몰라. 그래. 다른 건 다 좋아. 좋다구. 우리 포천 김 여사도 그렇게 하니까 좋다 이거야.
그런데…… 뭐? 청 테이프? 청 테이프!
그건 절대로 용서가 안 돼. 내가 지금 호텔업에 종사하니, 요식업에 봉사하니? 이 냥반아.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지 알아?
그 먼지 한 톨을 못 참아서 청 테이프를 굴려? 그러면 허구한 날 쓸고 닦고 청 테이프를 굴려 대야 해? 남의 집에서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신 머릿속엔 뭐가 있는 거냐고, 이 냥반아!’
일하면서도 내내 학을 뗐던 남자의 철두철미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 효령은 치를 떨었다. 그리고 단정 지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완벽주의자가 아닌, 편집증에 결벽증까지 겹친 호랑당말코가 분명하다고.
‘유진아, 미안하다. 이 편집증에 결벽증 호랑당말코에 비하면, 약아 빠지고 가끔 못되게 굴었던 네가 훨씬 낫다. 널 감히 이 남자에 비교해서 미안하다. 똑같이 호랑당말코 과로 놔둬서 미안하다. 내가 죽을죄를 졌다. 그래도 기왕에 한 거, 네가 그냥 넘버 원 해라. 이 사람은 호랑당말코 넘버 제로 시키마.’
여전히 아무것도 짐작하지 못한 규진은 태연하게 말했다.
“속 안 쓰려요? 북엇국 좀 끓여 놨어요. 냉동실에 가쓰오부시랑 다시마랑 북어포 있기에 그걸로 만들었어요. 지난번에 보니까 고추는 안 먹는 것 같아서 그건 뺐고. 아, 손댄 김에 냉장고 정리도 좀 했어요.”
즉, 냉장고까지 홀딱 뒤집어놨다는 얘기였다.
규진은 칭찬 혹은 감사의 인사를 바라며 한 말이었지만, 한계치에 달했던 효령의 인내심은 그 순간 펑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그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이 호랑당말코야! 나가. 내 집에서 당장 나가. 나가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