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손이 종이 위를 지나자 머릿속 이미지가 목탄을 따라 부드럽게 종이 위에 펼쳐졌다. 처음은 쉬웠는데 다리는 어쩌지? 앨비가 뛸 때 다리가 어떻게 움직였더라? 말의 모습을 떠올려보던 케니스 와일딩은 만족스러운 작은 탄성을 내지르고는 다시 스케치를 시작했다. 오른쪽 앞다리는 이렇게, 뒷다리는 이렇게…….
소년은 어린 여동생을 어르고 있는 어머니에게 완성된 그림을 가져갔다. 어머니가 웃음을 머금은 채 고개를 들고는 그림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아주 잘 그렸구나, 케니스. 이 말은 낯설지가 않은데? 아! 앨비로구나, 그렇지?」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쩜 이렇게 똑같니? 당장 그림 밖으로 박차고 나올 것 같은걸? 엄마가 그렸어도 이렇게 잘 그리지는 못했을 거야.」
그림 솜씨가 탁월한 어머니의 그 말은 과분한 칭찬이었지만 소년은 자부심에 가득 차서 스케치북이 놓인 곳으로 돌아갔다. 소년이 다시 앨비의 그림을 시작하려는 순간 탁아실 문이 열리며 복도에서 한 줄기 찬바람이 불어왔다. 목탄을 쥔 소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서터튼 홀의 참나무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서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그는 아들을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내 분명 그림 같은 것에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했었지, 케니스? 내년에 해로우에 입학할 수 있도록 라틴어 공부나 하라지 않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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