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생긴 남자의 전매특허인 똥폼에,
치사하고 옹졸하고 툭하면 삽질하는 잘난빵 같은 남자, 서태권.
그러나 한 편으론 잘나가는 사업가이며 연예인 뺨치는 완벽한 몸매에도 불구하고 정조를 지킬 줄 아는 남자였다.
그런 태권이 첫눈에 반해 불도저처럼 들이댄 여자가……, 쌍둥이 엄마라니!
옹졸한 태권은 참을 수가 없었다.
괴롭혀 줄 테다!
난 뒤끝 작렬, 트리플 B형이니까!

-본문 중에서-

트인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말했다.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이에요. 이거.”
“유리라서?”
“네. 밤에 타면 진짜 짜릿하겠어요.”
“밤에 또 오자고?”
대답할 틈도 없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트인은 ‘엄마야.’ 하고 몸을 부르르 떨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엘리베이터의 바닥까지 유리로 만들고 지하에 해저세계를 꾸며 놓아 올라올 땐 그나마 괜찮았는데 내려갈 땐 바다로 떨어지는 기분일 것 같았다.
“자이로 드롭 타는 기분일까요?”
“글쎄. 무서우면 내릴까?”
“어우, 아뇨! 이것도 밥값에 포함된 거라고 봐요.”
“누가 아줌마 아니랄까 봐.”
“헤헷.”
태권이 차가 주차되어 있는 지하3층 버튼을 눌렀다. 슈웅, 밑으로 하강하는 속도에 풍경이 빠르게 바뀌었다. 그때 느닷없이 엘리베이터가 덜컹했다. 트인과 태권은 휘청하다가 손잡이를 잡고 중심을 잡았다. 엘리베이터는 7층에서 불을 깜빡이며 멈춰 섰다.
“어머! 왜 이래요?”
“그대로 가만히 있어요.”
태권이 침착하게 비상벨을 누르려 손을 뻗었다. 순간, 윙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밑으로 훅 떨어졌다. 1, 2층 정도를 더 하강한 엘리베이터는 덜컹! 하더니 다시 멈췄다.
“꺄악!”
트인이 비명을 내질렀다.
“아줌마, 괜찮아요?”
“아저씨, 빨리! 빨리 비상벨 눌러요!”
트인이 태권의 양복 밑자락을 꽉 움켜쥐며 소리쳤다. 트인은 유리 밖으로 자꾸만 시선이 갔다. 마치 번지점프대에 서서 공중에 발을 반 내놓은 것처럼 심장이 제멋대로 뛰어 숨 쉬기도 힘들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 또 처하게 됐다는 사실이 믿을 수가 없었다. 쌍둥이의 웃는 얼굴이 태권과 겹쳐졌다. 자신까지 잘못될까 봐 트인은 불안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여보세요! 여기 엘리베이터가 멈췄어요!”
[네! 급히 사람을 불렀습니다. 무사히 내리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동요하지 마시고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엘리베이터가 왜 멈췄지요? 어떡해요!”
“걱정하지 마. 괜찮을 거야.”
태권이 트인을 다독이고는 공중에 대고 소리쳤다.
“얼마나 기다려야 합니까?”
[죄송합니다만 15분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안전장치가 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떡해…….”
트인이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태권은 가만히 트인을 품에 안았다.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고 하잖아. 노후 된 건물도 아니니까 진짜로 걱정 안 해도 돼.”
태권은 충격과 공포로 창백해진 트인을 살폈다. 그녀의 팔과 등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태권이 계속해서 말했다.
“트인 씨, 날 봐봐.”
“아아…….”
초점 없이 흔들리던 트인의 눈동자가 간신히 태권과 마주쳤다.
“나 집 짓는 사람이야. 알지?”
“아아, 네.”
“엘리베이터는 진짜 안전한 거야. 케이블이 다 끊어져도 사방에 브레이크가 달려 있어서 절대 잘못되지 않아. 이중 삼중으로 안전장치가 되어 있다고. 알았어?”
“아, 알았어요.”
“내가 좀 달라 보이지?”
“네?”
“이렇게 날 안고 있으니까 그동안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감정이 새록새록 느껴지지 않아?”
“무슨……? 어머!”
트인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태권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그랬는지 자신이 태권에게 꼭 매달려서 부둥켜안고 있었다. 놀란 트인이 냉큼 떨어지려하자 태권이 트인의 등 뒤로 팔을 뻗어 확 끌어당겼다.
“괜히 씩씩한 척 하지 말고 문이 열릴 때까지만 이렇게 있도록 해요.”
“아, 저기…….”
본의 아니게 태권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있어서 그가 불쾌한지 어쩐지 그의 표정은 볼 수가 없었다. 태권의 한 손은 트인의 허리를 단단히 거머쥐었고 또 다른 손은 트인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고 있었다. 불안함에 떨리던 것과는 또 다른 감정이 찾아와 트인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근데 이거, 그날…… 같다, 그치?”
그날?
트인의 눈이 동그래졌다. 왜 그날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깨끗이 잊어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그날은 전기가 끊겨 한기가 들어차 뼛속까지 아렸었다. 천만다행으로 쌍둥이는 일박이일 캠프에 가고 없었기 망정이지 아이들까지 있었다면 집을 버리고 찜질방으로라도 피신했을 것이다.
창고에서의 느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까. 트인은 켜켜이 쌓아 놓은 방어벽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다. 오롯이 혼자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버텨온 세월이 그에게 안겨 그의 온기를 느낀 순간, 내부의 무언가가 하릴없이 허물어짐을 느꼈었다. 아프도록 그립고 안쓰럽도록 아련한 자기애가 불꽃처럼 일어나 고개를 쳐들었다.
하지만 정말이지 말 그대로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밤이 지나 날이 밝자 트인의 정체는 탄로 났고 태권은 꿈을 꾸는 요정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현실은 현실인 것이다. 트인은 피식 웃으며 말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완전 도둑으로 몰려 나한테 몰매 맞은 날이요……?”
태권은 트인을 깊게 내려다봤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의 숨결이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트인은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태권은 당황해서 뻣뻣하게 몸을 사리는 트인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조금 더 고개를 숙였다.
그것이 실수였을까, 트인의 달콤한 체취에 태권은 후끈 달아올랐다. 그날. 그 밤. 태권의 기억에 트인은 땅의 사람이 아니었다. 순전히 오감으로만 원초적으로 몸이 인식하던 심장의 고동소리, 그녀에게서 나는 새초롬한 향기, 말캉했던 피부 감촉이 태권을 신세계로 인도했었다.
태권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맛을 못 봤어.
마치 무슨 결정이라도 내린 사람처럼 태권의 얼굴이 굳건해졌다. 태권이 이내 고개를 기울이자 트인이 영문도 모른 채 팔로 태권을 밀어내며 상체를 뒤로 젖혔다.
태권은 트인의 허리를 자신에게 바싹 밀착시키며 한 손으로 트인의 작은 머리를 움켜잡아 더 이상 물러서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아, 아저씨……?”
사실 이런 기분이 드는 것도, 또 그 기분이 내키는 대로 앞뒤 생각 없이 충실히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태권에겐 완벽히 생소한 일이었다. 신체적 결벽증에 가까운 태권은 함부로 이성을 만지고 안지 않았다. 지나치게 심혈을 기울여 상대가 영원한 내 반려자가 될 것인가를 심사숙고하다가 오히려 연인을 떠나보내곤 했었다.
“하지만 너는 아니야. 생각할 겨를이 없어.”
“네?”
더 이상 마음속 외침을 외면할 수 없다. 그랬다가는 조만간 심장마비로 죽을 것만 같았다. 이제 고민은 끝이다. 더는 브레이크를 잡고 있을 수 없다. 너는…… 내 사람이니까.
태권이 고개를 깊이 내려 움찔 눈을 감아 버린 트인의 입술에 막 안착하려는 찰나, 문 앞에서 쩌렁쩌렁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 앞에 왔습니다. 문을 열겠어요!”
빌어먹을! 드라마냐? 하필이면 지금!

콜라처럼 톡 쏘고 솜사탕보다 달콤한 사차원 마당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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