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사장이 준이 팬사이트에는 무슨 용무인 걸까? 설마 준이 팬? 설마. 아니, 그래, 그건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도대체 애초에 왜 준이를 모른다고 잡아뗐을까?

오프라인에서는 한식당 사장, 온라인에서는 ‘슈팅스타즈’ 멤버 민준의 팬사이트 ‘누나팬닷컴’의 운영자로 활동 중인 조아라. 팬심으로 가득 찬 그녀는 우연인 척 민준의 형인 민현을 지배인으로 영입한다. 그녀의 완벽한 이중생활에 금이 갈 줄은 그땐 미처 몰랐더랬지…….

[안녕하세요. 누나팬닷컴의 운영자 pasunimo입니다. 누나팬닷컴은 슈팅스타즈의 리더 민준의 누나 팬들을 위한 홈페이지입니다. 이 나이에 이래도 되는 걸까 고민하시는 분들, 누나팬닷컴의 문을 두드리세요. 사랑에는 국경이 없고, 누나팬닷컴에는 연령 상한선이 없습니다.]

잠깐! pasunimo, 이 국적 불명의 단어는 분명히 사장의 아이디잖아. 그렇다면 뭐야. 사장이 여기 운영자라고? 맙소사.

2. 작가 소개

김성연

2004년 ‘가족이 되어줘’로 데뷔했다.

그 후 ‘구원’, ‘소년의 꿈’, ‘누나팬닷컴’, ‘나의 공주님’, ‘사랑은 땀방울을 타고’, ‘백조의 비상’, ‘맛있는 계승’, ‘허리 만져주는 여자’를 출간하였고, 드라마 소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를 집필하였다.

현재 정크파라다이스(http://junk.byus.net)와 단미그린비(www.kromans.com)에서 Lian이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이다.

liank5000@gmail.com

3. 차례

#긴급뉴스를 알려드립니다

#염불보다는 젯밥

#한 발 장전

#오발탄

#누나팬닷컴? pasunimo?

#누나팬닷컴 상륙작전

#고지를 향해 전진

#난리 블루스

#내슈빌 기습작전

#방심은 금물

#떴다, 민준

4. 미리 보기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차 속에서 방금 전 본 사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음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서른 살, 세상의 거친 풍파와 맞서 싸울 이유를 주지 않는 부유한 부모를 둔 여자가 그만한 규모의 주방을 휘어잡는 건, 특출한 요리솜씨만 가지고는 어림없는 일이다.

사람이란 삶의 굴곡을 겪는 동안 행동거지며 말 씀씀이가 거칠어지기 마련이다. 고와의 요리사들도 예외는 아니라 일상 대화 중에 욕설이 섞여 나오는 것은 다반사고, 화가 나면 주저 없이 맹수 같은 면을 드러내고는 한다.

자신과는 확연하게 다른 사람들과 위화감 없이 어울리며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사람들을 이끄는 사장은 리더 중의 리더였다.

그런데 오늘 꽃다발을 받아들고 남자친구에게 난생처음 선물을 받는 사춘기 소녀처럼 굴던 사장의 모습과 누나팬닷컴이 지금까지의 판단을 헷갈리게 한다.

집으로 돌아온 현은 옷도 갈아입기 전에 컴퓨터를 켰다. 도저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사장은 준이 팬사이트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인터넷에서 누나팬닷컴을 검색해 클릭하자 파란색 화면에 준이 얼굴이 떴다. 준의 사진을 눌러보았지만 무위로 끝났다. 다시 그 옆에 붉은 글씨로 쓰인 ‘애들은 가라’를 클릭해보았다. 과연, 화면이 바뀐다.

그런데 왜 팬사이트에서 애들은 가라는 거지?

의아한 표정으로 현은 화면에 떠 있는 인사말을 읽었다.

[안녕하세요. 누나팬닷컴의 운영자 pasunimo입니다.]

잠깐! pasunimo, 이 국적 불명의 단어는 분명히 사장의 아이디잖아. 그렇다면 뭐야. 사장이 여기 운영자라고?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맙소사, 운영자라니. 팬사이트에 가입한 회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기겁했는데 운영자라고 하니 이젠 숫제 멍하다. 침을 꿀꺽 삼키며 다시금 화면에 집중했다.

[누나팬닷컴은 슈팅스타즈의 리더 민준의 누나 팬들을 위한 홈페이지입니다. 이 나이에 이래도 되는 걸까 고민하시는 분들, 팬클럽에서 활동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다는 말에 상처받고 가입 의지를 상실한 분들, 팬사이트에 가입해도 되나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한 분들, 이제 시련은 끝났습니다.

누나팬닷컴의 문을 두드리세요.

오빠라고 부르기엔 차마 양심에 찔려 스스로 누나임을 밝힌 누나 팬들이 여러분을 동지로 모십니다. 사랑에는 국경이 없고, 누나팬닷컴에는 연령 상한선이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애들은 가라.)

자세한 사항은 공지를 참조하세요.]

누나 팬이라는 것도 있구나. 나이 어린 팬만 있는 줄 알았지, 나이 많은 팬이 있고 또 모임까지 따로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제일 먼저 눈에 띈 영상 게시판에 들어가봤지만 글 목록만 보일 뿐 클릭이 되지 않는다. 이건 회원으로 가입해야 볼 수 있는 모양이다. 자유게시판이 두 개나 있는데 하나는 회원 전용이고, 하나는 우수회원 전용이다.

회원 전용은 앞의 영상 게시판이 그랬듯 클릭은 되지 않아도 글의 목록은 볼 수 있는데 우수회원 전용 게시판은 아예 들어가지지도 않는다.

여기저기 클릭해보았으나 가입하지 않고서는 볼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별로 궁금할 것도 없는 프로필을 클릭했다. 프로필 역시 두 가지로 윗줄에는 ‘누구나 알고 있는 공식 프로필’이, 그 바로 아래 줄에는 ‘우리끼리 공유하는 무검증 프로필’이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공식 프로필을 누르자 생년월일과 혈액형 등 준이에 관한 일반적인 사항이 주르륵 떴다. 대충 훑어본 다음 뒤로 가기를 클릭해 이번에는 우리끼리 공유하는 무검증 프로필을 클릭했다.

[아버지, 대기업 임원

어머니, 전업 주부(나이를 초월한 미모의 소유자, 준이 미모는 모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임)

형 x현, 식당 지배인(MVPS의 최연소 점장, 서울대 출신 엘리트, 모계 쪽의 우수한 유전자를 많이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짐. 특히 웃는 얼굴은 준이와 판박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이기적)]

얼굴이 이기적이라니, 이게 말이 되나? 그리고 가리려면 이름을 가려야지, 성은 왜 가려? 바보 아니야? 거기다 남의 출신 학교는 왜 밝힌 거람.

어이없는 단어 몇 개로 자신에 대해 간추려놓은 문장을 읽는 현의 낯빛이 좋지 않다. 그렇지만 예전에 인터뷰한 기사에도 나온 사항이니, 사생활 침해 운운하며 시비를 걸 일은 아니다.

[잠실xx아파트 거주. 데뷔 전 베이스를 사기 위해 형에게 돈을 꿔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당함. 그 뒤로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뭐야, 이건 내가 해준 말이잖아. 그때 사장이 그렇게 눈을 반짝이며 경청한 건 준이 얘기였기 때문인가?

배신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가만, 그때 준이 얘기를 어쩌다 하게 된 거지?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특별히 단서가 될 만한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로 장만한 베이스를 들고 한때 언더그라운드 베이시스트로 활동. 특출한 외모 때문에 스카우터들의 표적이 됨. 아이돌 가수가 싫어 줄곧 거절하다가 한번 해보기로 결정. 일본 공연 리허설에서 기타리스트를 애잔하게 바라보던 것으로 보아 미련이 남아 있는 듯.

보는 사람의 심장을 헤아려주지 않는 이기적인 미모의 소유자.]

여기서는 이기적이라는 말을 이런 식으로도 쓰는 모양이다.

그 밖에도 노래방에 간 횟수며, 우정보다는 사랑이 우선인 로맨티시스트라는 둥, 식당에서 밥을 먹는 모습에 대한 세세한 묘사, 첫사랑에 얽힌 일화까지 총망라되어 있다. 어떻게 형인 자신도 모르는 사실까지 다 알고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