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어느 날 나타난 모든 것을 아는 남자. 내가 일어나는 시간, 내가 산책가는 시간부터 시작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까지 모두 다.

‘이것과는 다른 과거’로부터 온 사람.

눈앞의 행복에 취해 침묵으로 진실을 묻어둔 나의 어리석음으로 사랑하는 당신을 잃었다. 우연히 닿은 마지막 기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을 기다리고 진실을 알리는 것. 내 정체를 알게 된 당신이 설령 나를 거부한다 해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에제키엘이라고 합니다.”

나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왔다는 당신. 손끝에 닿을 듯 가까워지는 당신의 정체. 잡힐 것 같지만, 끝내 잡지 않은 건, 내가 이렇게나 따뜻한 당신의 손을 놓아야 할지도 모르니까.

마침내 알게 된 절망적인 진실. 잡은 손을 놓고 뒤돌아섰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이…….

“왜 나한테 왔어요?”

“……수명에 제한이 없는 종족이고,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되며, 잠을 잘 필요도 없는 종족입니다. 마법 사용도 가능하고…… 인간계에 해당 종족을 모시는 신전이 존재합니다.”

가만히 듣던 제일린이 물었다.

“에제키엘이 그 종족이고요?”

“예. 숙제입니다.”

에제키엘은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기한은 없습니다.”

2. 작가 소개

성단

행복한 글쟁이.

3. 차례

#1

#2

#3

#4

#5

#6

4. 미리 보기

“일단 온 김에 여기 먼저 보자. 청소는 숙소 먼저 하더라도, 응?”

잔느가 생각에 빠진 제일린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제일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다?”

잔느가 도서관 문을 슬쩍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새까맣게 그림자 진 도서관 안쪽으로는 네모난 윤곽 몇 개밖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꼭 악마라도 나올 것 같네.”

중얼거린 그녀는 문을 좀 더 많이 열어보았다. 해 질 녘의 빛이 건물 안까지 깊게 들어갔다.

도서관은 생각보다 꽤 큰 3층짜리 건물이었는데, 1층에는 책장만 빼곡한 걸 보니 앉을 수 있는 곳은 2층이나 3층에나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이 꼴을 하고서도 앉을 수 있다면.

“……책장이 있는데 굳이 책을 옆에 쌓아둔 이유가 뭘까?”

그녀의 머릿속만큼이나 복잡해 보이는 안쪽을 들여다보던 제일린이 중얼거렸다. 잔느는 고개를 흔들었다.

“설마 2층하고 3층도 죄다 이 모양은 아니겠지?”

그녀는 책이 잔뜩 쌓여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아예 막아버린 것을 보면서, 도서관의 문에서 슬며시 손을 뗐다.

“난 숙소 먼저 돌아보고 올래.”

그러면서 제일린을 흘끗 돌아보았다. 너는? 묻는 것 같은 눈빛에 제일린은 안쪽을 가리켰다.

“난 안쪽 좀 보다 갈게.”

어차피 두 사람이 청소해야 하는 곳이었다. 대체 어떻게 여길 해 지기 전까지 다 치우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둘러보긴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래그래.”

잔느는 도망치듯 도서관에서 쌩 멀어졌다.

제일린은 멀리 본관에 가려 반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 숙소 건물을 보면서 볼을 긁적였다. 숙소 상태도 그다지 깨끗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잔느는 점점 멀어져갔고, 제일린은 도서관 안으로 슬쩍 몸을 들였다. 책밖에 없는 적막한 공간에 그녀의 걸음 소리가 울렸다. 다행히 건물 자체는 튼튼한지 삐걱삐걱하는 소리는 없어서 사람 없고 불 꺼진 음울한 도서관이라도 무서운 기분까진 들지 않았다.

“일단 불부터 켜야겠다.”

제일린은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도서관을 둘러보았다. 어디쯤에 마법등 켜는 줄이 하나쯤 내려와 있을 텐데.

아니면 요즘 도시에서는 벽 어딘가를 누르면 불이 들어오게 하는 마법도 개발되었다고 들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린 끝에 그녀는 간신히 2층 쪽 계단에 길게 내려온 줄 하나를 발견했다.

“……이 책들을 다 뚫고 가야 하는 거야?”

제일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잔느가 어쩐지 이쪽 보고 도망가더라니.

그녀와 줄 사이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널브러진 책들이 산더미였다. 아무리 책이 많기로서니 이렇게 책을 다 섞은 트럼프 카드마냥 흐트러뜨려놓아도 되는 건지 의문이었다.

그래도 어쩌겠어. 어차피 청소하게 될 건데. 결국 그녀는 몸을 굽혔다. 어느 정도 옆으로 책을 치워서 길이라도 낼 심산이었다.

“어?”

그때, 그녀가 들어올리려는 책이 갑자기 저절로 두둥실 떠올랐다. 놀란 그녀가 뒤로 몸을 뺐다.

떠오른 책은 서서히 허공을 움직여 누군가의 손에 탁 잡혔다. 몸을 완전히 일으킨 제일린의 눈에 한 남자가 보였다. 허리까지 내려온 검은 머리카락이 굉장히 인상적인 남자였다.

책을 잡고 있는 손은 험한 일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고운 손이었다. 책장에 책을 꽂는 걸 보니 여길 정리하던 사람 같은데, 소매는 손목까지 꽉 잠겨 있는 것이 뭔가 엄격할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가 손을 뻗어 줄을 잡아당기자 도서관 안의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마법등의 하얀 빛에 비치는 그의 머리카락은 언뜻언뜻 어두운 보라색으로 보이기도 했다.

“아……, 안녕하세요.”

사람이 있었구나. 괜히 민망해진 제일린이 볼을 매만졌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에제키엘이라고 합니다.”

남자가 웃었다.

“에즈라고 불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