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 여름, 콜로라도 에코 분지



'저 여자 겁에 질려 있군. 하지만 나근나근하게 걷는 게 죽여 주는데…….'

휩(채찍)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라파엘 모런은 겁먹은 모습으로 걸어오는 여자를 보고 중얼거렸다. 겁에 질린 모습 때문인지 걸음걸이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휩은 잠시도 여자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겁먹은 모습 때문이기를 바랐지만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걸로 보아 그녀의 걸음걸이 때문인 것 같았다.

여자는 너덜너덜한 남성용 울 외투에 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옷 속에는 분명 매혹적인 여성의 몸이 감추어져 있을 것이다. 야무진 표정으로 허리를 쭉 펴고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지만 벌벌 떨고 있는 게 분명했다.

휩은 자신이 왜 이 여자에게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없었지만 여자가 겁에 질린 이유를 알아 내야겠다고 생각하며 할러 크리크에 하나밖에 없는 이곳 잡화상 앞의 싸늘한 진흙을 밟고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고지대의 서늘한 바람이 두꺼운 울 외투를 뚫고 살갗에 와 닿았다. 여자도 한기를 느꼈는지 몸을 움츠리고는 이것저것 널려 있는 잡화상 안으로 종종걸음치며 들어갔다.

휩은 민첩하게 여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바람에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지만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나근나근하게 걷는 낯선 여자에게 온통 정신이 팔려 그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 잡화상의 창문은 깨지지 않도록 널빤지를 덧대서 박아 놓았는데, 그 틈으로 비친 빛줄기 사이에 여자는 멈춰 섰다. 그러고는 아무렇게나 진열되어 있는 건조식품, 공구, 옷들을 한동안 샅샅이 살펴보더니 가냘픈 손가락으로 물건 하나를 집었다. 순간 어떤 강렬한 시선을 느꼈는지 느닷없이 휙 돌아섰다. 청명한 가을 하늘빛 같은 그녀의 눈동자는 푸르고 맑아서 영원히 퇴색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모자 밑으로 흘러내린 머리 매듭이 마치 금빛 이슬을 머금은 붉은 밤톨 같았다.

'어디선가 본 여자야.'

불현듯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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