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 방앗간 집 큰딸 오누리, 골목 앞에 세워 둔 차 안에서 남자와 입을 맞추다!

일류 실력에 출중한 외모를 지닌 CF 감독 이윤하. 그를 원하는 여자들은 끊이지 않았기에 본의아니게 바람둥이로 소문난 윤하는 어느 순간 자신의 마음에 들어와버린 그 여자, 누리에게 조금씩 다가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녀의 가드, 만만치 않다. 남녀상열지사에 소문 좀 날 수 있지, 뭐 그리 민감할까?
방송작가 지망생 오누리. 미모로 소문난 동생 송이의 결혼식장에서 우연히 만난 그 남자, 이윤하가 자꾸 신경에 거슬린다. 잘생기면 다야? 매너 좋으면 다야? 난 댁과 데이트할 생각 전혀 없! 어! 요! 서로 좋아 죽고 못 살아서 엉켜 있다가 들킨 것도 아니고, 바람처럼 한 번 스친 것 때문에 망신살이 하늘까지 닿게 생겼잖아!

“이러다 습관 되겠어요.”
누리의 붉어진 뺨에 자신을 볼을 문지르며 속삭이듯 윤하가 말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목덜미에서 나는 향기에 윤하는 서서히 취해 가고 있었다. 미약처럼, 향이 좋은 술처럼 아무리 곁에 두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외려 안달만 났다.
“뭐가요?”
되묻는 누리의 목소리도 그를 따라 덩달아 낮아졌다.
“당신한테 키스하는 거, 지금처럼 가까이에서 이렇게 당신 향기 맡고 당신 숨결 느끼는 거. 아무래도 당신한테 중독됐나 봐. 눈앞에 없으면 보고 싶고, 보면 입 맞추고 안고 싶어져.”

2. 작가 소개

한승희

▣ 출간작 : 청혼의 순서, 사랑을 누리다, 절대적인 몇 가지

3. 차례

1. 꽁초, 버려 줄게요
2. 왜 아직까지 임자가 없을꼬?
3. 사연 많은 오누리, 가십의 주인공이 되다
4. 내겐 다소 부담스러운 남자
5. 누리 씨가 마음에 들어요
6. 비밀스럽지만 달달한 연애의 맛
7. 사람을 마음속에 담는다는 건
8. 폭탄은 항상 예기치 않은 곳에 떨어진다
9. 스캔들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다
10. 이별을 고하고
11. 그냥 보고만 있기에도 아까운 사람
12. 우리 윤하를 어떻게 생각해요?
13. 이제 밝혀진 키스 사건의 전모
14. 도움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4. 미리 보기

지친 걸음으로 타박타박 한참을 걸은 후에야 버스 정류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재킷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확인해보니 9시가 다 되어 간다. 둘러보니 제법 늦은 시각인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정류장의 의자에 앉아 있던 학생이 버스에 오르자 날름 빈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평소 같으면 낯모르는 사람의 체온이 미지근하게 남아 있는 대로변의 먼지투성이 의자 따위, 질색을 했을 테지만 몸이 무겁고 다리가 천 근이라 어쩔 수 없다.
차가 오는 쪽을 바라보며 이제나저제나 하고 있는데 어딘지 낯익은 차가 정류장에 서더니 차창이 내려갔다. 역시 운전석에 앉아 있는 건 조금 전 쌩하니 혼자 가버렸던 남자였다.
근데 어라, 그가 보란 듯이 흔들고 있는 건…… 저건 내 가방이잖아! 그제야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살폈다. 이런 바보! 아까 어른들한테 인사한다고 차에서 내릴 때 가방을 두고 내린 것이다. 어쩐지 걸어오는 동안에도 계속 뭔가 서운하더라니.
의자에서 일어나 차 옆으로 간 나는 열린 차창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가방을 깜박했네요. 다시 와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그 말이 가방을 달라는 말의 에두른 표현이라는 걸 모르는 모양인지, 그는 오히려 들고 있던 가방을 자신의 다리 위로 털썩 내려놓았다.
이 사람아, 보다시피 나는 키만 그런 게 아니라 팔 길이도 딱 평균이야. 조수석 창을 통해 운전석에 닿을 정도가 안 된다니까.
하지만 그는 가방을 건네줄 생각은 하지 않고 여전히 나를 보며 싱글거리고만 있었다.
왼쪽에서 차의 전조등 불빛이 쏟아져 돌아보니 버스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 앞에는 주․정차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아직 모르면서 차는 어떻게 가지고 다니는지 모르겠네.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분명 나왔을 텐데.
“지금 버스 오거든요. 가방 빨리 주세요.”
그의 차를 발견한 버스가 저만치서부터 자리를 비켜 달라며 요란하게 경적을 울려 댔다. 호기심 어린 눈초리를 던지는 주위의 사람들의 시선까지 더해지자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을 정도로 정말 마음이 급해졌다. 조금 전까지 이 남자에게 분하고 쪽팔려 했다는 게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저 소리 안 들려요? 가방 빨리 달라구요.”
“타요.”
어지간히 느긋한 이 남자, 달랑 한마디 던질 뿐이었다. 어느새 그의 차 뒤로 바짝 다가와 있는 버스에 타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 둘 앞으로 나오며 눈총을 던지기 시작했다.
“아가씨, 남자친구가 기다리잖아. 빨리 타요. 그래야 우리도 버스를 타지.”
차 안의 그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목청도 크게 말하는 아줌마를 붙들고 이 사람은 내 남자친구가 아니라 제부의 친구라고 해명할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버스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며 계속해서 커다란 소리로 경적을 울려 대고 지나던 사람들까지 흘끔흘끔 쳐다보기 시작하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별수 없이 거의 몸을 던지다시피 해서 차에 올랐다.
“얼른 탔으면 됐을 걸, 왜 시간 끌어서 사람들을 기다리게 만들어요.”
문을 닫는 것과 동시에 서둘러 차를 출발시키며 그가 말했다.
“누가 할 소릴. 그쪽이야말로 얼른 가방만 줬으면 될 것 갖고 왜 이렇게 난처하게 해요? 사람 곤란하게 만드는 게 취미예요?”
“편하게 가자는 게 왜 난처합니까. 가는 방향이나 잘 알려줘요.”
“우선은 계속 직진하세요. 교차로 나오면 알려 드릴 테니.”
안전벨트를 맨 뒤 나는 차창 밖으로 얼굴을 돌렸다. 될 수 있으면 그의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겠다는 심산이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심심하죠. 우리 음악 들으면서 갈까요?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시디 골라 봐요.”
그가 건네주는 시디 케이스를 엉겁결에 받아 들고 살피기 시작했다. 몇 장 되지는 않았지만 클래식과 팝, 재즈까지 장르는 다양했다. 뭘 고를까 망설이다가 낯익은 드뷔시를 발견하자 냉큼 플레이어에 넣었다. 피아노 연주가 차 안 가득 퍼지자 늘 그러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떠 보니 어느새 차 안을 채우던 연주는 끝나고 차는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 아래 큰길까지 와 있었다.
“피곤했어요? 아니면 클래식 들을 때는 늘 이렇게 자는 거예요?”
차를 세운 채 나를 보고 있던 그가 웃으며 물었다.
“드뷔시 들을 때만 자요.”
딱 두 번 본 것이 전부인 사람에게 자는 모습까지 보였다고 생각하자 무안해져 부러 과장되게 고개를 꺾으며 말했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어요? 우리 집 모르잖아요.”
“아까 제기동이라고 했잖아요. 여기부터서는 정말 모르겠어서 차 세우고 깨기 기다린 거예요.”
기다리지 말고 차라리 깨웠으면 체면이 덜 상했을 텐데. 남자에게 그런 배려까지 바라는 건 좀 무리인가.
“교차로 지나서 왼쪽 길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돼요.”
내 말에 그는 차를 움직였고 잠시 후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서 차를 세웠다.
“여기.”
그러고 보니 여태껏 가방이 그의 무릎 위에 그대로 올려져 있었다. 저거 돌려받겠다고 버스 정류장에서 그 쇼를 해 놓고 정작 차에 올라탄 후에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이거 참, 면목이 없네.
“아까 주었으면 더 고마웠을 텐데, 아무튼 덕분에 편하게 왔어요. 조심해서 가세요.”
가방을 받아 들고 안전벨트를 끄르며 작별 인사를 했다. 그때 그가 갑자기 손을 뻗더니 나를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이유를 물을 사이도 없이 양손으로 내 볼을 그러잡고 입술을 가져왔다.
헉!
아무런 기교도 없이 그저 한순간 입술과 입술이 맞닿은 정도였다. 찰나에 이루어진 단순한 두 입술의 부딪침에 불과했지만 순간적으로 내 얼을 빼 놓기에는 충분했다.
“나도 작별 인사. 잘 가요.”
나를 놓아주며 그가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으으, 순간 몸의 솜털이란 솜털은 죄다 일어난 것 같아 재빨리 그의 팔을 뿌리치고 정신없이 차에서 내렸다.
“우리 데이트하기로 한 거 잊지 말아요.”
차창을 내리고 한마디 던진 후 그는 차를 돌려 골목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나는 멀거니 서서 차가 사라진 골목 끝을 보고 있었다. 바보스럽게도 입술 끝에서 아까 그가 마셨을 커피 향이 느껴진다.
저놈은 확실한 바람둥이구나. 그런데 내가 언제 데이트한다고 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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