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내년 안에 아이 좀 낳아줘. 화염마법사기만 하면 상관없어.”

“제가 왜요? 전 사랑하는 사람과 상호 동의하에 낳을 거예요.”

“사랑해. 난 너 사랑하니까 너만 나 사랑하면 돼. 알겠어?”

화염마법사 김하나의 인생에 어느 날 갑자기 쳐들어온 서진태. 처음 보는 여자에게 아이를 낳아달라는 참신한 미친놈이라니!

사랑 같은 거 없어도 애는 얼마든지 낳을 수 있다고?

그럼 그런 게 가능한 여자 화염마법사를 찾으시든가!

“어떻게 하면 사랑에 빠지는데?”

“사랑이요?”

“나한테 완전 빠지면 애 낳아줄 거지?”

“그, 그야…… 하지만 저만 일방적으로 하면 안 돼요!”

“아, 나는 널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으니까.”

“거짓말.”

“왜 안 믿어? 그리고 내가 좋다는데 왜 의심을 해? 어? 내가 이렇게 구애하는 거 보면 몰라?”

2. 작가 소개

신서록

집 주변에 사슴과 멧돼지가 삽니다.

기계를 사랑하고 여름에 강합니다.

수중 생물 다큐멘터리를 좋아합니다.

주로 새벽에 글을 써서 서록입니다.

글로 독자분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3. 차례

2부

#12. 안녕, 안녕, 안녕

#13. 기억해줘

3부

#14. 그가 사랑하는 법

4. 미리 보기

하나에게는 사람을 나누는 원이 있다. 원 밖의 사람들은 그녀에게 어떤 감흥을 주지 못한다. 미움도, 원망도, 호감도 잠깐이다. 짧은 인생 속에서 누구는 원 안으로 들어왔고, 누구는 그 경계에 발을 걸쳤으며, 그녀가 만난 대다수가 원 밖에서 헤어졌다.

예솔은 하나가 첫 번째로 원 안으로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하나는 아직도 그녀와 찍은 사진을 지갑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다녔다. 모서리가 해질 정도로 꺼내 보며 그 얼굴을 잊지 않기 위해 애썼다.

누군가 원 안으로 들어온 순간, 하나는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모양을 깎는다. 그의 시간에 맞추고 점점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서 같이 있는 걸 당연히 여기고 종래에 그에게 빠져 모든 걸 꺼내주게 된다. 예솔이 하나의 심장을 원했다면 그녀는 기꺼이 그것을 내주었을 것이다.

예솔이 죽고 나래, 지훈, 희원이 원의 경계에서 발을 밟고 하나와 함께했다. 그러나 그들을 안으로 들여놓는 것이 하나는 두려웠다. 갖지 않으면 잃지도 않을 테니까. 그래서 거리를 두고 대했다. 지훈은 섭섭해하는 눈치였지만 하나는 더 이상 그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잠결인데도 그 감각이 명확하게 다가왔다. 하나는 머리에 느껴지는 손길에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누가 이렇게 쓰다듬었던 기억이 났다.

“어, 어.”

불현듯 이곳이 어디였는지, 제가 어디서 잠이 들었는지 깨닫자 고개가 절로 휙 올라갔다. 머리에 있던 진태의 손이 침대로 미끄러졌다.

“서, 서진태 씨! 정신이 드세요?”

하나는 진태와 눈을 마주치고 나서야 그가 깨어났다는 걸 자각했다. 그녀는 의자가 뒤로 밀릴 정도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진태는 입을 벌려 목소리를 내기 위해 계속 입을 벙긋거렸지만 공기 새는 소리만 흘러나왔다. 입 모양이 물을 뜻하는 걸 알고 조그만 냉장고에 들어 있는 물병을 꺼냈다. 바로 물을 넘겨줄 수가 없어서 주위에 있는 솜을 적셔서 입에 넣어주었다.

“……김하나. 너, 크흠.”

목구멍으로 물이 스며들자 따가운지 인상을 한가득 찌푸렸다. 하나는 그 곁에서 연신 괜찮은지 어디가 불편한지 물었다. 진태가 물로 입을 적시고 나서야 간신히 소리를 냈다.

“네.”

“너 왜 여기 있어?”

“어. 그게.”

하나는 순간 당황해서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왜 여기 있냐고?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건가? 아니, 내가 보기 싫은가? 어머니가 왔다 갔다고 말하고 나가야 하나?

“나, 나갈까요?”

하나가 소심하게 그의 침대보 끝을 잡고 속삭이듯 말했다.

“넌 천국 갈 줄 알았는데……. 나쁜 짓 많이 했어?”

진태는 아직도 정신이 안 돌아왔는지 멍한 얼굴이다.

“흐…….”

예고 없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하나는 얼굴을 몇 번 훔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소매가 흥건하게 젖자 그가 살았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녀가 얼굴을 잔뜩 일그러진 채 허어엉, 하고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자 진태가 손가락을 까딱하며 가까이 오라고 했다.

하나는 그 품에 안겨서 본격적으로 울었다. 남자가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어설프게 하나를 안아줬다. 그게, 남자가 살아서 손을 움직인다는 게 너무 행복해서 하나도 남자의 등에 손을 둘러 안았다.

어쩌다 이 남자가 원 안으로 들어왔을까. 살아온 세계도, 가치관도, 어느 것 하나 맞지 않는데 왜 이 남자를 사랑하고 만 걸까. 그녀는 제 자신에게 수십 번을 물었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사랑한다는 감정만이 유일한 탈출구처럼 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