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관계가 변한 게 없어. 오빠였을 때나 내 남자가 됐을 때나.”

“사랑이 변하냐? 아껴 주고 보살펴 주고 소중하게 대해 주고, 본질은 변하지 않아.”

“놔줘.”

“설아…….”

“이제 그만 놔줘.”

오누이처럼 지내왔던 유건과 은설은

성인이 된 후 이성적인 감정이 싹 뜨며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의사인 유건이 병원일로 바빠지면서

기다림에 지쳐가던 은설은 결국 이별을 말한다.

그리고 얼마 후 은설은 우연히 보게 된 속보에서

군의관으로 파병나간 유건의 사고소식을 듣게 되고

무작정 두바이로 향하는 비행기를 몸을 싣는다.

은설은 유건을 만날 수 있을까? 위독한 유건은 깨어 날 수 있을까?

[본문 내용 중에서]

유건은 제대로 걸을 수 없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내면서 유 중령을 부축했다. 순간, 묵직하게 느껴지는 유중령의 몸무게가 그의 어깨에 내려지자 휘청하고 흔들리며 옆구리 쪽에서 또 한 번 따뜻한 것이 울컥, 하고 쏟아져 내렸다.

“하아, 읍!”

그가 비명같이 터지는 신음을 애써 삼킨 다음 이를 악물고 앞을 향해 걸었다.

피쉬쉿!

바로 그때, 하늘에서 무언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했지만 유건은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다.

“안 돼! 송 대위!”

부축을 받던 유 중령이 유건과 김 기자를 옆으로 밀어 버린 다음 수류탄을 향해 재빨리 몸을 날렸다

콰쾅! 펑!

순간, 유건은 눈앞에 보이는 처참한 광경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바로 앞에서 터지는 수류탄을 향해 유 중령이 몸을 날리는 순간, 검붉은 불기둥과 함께 형체를 알 수 없는 파편들이 어지럽게 날리며 흩어졌다.

“아윽!”

유건은 바닥에 널브러져 고통스러운 신음을 삼키면서도 꽉 막힌 목구멍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아팠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눈이 뜨겁게 타오르는 것처럼 아파지면서 진득한 피눈물이 툭 하고 땅바닥에 떨어져 짙게 물들었다.

“시발! 아아악!”

그가 그대로 드러누운 채 목구멍이 찢어지는 것 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흡사 목구멍에서 불덩어리가 올라오는 것처럼 뜨겁고 아팠지만 지금 그따위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소, 송유건 대위. 괜, 괜찮습니까?”

“아아악! 그냥…… 하아, 날…… 하아, 죽여! 제발!”

그가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기 시작했다. 정작 죽고 싶은 사람은 그 자신이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만큼 무겁고 어려운 숙제는 사양하고 싶었다.

“송 대위……. 하아. 정신 차려요! 송유건 대위!”

김 기자는 두려웠다. 지금 이 중령도 그렇지만 엄청난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송 대위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공포는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처절했다. 이곳에서 송 대위는 마치 한 마리 야수처럼 울부짖으며 죽여 달라고 말하는 모습을 통해 극한의 두려움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 것 같았다.

“송유건 대위!”

“그냥, 하아…… 죽여…….”

유건은 이대로 미치는 것보다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리고 한 번도 울어 본 적 없던 그가 고통스러운 비명 같은 슬픔을 처음으로 내뱉었다. 긴 그리움과 처연한 슬픔 끝에 오는 공허함 속에서도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다. 그냥 하루가 일 년 같은 시간 속에 자신을 숨기고 쓸쓸한 웃음으로 감췄던 내밀한 감정들이 이제야 물밀 듯이 터졌다. 아마도 그것은 어두운 밤과 같은 죽음 앞에 놓인 작금의 현실 때문인 것 같았다.

“그냥 이대로 잠들었으면.”

[프로필]

이희경

필명: 반짝반짝

- 출간작

<그곳 사막엔 비가 내렸다> <그는 그녀를 꿈꾼다> <그녀에게 사로잡히다> <파랑공주>

<모조, MOJO> <11074km> <비밀 연애> <닥터 지킬 앤 하이드> <더 하우스(THE HOUSE)>

<목적 투자에 대한 상세 보고서> <케냐 탑 아이보리><우아한 짐승과의 결혼>

[목차]

I. N. T. R. O

1.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2. 헤어진 다음, 시간이 흐르는 동안

3. 그렇게 첫사랑은 끝났다.

T. E. X. T

1. 다시 사랑하지 않겠다는 소원을 빌어 본다

2. 한 사람에게 바치는 진혼곡

3. 다시 돌아가야 하는 그 자리에 서서

4. 당신의 푸르른 청춘에게 안녕을 고한다

5. 어느 하루의 눈물

6.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7. 흐르는 시간을 빌려 잠시 멈춘 지금

8. 운명은 찰나가 만들어 내는 영원한 순간이다

9. 잠 못 드는 밤에 흐르는 달의 침묵

10. 아주 오래된 그들의 이야기

11. 묻어 두었던 첫사랑을 다시 꺼내며

12. 절망과 상관없는 하루가 무심하게 지나가면

13. 시월, 첫눈이 날리는 날에

14. 그녀가 살아 있는 시간은 그와 함께하는 순간이다.

15.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16. 그대 내게 오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