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우리 삶이 그렇죠 뭐. 어떻게 매일매일이 이벤트일 수 있겠어요.

건실, 착실, 성실한 간호사 오나라. 인생을 즐겁게 살리라 다짐했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외로움은 건강의 적!

결국 나라는 룸메이트를 구하기로 하고 평소 즐겨 읽던 웹툰 ‘서른 살 사춘기’의 작가 영인과 함께 집을 사용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동갑내기 여자가 아닌 일곱 살 연하 꽃미남 청년이 들어오다니!

엉겁결에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 언제나 방글방글 웃는 영인이 밉기도 하고 마음에 들기도 하는데…….

고영인과 함께 살기 시작한 지 108일째, 천재지변이 일어나버렸다!

2. 작가 소개

신민영

사소한 인생을 근사하게 살고 싶다.

촌스러운 낭만을 기억하면서.

블로그 : http://blog.naver.com/ajwannabe

▣ 출간작

불가분의 연애

불꽃(eBook)

유혹의 기술(eBook)

뜻밖에, 우리는(eBook)

고양이가 사는 나라(eBook)

3. 차례

#01. Home sweet home!

#02. 조금 모자란 사람들의 꽉 찬 꿈

#03. 피라미드는 이집트에나 있는 거 아니오?

#04. 인생을 관통하는 단짠의 법칙

#05. 독거와 독신의 상관관계

#06. 같이 삽시다.

#07. Can't take my eyes off you.

#08. 남녀칠세부동석? 남녀 나이 차이 칠세는 동석이오만?

#09. 친절과 거절 사이

#10. 잘생긴 빈대의 습격

#11. 솔직한 남자와 솔직할 수 없는 여자

#12.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는 속사정

#13. 참 슬픈 이름, 짝사랑

#14. 전초전

#15. 우리 같이 사는 사이입니다만.

#16. 손만 잡고 자요.

#17. 오늘 밤은 어둠이 무서워요.

#18. 취하는 밤

#19. 살아보자. 우리 같이.

4. 미리 보기

그러니까 문제는 오늘 오후 3시 35분, 오전에 수술을 마친 환자를 문진하고 나온 닥터 탁현우와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에 발생했다. 오래도록 마음에 품어왔던 짝사랑 상대이니 안색만 보아도 기분이 어떤지 눈치 챌 수 있었는데 오늘 현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탁 선생님, 어디 안 좋으세요?”

“그냥 좀 피곤해서요.”

남자의 피로한 눈을 보자 본능적으로 오늘 아침 영인이 주었던 비타민이 떠올랐다.

나라는 주머니를 뒤져 손에 잡히는 대로 비타민을 모두 꺼내 현우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받으세요.”

“이게 뭡니까?”

“피곤할 땐 이만한 게 없어요. 받으세요.”

나라는 현우의 손바닥 위에 비타민을 쥐여주곤 뿌듯한 얼굴로 빙긋 웃었다.

‘먹고 힘내요. 나의 왕자님. 내가 당신의 비타민이 되고 싶다는 뜻이에요.’

방싯거리며 수줍게 웃는 나라를 보던 현우가 이내 시선을 돌려 제 손바닥에 놓인 것을 보았다.

고맙다는 인사가 돌아와야 맞는데 손바닥 위에 놓인 것을 보는 남자의 표정이 심상찮다. 약간 당황 한 것 같기도 했고, 조금 놀란 눈치이기도 했다.

“왜요, 선생님?”

“아…… 이건 지금 저한테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네? 왜요? 이거 싫어하세요? 레몬 향인데…….”

“아, 레몬 향…….”

“딸기 향도 있어요. 선생님 좋은 거로 고르세요. 전 개인적으로 딸기가 좋더라구요.”

나라의 말에 현우는 순식간에 목부터 귀까지 한순간 붉어지더니 헛기침을 한다.

“아, 그럼 그냥 오나라 선생님이 다 가지세요. 전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아요.”

현우는 나라에게 비타민을 돌려주더니 황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나라는 친절을 냉정하게 거절하고 멀어지는 현우의 뒷모습을 보며 시무룩해졌다. 근래 많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비타민 하나도 받아주지 않는 철저한 내외라니……. 마음이 아팠다.

‘고작 비타민 하나도 받아줄 수 없다는 거야? 너무하네, 정말.’

나라는 심드렁하게 한숨을 쉬며 비타민 껍질을 깠다.

그리고 막 그것을 입에 넣었을 때, 자신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뭔가 이질적인 식감이 치아에 느껴졌다. 딸기 향이 나는 것은 분명한데 혀에서 느껴지는 촉감은 결코 비타민이 아니었다.

무심결에 물었던 것을 꺼내본 나라는 “끼약!” 소리를 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알루미늄 포장지에 싸여 있던 딸기 향의 그것, 그것은 분명 콘돔이었다. 그러니까 오나라는 한순간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콘돔을 주면서 피곤할 때 이만한 것이 없다고 추천한 것으로도 모자라, 자기는 레몬 향과 딸기 향 중 딸기 향을 선호한다는 성적취향을 선포한 변태 사이코가 된 것이다.

“고영인! 너 이 새끼 진짜! 너 때문에 내 인생 완전히 망했어!”

◇ ◆ ◇

- 어머나…… 그런 엄청난 일이 있으셨군요. 어떤 말로 위로를 드려야 할지…….

DJ의 목소리에 연민이 가득 담겼다.

나라는 이미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으므로 넋이 나간 채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 그런데 그 룸메이트 분이 의도적으로 하신 행동은 아닐 것 같은데요. 좀 깜찍한 실수 같기도 하고.

깜찍이라니. 남 일이라고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 아닙니다. 나라는 깜찍과 끔찍을 헷갈리신 거 아니냐고 버럭 소리치려다 참았다. 고영인을 제외한 남에게는 함부로 화를 내지 않는 착한(?) 오나라였으니까.

“그게 더 문제예요. 의도하지 않은 행동에 매번 제가 테러를 당하고 있으니까.”

- 저런! 제 생각엔 두 분이 정말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피해를 보신다니……. 같이 사는 일이 스트레스겠어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 그럼 익명 청취자님의 고민은 이제 그 룸메이트 분을 어떻게 내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건가요?

DJ가 마침내 고민해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네…….”

- 두 분 다 성인이시니까 감정적으로 말고, 이성적으로 서로 깊게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게 어떨까요?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때로는 함께 있는 것이 상처가 되기도 하는 관계가 있기도 한 법이라고 진지하게 한번 말해보세요.

DJ의 고민 해결방안을 가만히 듣고 있던 나라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가슴에 뭐가 얹힌 것처럼 답답하고, 속이 터질 것처럼 뜨겁다.

“그런데요……. 제 진짜 고민은 그게 아니고요.”

- 네? 그럼 어떤……?

나라는 오래도록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였다.

이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죄송하지만 지금 시간이 거의 다 됐어요. 익명 청취자님, 일단 오늘 저녁 룸메이트 분에게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시고 대화로 해결해보도록 하세요. 그럼 노래 듣고 가겠습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

황급하게 마무리 짓는 DJ의 말에 “네, 네.” 하는 대답으로 수긍하는 척을 했지만 나라의 고민은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다.

멘트를 이어 흘러나오는 노래의 전주가 나지막이 깔린다.

‘선곡 하고는. 남은 지금 고민돼 죽겠는데 별일 없이 산다니.’

경쾌한 노랫말을 들으며 한숨을 푹 쉰 나라는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아…… 그러니까 내 진짜 고민은요…….”

나라는 얼굴을 끌어 올려 모은 무릎과 무릎 사이에 묻으며 들릴 듯 말 듯 속삭였다.

“내 진짜 고민은…… 이제 그 원수 같은 놈 없이 혼자 사는 게…… 자신이 없다는 거예요.”

날 좀 내버려두라고 짜증을 낼 때, 내 인생에서 제발 빠져달라고 소리 칠 때, 이 집에서 빨리 나가라고 신경질을 부리고, 심술궂게 굴 때마다 마음 한편에 정말로 고영인이 이 집을 떠나버리면 어쩌나 싶어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나라의 진짜 고민이었다.

고영인과 함께 살기 시작한 지 108일째, 천재지변보다 무서운 마음 지변이 일어났다.

그야말로 큰 별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