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보고서를 쓰고 있던 히스 매스터즈는 잔뜩 긴장했다. 그는 어깨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끼며 가파른 제방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빽빽한 덤불 숲을 뒤지고 있는 부하직원들을 보고 그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
시체가 또 나온 건 아니군. 다행이야.
협곡 바닥에서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물소리 때문에 말을 주고받던 부하직원들과 구급대원들이 목소리를 높인 게 분명했다.
계곡 비탈의 사분의 삼쯤 되는 곳에는 파란색 포드 픽업(상품 집배용 덮개 없는 소형트럭)이 뒤집힌 채 커다란 소나무 밑에 널부러져 있었다. 차체가 알루미늄 은박지처럼 심하게 구겨지고 뒤축은 이쑤시개처럼 동강난 모습이었다.
골짜기에서 한줄기 거센 바람이 불어와, 카키색 제복 상의가 몸에 착 달라붙게 하고 두꺼운 리바이스 진 속으로 스며들었다. 고무와 휘발유 타는 냄새가 바람에 실려왔다. 그는 그 냄새를 애써 무시하며 장화 신은 발을 넓게 벌려 버티고 서서 상쾌한 바람을 들이마셨다.
5월 초순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따뜻한 날씨가 일주일 가까이 계속되었고, 오늘 오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곳 도로에는 그늘을 드리울 나무도 찾아보기 힘든데다 살을 태울 듯이 뜨거운 오리건 주 북부의 태양 탓에 이내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갈색 카우보이 모자의 챙 밑으로 파고든 거친 바람에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이 눈을 찔렀지만 그는 그저 눈을 깜박일 뿐, 바람이 뜨거워진 얼굴을 쓰다듬도록 내버려두었다.
마쳐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걸 일깨우기라도 하려는 듯 바람은 클립보드(종이 집게가 달린 필기판)에 끼워진 종잇장들을 퍼덕거리게 했다. 눈부신 햇빛에 종이가 하얗게 반사되어 써놓은 글씨를 읽으려니 미간이 찌푸려졌다. 눈이 따끔거리며 눈물이 났다. 피곤했다. 그는 뼛속까지 피곤에 절어 있었다. 자신이 너무 과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주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열 두 시간에서 열 네 시간씩 교대 근무를 해왔으니.
예산이 삭감되면서부터 일이 그렇게 되었다. 그는 보안관 대리 수를 줄여야만 했고, 이제는 자신이 직접 그 공백을 메우느라 녹초가 되어가고 있었다. 힘든 일을 싫어해서가 아니었다. 그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끝없이 따라다니는 좌절감이었다. 그는 동시에 여러 곳에 있을 수 없었고, 그가 없을 때면 영락없이 이런 사건들이 터졌다. 1년 전이라면, 날씨가 풀릴 이 때쯤엔 두 명의 대원이 이 지역 순찰을 돌았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겨우 한 명만을 배정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결과 최소한 두 명의 아이들이 벼랑 아래로 떨어졌고, 히스가 할 수 있는 건 부하직원들과 병원 구급대원들이 더 이상의 조난자를 발견하지 않기만 바랄 뿐이었다.
다시 보고서를 써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자, 그는 잠깐 눈을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클립보드에 펜을 끼워 넣고 아래쪽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비탈을 피곤한 표정으로 훑어보며, 그런 곳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일 만한 것을 찾아 덤불과 무성한 풀 사이를 살폈다.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십 년 동안 보안관 생활을 하면서 희망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배웠다. 고등학생들은 주로 무리를 지어 강에 내려가 맥주를 마셨다. 그의 판단이 틀리지 않다면, 트럭 앞좌석에 최소한 세 명, 뒤에도 몇 명 정도 더 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트럭 뒤에 탄 젊은이들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멀리 내동댕이쳐졌을 것이다. 이젠 그들을 찾는 일만 남아 있었다.
히스의 관심은 픽업으로 되돌아갔다. 트럭을 유심히 바라보자, 급정거할 때 타이어가 질러댔을 날카로운 소리와 트럭이 제방 아래로 나가떨어지며 냈을 둔탁한 금속성의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들을 마음속에서 몰아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발 밑 절벽에 버티고 우뚝 서 있는 소나무만큼이나 그들은 뿌리가 깊은 것 같았다. 마음속에 자리한 여러 기억들. 그 기억들은 자동차사고 현장을 볼 때마다 늘 되살아났지만, 페인트가 벗겨져나간 저 구형 포드 트럭을 볼 때만큼 참혹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이글거리는 아스팔트가 품어내는 지지거리는 소리는 타이어에서 압축공기가 서서히 빠질 때 나는 소리를 연상시켰다. 갓길에 주차된 순찰 차량들의 경광등에서는 붉은빛과 푸른빛이 주마등처럼 번쩍이며 돌아갔다. 두 불빛은 햇빛 때문에 희미해진데다 회전으로 인해 색깔이 섞여 미묘한 자줏빛이 되었고, 그 빛이 닿는 물체는 모두 기묘한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그것은 마치 장밋빛 안경을 끼고 열파(熱波)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았다.
무전기에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에 히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극성스런 신문기자들이 몰려들기 전에 사건보고서 작성을 마치려면 서둘러야만 했다.
그는 왼손바닥으로 클립보드를 떠받치고, 두 희생자의 지갑에서 찾아낸 운전면허증에 적힌 이름과 나이, 그리고 인상 착의를 기입했다. 사진 속의 두 젊은이는 죽기는 고사하고 아직 면도할 나이도 안 돼 보였다. 마지막 기재사항을 적어 넣을 때는 손이 파르르 떨려서 펜 끝이 줄 밖으로 미끄러졌다.
감정에 휘말리면 안 돼.
보안관은 냉정하게 자신의 직무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감정을 떨쳐버리기란 그리 쉽지 않은 법이다.

미디어 리뷰가 없습니다.

별점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