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덴버

“이건 말도 안 돼요!”
손등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핸드백을 힘주어 움켜잡고, 여자는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은 교장 선생을 노려보았다.
“얘는 그 쥐새낀지 햄스턴지 하는 물건을 만지지 않았다잖아욧! 우리 애는 거짓말 같은 건 할 줄도 모르는 애라구욧!”
J. 클라렌스 코스그로브 선생은 엘링턴 중학교 교장으로 근무한 지 벌써 6년째였고 그 전에도 26년이나 평교사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다짜고짜 성질을 내며 따지고 드는 학부모들을 다루는 데에는 어느 정도 이골이 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삐쩍 마르고 키만 덜렁하니 큰 이 여자와 그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사내아이는 교장 선생을 매우 고역스럽게 만들었다. 코스그로브 선생은 속된 표현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이들 모자는 정말로 엿같은 인간들이었다. 말품만 허비하는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교장 선생은 일단 대화로 풀어보려고 시도해보았다.
“하지만 목격자가 있…….”
“위트컴 선생은 범인으로 얘를 지목한 사람이잖아요. 글쎄, 우리 코린은 절대로, 절대로, 맹세코 그 햄스턴가 뭔가 하는 걸 건드린 적이 없대요! 그렇지, 아가?”
“전 그런 적 없어요, 어머니.”
아이의 목소리는 섬뜩할 정도로 가늘고 연약했다. 하지만 아이의 차가운 눈동자는 눈꺼풀도 깜빡이지 않으면서 코스그로브 선생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자신의 말이 교장 선생에게 먹히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탐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보세요! 내가 뭐랬어요?”
아이의 엄마는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그러나 코스그로브 선생도 포기하지 않았다.
“위트컴 선생님은…….”
“그 여자는 개학 첫날부터 우리 애를 미워했어요. 교장 선생님이 조사해봐야 할 사람은 우리 애가 아니라 바로 그 여자라구요!”
독기가 오른 여자는 입술까지 악물며 덤벼들었다.
“2주 전에 그 여선생한테 내가 따진 적이 있어요. 글쎄 우리 애한테 더러운 것들을 가르쳤지 뭐예요? 선생이라는 여자가, 해괴망측하게 이 어린아이들한테, 글쎄…….”
여자는 매우 민망하다는 듯한 얼굴로 자기 아들을 슬쩍 곁눈질했다.
“세­엑­스에 대해서 말했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그 여자가 글쎄 그런 여자라니까요! 난 우리 애가 학교에서 그런 말을 듣는 걸 참을 수 없다고 했어요.”
“위트컴 선생님은 교사로서 뛰어난 경력을 가진 분입니다. 그 선생님께서 그럴 만한 이유 없이…….”
“글쎄 다른 말씀 마세요! 그 선생이 그런 짓을 했다니까요! 왜 교장 선생님은 그 여자가 한 짓을 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겁니까? 이제 보니, 그 여자가 자기 손으로 그 쥐새끼를 죽여놓고 우리 애한테 덮어씌우는 거 아닙니까?”
“그 햄스터는 위트컴 선생이 애지중지하는 애완동물이었습니다. 아이들의 학습 참고용으로…….”
“그게 그 선생이 그 쥐새끼를 죽이지 않았다는 증거가 됩니까?”
여자는 역겨워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랬든 저랬든, 그 햄스턴지 뭔지 하는 게 그저 몸뚱이만 좀 큰 쥐새끼지, 뭐 대단한 거라고 이 난리를 피운답니까? 백 보를 양보해서 우리 코린이 그 쥐새끼를 죽였다고 한들, 안 죽인 게 사실이지만, 그게 뭐 그리 큰 난리거립니까? 이건 그 선생이 우리 애를 괴롭히려고 꾸며낸 가증스런 연극이라구요! 난 도저히 그냥 못 넘어가요. 교장 선생님께서 그 여선생을 따끔하게 혼내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코스그로브 선생은 피곤한 기색으로 안경을 벗어 렌즈를 닦았다. 이 성질머리 더러운 여자가 다른 선생들의 본보기가 될 만한 좋은 여선생의 경력을 완전히 망가뜨리기 전에 무슨 수를 써야 할 것 같았다. 말로 설득한다는 것은 이제 물 건너 간 일이었다. 지금까지 여자는 교장 선생이 말 한 마디를 제대로 끝낼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교장 선생은 코린을 슬쩍 곁눈질했다. 아이는 아직도 교장 선생을 염탐하느라 바빴다. 천사 같은 얼굴에 독사 같은 눈이라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아이였다.
“잠시 단둘이 이야기 좀 할까요?”
교장 선생이 여자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는 뜻밖의 요구에 놀란 얼굴이 되었다.
“왜……요? 우리 코린이 보는 앞에서 약속해주시는 게…….”
“잠깐이면 됩니다.”
이번에는 교장 선생이 여자의 말허리를 잘랐다. 표정으로 보건대 여자는 교장 선생의 제안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괜찮겠죠?”
이제 점잖게 말할 수 있는 인내심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지만, 코스그로브 선생은 다시 한 번 점잖은 목소리로 못을 박았다.
“정 그러시다면……. 코린, 밖에 나가서 서 있어라. 문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해. 엄마가 널 볼 수 있는 곳에 말이다.”
여자는 여전히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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