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연아, 너 제현이와 어릴 적에 혼인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아닙니다! 도대체 왜 그 바보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까!”

대군의 딸이면서도 저잣거리에서 소문난 말괄량이인 연이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미남자가 그 어릴 적 자신의 부하였던 제현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정혼자라며 졸졸 따라다니던 그 호구 제현이 이렇게 잘 컸다고?

그렇게 제현과의 연애를 꿈꾸던 연이에게 그는 오히려 자신이 어릴 적 제현을 죽을 만큼 괴롭혔다며 차갑게 대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희롱하듯 수작질은 계속 걸어오는데…….

“지, 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것입니까?”

“무엇을 말이냐?”

“처음에 손을 잡고, 저의 다리를 쓸지를 않나! 무릎도 만지시고, 방금 손도 쓸었지요?”

“무슨 말이냐? 도대체 이렇듯 사람을 잡다니. 어이가 없구나.”

“당장 수작질을 삼가지 않으면 호된 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키도 저보다 크고, 덩치도 크고, 힘도 세다고 해서 저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만약 삼가지 않겠다면 어찌할 것이냐?”

2. 작가 소개

임지영(디카페)

재능은 끈질긴 인내다. 라는 말을 삶의 신조로 삼고 있는 이야기꾼입니다. 읽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3. 차례

#프롤로그

#1. 다시 만나다

#2. 복수의 입맞춤

#3. 청혼자. 그때도 지금도

#4. 또 다른 살인사건

#5. 밤이 아니라 새벽

#6. 단오절의 밤

#7. 연우는 그러지 않았다

#8. 깨어난 남자

#9. 종사관의 정인

#10. 혼인

#에필로그

4. 미리 보기

제현이 무표정한 얼굴로 산사화채를 받아들었다. 연이의 얼굴이 느닷없이 붉어졌다.

분명히 손가락이 손등을 쓸었다. 제현이 화채를 다 마시고 그릇을 내려놓았다. 주위를 스윽 둘러보던 연이가 아무도 없자 종사관의 팔을 잡았다. 미소를 띠고 자신을 보는 제현을 연이가 잡아끌어서 여관의 후원으로 갔다.

난폭하게 잡은 옷을 확 내동댕이치듯 놓으며 연이가 화가 나서 붉어진 얼굴로 화채를 담던 국자를 들고 치를 떨었다.

“지, 지금 무슨 짓을 하시는 것입니까?”

“무엇을 말이냐?”

연이가 제현에게 바싹 다가가 턱에 얼굴을 붙일 듯 대고 치켜든 눈썹을 부르르 떨면서 미친 듯이 화를 낸다.

“처음에 손을 잡고, 저의 다리를 쓸지를 않나! 무릎도 만지시고, 방금 손도 쓸었지요?”

제현이 가만히 연이를 내려다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무슨 말이냐? 도대체 이렇듯 사람을 잡다니. 어이가 없구나.”

연이가 가증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 하고 큰소리로 콧방귀를 뀐다.

“당장 수작질을 삼가지 않으면 호된 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제 키도 저보다 크고, 덩치도 크고, 힘도 세다고 해서 저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너보다 키고 크고, 덩치도 크고, 힘도 센데 너는 나를 어떻게 이기려고 하느냐?”

제현이 나직하게 웃었다. 갑자기 바싹 다가오자 연이가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막말을 하려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끌고 왔으니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만약 삼가지 않겠다면 어찌할 것이냐?”

“이! 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그, 그렇게 가까이 오지 말고.”

제현이 연이에게 바싹 얼굴을 다가가자, 연이가 놀라서 국자를 불쑥 내밀었다.

“그 국자가 너를 지켜줄 것 같으냐?”

“허! 정말 우, 우스운 양반일세! 국, 국자로 뭘 한다고요?”

연이가 말을 하다 보니 갑자기 화가 났다. 제까짓 게 그렇게 어릴 적에 나에게 충성을 하더니 이제는 나를 이 큰 덩치로 겁박해? 저 같은 것은 백 명이 떼로 와도 겁이 안 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어차피 조신한 아가씨가 아닌 것은 종사관이 더 잘 알고 있는데, 이제 와서 그의 앞에서 얌전을 떤다고 해도 먹히지 않을 것은 당연지사다.

자신은 누구와도 혼례를 할 생각이 없다. 여인의 신세라는 것이 특히 양반가의 여인일 경우, 외출도 마음대로 못 하고 일도 할 수 없으며 학문을 뽐낼 수도, 제자를 들일 수도 없다. 제일 화가 나는 일은 돈도 벌 수 없다는 것이다. 돈을 벌어서 자신도 마음대로 쓰고 싶었다. 야시장에서 투전도 하고, 과자도 마음대로 사먹고 그러고 싶었다. 오라비나 동생처럼. 그들에게는 허용된 자유가 자신에게는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데 혼례를 해서 뻔뻔하게 남들을 속이는 것도 싫고, 그런 상태에서 아이들을 낳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하지만 사랑은 하고 싶었다. 정인을 갖게 된다면 이런 답답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현이 나타난 것이다.

제현은 잘생기고 키도 크고 이제 멋있기까지 하다. 그리고 어릴 적에 자신에게 매달린 과거가 있으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녀석이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희롱하고 창피를 주고 무안하게 만들면서 유치하게 복수하고 있는 종사관을 어떻게든 자신에게 빠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그리고 이 수작질에 복수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강박이 연이가 엉뚱한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연이가 국자를 휙 하고 옆으로 내던졌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내려다보고 있는 강 종사관의 붉은 입술이 바로 눈앞에 보였다.

연이가 제현의 얼굴을 확 잡아서 끌어내렸다. 놀란 제현의 눈이 보였다. 이제야 의기양양해진다. 그리고 제현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췄다. 쪽 하고 소리를 내며 맞춘 행동에 제현이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다음 순간 연이가 제현의 목에 두 팔을 감고 다시 입술에 입을 맞췄다. 하지만 그 이상은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 그저 입술에 입을 맞대고 제현의 목을 끌어안고 있었다. 따뜻한 입술을 느끼자 미친 듯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경직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분명한 제현을 느끼면서 그제야 몰려드는 수치심을 느꼈다.

정말로 나는 구제불능의 망나니다. 이런 짓이야 말로 자신이 어릴 적에 했던 무례와 야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머리도 나쁘다. 이렇게 입맞춤을 한다고 제현이 자신에게 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다니 아직 여름도 아닌데 더위를 먹은 것이 틀림없다. 종사관이 좀 놀렸기로 겨우 그걸 못 참고 복수를 한다고. 그것도 입맞춤으로 복수하다니.

연이가 자신에게 솟구쳐 오르는 혐오를 누르고 입술을 떼려고 할 때였다. 제현의 입술이 움직였다. 제현이 연이의 허리를 붙잡는다. 가는 연이의 허리를 두 팔로 꽈악 끌어안았다. 그리고 살짝 연이의 아랫입술을 물고 벌어진 입술 사이로 제현의 혀가 미끄러져 들어간다.

이번에는 연이의 두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너무나 놀라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쭈삣 털이 곤두섰다. 제현이 움직이지 못하게 연이의 허리를 끌어안고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입술을 점령하고 있었다. 벌어진 입술로 들어온 혀가 자신의 혀를 두드리고 끌어당기고 감싸 안았다. 혀가 움직일 때마다 등줄기가 오싹오싹했다.

깊숙이 혀가 들어오자 연이의 뱃속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작은 나방이라도 뱃속에 들어온 듯 무엇인가가 움찔거리며 뜨겁게 소용돌이친다. 연이의 손가락이 손톱을 세웠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연이의 입술, 입안 구석구석을 탐험한 제현이 그제야 충격으로 아무것도 못 하고 그대로 얼어붙어 있는 연이를 내려놓았다. 그때였다. 후원 문밖에서 언년이가 철주와 무엇이라고 말하면서 들어오는 소리가 난다.

제현이 손을 놓고 뒤로 몸을 빼자 연이가 갑자기 제현의 팔목을 잡았다. 왜냐면? ……현행범이니까! 자신에게 수작질한 것이 이것만큼 더 이상 확실한 것이 없다. 자신이 먼저 입맞춤을 한 것은 까맣게 잊고 연이가 제현이 자신에게 입맞춤한 것만 기억했다.

뭐라고 할지 생각도 하지 않고 연이가 언년이가 들어오자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언년이와 철주가 연이를 보더니 놀라서 입을 벌리고 그 자리에 섰다. 연이가 의기양양한 그리고 화가 난 얼굴로 제현에게 몸을 돌리자 팔목을 잡힌 제현이 몸을 뒤로 뺀 상태에서 연이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했다.

“연이야, 아녀자가 너무 방정맞지 못한 행동을 보이는 것도 좀 그렇구나,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알겠으니 이제 놓아라. 부끄럽지 않아도 그런 척은 해야지. 사람들이 보는데?”

연이의 입이 저절로 벌어진다. 부끄러운 척? 연이가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제현이 연이의 귀에 속삭였다.

“내 생애 최고의 입맞춤이었다. 발끝까지 오싹했단다. 한동안 이곳이 어디인지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