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준비는 돼 있어요. 당신이라면.”

아무것도 탐낼 수 없었던 그 여자, 여원.

너무나도 탐이 나는 이 남자, 서유인.

살포시 내리는 빗방울처럼 어느새 서로에게 스며든 두 사람.

비 내리는 밤, 연인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유인 씨, 당신 처음 만났던 때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쩌려고?”

세상 겁날 것 없던 그의 목소리가 까칠해졌다.

“처음부터 아주 솔직해졌을 거 같아요.”

“그랬으면?”

“내가 지금보단 더 나은 여자로 당신 옆에 있을 거 같아요.”

2. 작가 소개

최수현

필명은 연하늘빛.

다시 생각나고, 또 읽고 싶어지는

그런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blog. http://blog.naver.com/sparklingcho

▣ 출간작

기다려줄래

그 여름, 나는(2016 리디북스 로맨스 대상 수상)

당신의 자리

취향의 문제

겨울, 또다시

비 내리는 밤

3. 차례

#21

#22

#23

#24

#25

#26

#27

#28

#29

4. 미리 보기

“……여원 씨, 더우면 창문 좀 열까요?”

“네.”

원의 가지런하고 하얀 이가 누르고 있던 입술을 놓아주었다. 예쁘게 꾸민 원의 모습은 다시 한 번 그의 취향을 저격했다. 웨이브가 살짝 들어가 어깨 아래에서 꼬인 머리칼에 보는 이의 몸과 마음도 같이 꼬였다. 약간은 지워지듯 붉은 기가 남은 입술은 남자가 헛생각을 하기에 딱 좋았다.

“차가 많이 막히네요.”

“그러게.”

“안 막히나요?”

“그러게.”

“…….”

원이 돌아보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들킨 기분이라 마뜩잖게 맞장구를 쳤다. 이야기를 돌려보려 했던 원이 불만 가득한 유인의 모습에 웃음을 감췄다. 이렇게도 쉽게 여유가 생겼다.

“오늘 유인 씨한테 못 볼 꼴 많이 보였네요.”

“난 별로.”

“안 궁금해요?”

꼬리가 아홉 달린 남자이니 이미 사실에 근접하게 짐작했을 것이다. 그래도 오늘 하루 애써준 그에게 어느 정도의 설명을 하는 것이 예의였다.

“……오늘 그 사람이요.”

가라앉은 그녀의 목소리가 아래로 향했다. 딱히 부끄럽거나 잘못한 것은 없다지만 유쾌한 일도 아니다. 더군다나 유인의 앞에서는.

“응? 진짜 하려고?”

“내 입으로 듣는 게 그나마 정확할 거예요.”

그녀의 체념 어린 웃음에 유인은 생각지 못한 일인 듯 잠시 홀로 생각에 잠겼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원이 다시 입을 때려던 차에 그가 먼저 앞좌석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기사님, 잠시만 자리 피해주실 수 있으세요?”

“지금요? 아직 가려면 한참 남았는데.”

“보내신 시간에 대해서는 충분히 사례하겠습니다.”

곤란해하던 기사가 대번에 반색하며 차 문을 열었다. 이 정도 차를 몰고 술기운에도 예의 바른 남자가 헛말을 할 것 같진 않았다. 순식간에 문이 닫히자 원이 그의 팔을 밀어냈다.

“왜요. 제가 부끄러워요?”

반은 농담이고 반은 그녀가 더 부끄러웠다. 겨우 담담하게 마음을 잡았을 때 힘들게 꺼낸 말이 다시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유인은 언제나 그렇듯 민다고 밀려나지 않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설마. 그럴 리가.”

손가락 사이사이로 겹쳐진 그의 손이 습하도록 달라붙었다. 원래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

“나 말했잖아요. 질투심 강하다고.”

“그랬던가요?”

“다른 남자가 여원 씨 말 듣는 것도 싫어요. 힘들게 꺼내는 말은 더.”

“…….”

“말했죠? 난 여원 씨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아주 많은 남자예요.”

“…….”

“으음, 일단은 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천천히 눈을 깜빡인 유인이 목젖을 크게 울렸다. 두어 번 숨을 들이켜본 그가 자리에 앉고 처음으로 원을 진지하게 마주 보았다. 훑거나 장난스럽거나 다정한 척조차 없다.

“……전공이?”

“심리학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