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당신 말대로 수년에 걸쳐 서서히 싫어지는 게 연애라며. 그러면 우리도 그런 연애 한번.”

“……그러면 그나마 다행인데 나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제나가 안 싫어질 거 같아서. 무섭도록 좋아져서.”

삶의 모토가 재미인 남자, 클럽 더 베이 사장 김경원.

차가운 눈의 여왕,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 경위 이제나.

남자 하나와 여자 넷. 최악의 선자리.

그 자리서 제 흥미를 끄는 여자를 만날 걸 알았다면 안 그랬을 텐데.

최악의 첫인상을 만회하기 위한 경원의 외조는 끊이질 않고, 제나의 이마에 느는 것은 주름뿐.

진심으로 밀어내는 제나와 전력으로 당기는 경원의 밀당 로맨스 ‘취향의 문제’!

2. 작가 소개

최수현

필명은 연하늘빛.

다시 생각나고, 또 읽고 싶어지는

그런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blog. http://m.blog.naver.com/sparklingcho

▣ 출간작

기다려줄래

그 여름, 나는(2016 리디북스 로맨스 대상 수상)

당신의 자리

취향의 문제

겨울, 또다시

▣ 출간 예정작

기억하나요

그곳에, 네가

자정의 연인

3. 차례

#35. 내가 아마도 당신을……

#36. 소중하고 귀중한

#37. 원더우먼 vs 소머즈

#38. 시시하고 뻔한 놈

#39. 오래오래 살 거야

#40. 메리 크리스마스!

#41. 마지막 이야기

#에필로그 1. the Winner, Grand Final

#에필로그 2. Your Taste

#외전. The number of……

4. 미리 보기

민지영은 생각보다도 더 어려 보였다. 서류를 보고 나이를 먼저 확인한 제나가 그녀 앞에 앉았다.

“혀, 형사님.”

얼굴만 동안인 줄 알았더니 표현도 서툴렀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여자의 소매는 이미 물기가 뚝뚝 떨어질 만큼 젖어 있었다.

“저, 저희 부모님 오셨을 텐데…….”

“네. 아마 그럴 거예요.”

“아…… 흐흑.”

최소한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아는 듯했다. 반대의 경우엔 부끄러움조차 보이지 않으니까. 이 여자는 오세림처럼 눈물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떼어내지도 않았고 붉게 번들거리는 코끝을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걸 보고 알았다. 오세림이 여우였으면 민지영은 멍청하다고, 그래서 어리석게 여기까지 왔다고.

“제가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저는 오세림 씨보다는 민지영 씨를 믿고 싶어요.”

“흐흑.”

지영은 울면서도 얼굴을 들었다.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믿는다는 말이 제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놀란 눈치였다.

“저,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아무 사이도 아닌데…….”

“저 그런 질문 안 했어요. 민지영 씨랑 주재희 씨가 무슨 관계인지.”

흐읍, 숨을 삼키는 소리가 귓가에 길게 남았다. 가녀린 몸 또한 움찔했다.

“거짓말을 하면 저도 굳이 민지영 씨 믿을 필요 없어요. 다른 형사 부를게요.”

“자, 잠시만요.”

밀고 당기고 그럴 시간은 없었다. 정말 속이 타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람은 제나였다. 재빨리 민지영을 스쳐 지나가려 하자 다급한 그녀가 제나의 손을 잡았다.

“죄, 죄송해요. 사실대로 이야기할게요.”

울음이 반쯤 섞인 여자의 이야기는 사설이 너무 길었다. 재촉하지 않는 것이 제나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이었고, 그중에서도 간추리고 또 간추렸다. 누가 봐도 사실이다 싶은 이야기만 능력껏 잡아 끌어냈다.

“그러니까 민지영 씨는 주재희 씨랑 두 달 전부터 만났고, 그것 때문에 오세림 씨한테 미안했다는 거죠?”

“네. 언니가 먼저 전화했는데, 너는 좋겠다고, 부럽다고, 자꾸 찔리는 말을 해서요……. 그런데 제가 알기로 언니는 여러 사람 만났으니까 또 특별히 그런 데 신경 쓸지는 몰랐어요. 그러더니 언니가 가도 되냐고 하기에 제가 재희 오빠 눈치 살피는데 갑자기 전화가 끊겨버렸어요.”

“전화가 끊겨요?”

“네. 다시 해도 안 받고……. 그런데 바로 문자로 뭘 하는 중이라 못 받는데 너 왜 전화했냐기에 제가 민망해서 여기 놀러 오라고 했어요.”

어제 오세림은 민지영이 먼저 놀러 오라고 했던 문자를 증거로 내밀었다. 두 사람이 사귀는 데에 알리바이 되어주러 갔다가 봉변을 당했다고. 지금 말 들어보면 분명 일부러 전화를 끊어버렸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걸고넘어지려면 통화 목록 훑어 시간을 잴 수도 있겠지만 녹음도 안 된 통화보다는 문자 하나가 증거로는 더 신빙성이 있다. 눈앞에 있는 민지영이 그만큼 가지고 놀기 쉽게 어리석으니 더 확실했다.

“그리고 계속 술을 마셨고, 주재희 씨 매니저가 들러 대마초를 준 거네요?”

“아, 저는 몰랐어요. 그게 그건지도 진짜…….”

“그럼 술 마신 김에 자연스럽게 피운 건가요?”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저 진짜 모르고 그랬거든요. 머리도 아프고 얼른 가서 자려고 했는데 세림 언니가 안 가니까. 또 저 혼자 가려니 불안하고, 세림 언니가 자기 나오는 프로 한다고 그거 하나만 더 보고 가자고 그래서…….”

“자기 나오는 TV 프로요?”

“네. 그거, 그거만 보자고 해서 앉아 있다가 담배 한번 피워보라 주기에 그거 받았고 언니가 자리에서 일어서고……. 그다음은 정말 잘 모르겠어요.”

더 이상은 들을 말이 없다. 들어봤자 궁색한 변명만 이어질 것이 뻔했고. 우는 여자 앉혀놓고 돌아서 나오는 제나의 심장이 복잡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오세림은 그 자리에 분명 알고서 갔다. 의도적으로.

“누님, 이야기 좀 들었어요?”

“어…… 빠져나갈 구멍이 너무 많아. 자기 혼자만.”

“네?”

“여배우한테 마약은 치명적이야. 그걸 뒤집어쓰면서도 여기에 발을 일부러 들였다면 분명한 이유가 있겠지.”

그렇게 해서라도 김경원 물고 늘어질 만큼 정이 남았든가, 아니면 이거저거 다 재고 따져도 자기한테 남는 게 있든가.

경원은 자진 출두를 한 만큼 떳떳하게 조사를 마치고 나갔다. 곤란한 대답이라 할 만한 것도 없었고 알면 아는 대로, 또 반대의 경우에도 솔직하게 말했다.

단 한 가지, 그가 두 번 생각하고 망설인 것은 제나의 문제였다. 자신이야 이렇게 살았지만 제나는 누구보다 자기 일에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사는 여자다. 일이 이렇게 꼬였다 해도 저 좋다고 그런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여어, 쌍둥이 아빠, 우리 며느리는 잘 있어?”

- 너 이 자식! 뭐야?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더없는 경사를 맞이한 친구에게 괜한 걱정을 끼칠까 최대한 피했지만 포기할 강재가 아니었다. 아무리 소리 소문 없이 수사가 진행되어도 강재가 있는 증권가는 이런 소식에 가장 예민하다.

- 너 어딨는 거야? 빨리 말해. 은서가 알면!

“에이, 누가 보면 네가 내 애인인 줄 알겠다.”

- 미친놈. 너 진짜 뭘 하고 다니는 거야? 어디야?

“네가 그런 거 물으면 안 되지. 은서 씨나 잘 보살펴줘.”

- 너도 내가 진작에 유은우랑 묶어서 삼각김밥 공장에 보내야 했어.

그 말이 지독한 진심인 것을 아는지라 경원이 못내 웃어버렸다.

- 웃음이 나? 이 상황에서?

“그러네.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는 것도 우습네.”

- 됐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강재의 말이 짧고 간결했다. 그래도 그 안에 담긴 뜻과 힘은 컸다.

“지금은 없어. 우리 며느리나 잘 보살펴줘.”

- 미친놈.

“알아, 아니까, 아직은 은서 씨한테 비밀로 해줘. 유은우 입단속도 잘 시키고. 애를 둘이나 낳았는데 산후 조리 잘해야지.”

침묵 속에서도 대단한 화를 분출하던 강재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제 막 인생에 가장 좋은 소식을 두고 염려를 끼치는 제 자신이 싫다. 그리고 부끄럽고, 또 부럽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가장 부러웠고, 평탄치 못한 과거에 얹혀 자포자기로 살지 않았던 삶의 태도가 부러웠다. 제 여자를 떳떳하게 지켜줄 수 있는 흠 없는 강재의 과거가 눈물나게 부럽다.

“하아…….”

주머니 속에 며칠째 자리한 작은 케이스를 꺼내보려다 관뒀다. 여기서 더 조급해질까 봐.

“김경원 씨.”

알고 있는 얼굴이, 아침에 자신을 외면했던 얼굴이 클럽 앞에 있었다. 그가 다시 한 번 인사를 했지만 여전히 받아주지 않는 것도 같았다.

두 남자 모두 제 앞에 놓인 찻잔을 한 번도 집지 않았다. 경원은 원래부터 경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제나를 만난 후 그 생각이 바뀌었다. 그러나 이 순간, 그것도 단순히 이제나 효과였음을 알았다.

“팀장님.”

불러놓고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가 희끗한 남자가 경원 못지않게 늘 입가에 달고 다니던 사람 좋은 미소를 내려놓았다.

“방금 조사 받고 돌아가셨다는 이야기 들었습니다.”

“네. 다 끝났으니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이쪽 일이란 게 그렇게 쉽지 않아요.”

경원의 목울대가 울렸다. 볼썽사납게 굴기 싫어 초조한 티는 줄였지만 이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고 싶었다. 팀장의 다음 말을 안 들어도 알 것 같았다.

“저는 당당합니다. 어떤 조사를 해도 좋고 아니면 제 모발 검사도 얼마든지요. 악의적인 험담의 진상은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겁니다. 아직 이르지만 저도 개인적으로 힘을 쓰고 있고.”

“주재희 씨 매니저가 오후에 조사 받으면서 직접 진술을 했습니다. 더 베이에 갔다가 구입했다고.”

“하아, 그건 어디까지나 그쪽에서!”

“물론 저는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더 사건이 커져버렸죠. 가짜인 걸 알아도 수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두 사람 다 제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둘 다 제나를 지극히 아꼈다.

“아직은 김경원 씨와 제나 사이를 극히 일부만 압니다. 하지만 오세림 그 여자가 저렇게 마음먹고 나섰으니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모르구요. 제나에게는 경찰 상관으로서 경원 씨와의 어떤 통화 기록도 남기지 말라 명했습니다. 신경 쓰셨을까 봐.”

“그렇군요.”

“……긴말 않겠습니다. 헤어져주십시오.”

팀장이 처음으로 그에게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새삼 그녀의 팀장이 얼마나 그녀를 아끼는지 가슴에 고스란히 닿았다. 그걸 알아 화도 못 냈다. 만약 다른 이가 그런 말을 했다면 경원은 그 사람을 죽였다.

“팀장님.”

“제나는 경찰로서 큰 자리에 오를 아이입니다. 처음부터 지켜봤구요. 재능도 재능이지만 본인이 저 일 하면서 아주 좋아합니다.”

“저한테도…… 이제나는 소중한 여잡니다.”

“지금 와서 김경원 씨가 어쨌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제 딸이라면 상관없다고 했을 겁니다. 제 딸은 경찰도 아니고 공직 쪽으로는 전혀 무관하니까요.”

“…….”

“하지만 제나는 아닙니다. 아무리 김경원 씨가 무관하다고 해도 그런 범죄로 이름이 오르내린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앞날에 흠이 됩니다. 더군다나 지금은 어찌어찌 넘긴다 해도 그 일 하는 이상 더 그러지 말라는 법도 없구요.”

사심 없이 곧은 어른이 제 자식처럼 비유를 하니 경원 또한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제 죗값 치르더라도 그녀를 포기할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런데.

“혹시 제나 씨에게도 같은 말을 하셨습니까?”

“아니요. 못 했습니다.”

팀장 역시 답답함에 두 손을 들어 눈 위를 거칠게 문질러댔다. 이런 말을 하는 그가 마음이 편하다면 그거야말로 거짓말이다. 그래서 결국 박 팀장은 진심을 말하고 말았다.

“제나는 그 성격에 죽어도 못 헤어진다고 할 걸 잘 아니까요.”

“……그럼 저는요?”

나 역시 못 헤어집니다. 생각만 해도 무섭습니다.

그의 가장 솔직한 마음이 체면치레로 걸어놓고 있던 모든 가면을 벗어던졌다. 사람을 오래 보아온 박 팀장은 그것을 알았지만 끝내 외면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경원 씨는 제나를 더 사랑하시니까, 그러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베테랑 형사답게 자신의 말에 확신이 있었다. 분명히 자신의 말이 맞다는 씁쓸함이 가득 묻어나는 확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