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잘해줄게. 도망갈 생각 같은 거 안 들게 내가 앞으로 더 잘할게.”

“…….”

“그러니까 나랑 있자.”

삶의 모토가 재미인 남자, 클럽 더 베이 사장 김경원.

차가운 눈의 여왕,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 경위 이제나.

남자 하나와 여자 넷. 최악의 선자리.

그 자리서 제 흥미를 끄는 여자를 만날 걸 알았다면 안 그랬을 텐데.

최악의 첫인상을 만회하기 위한 경원의 외조는 끊이질 않고, 제나의 이마에 느는 것은 주름뿐.

진심으로 밀어내는 제나와 전력으로 당기는 경원의 밀당 로맨스 ‘취향의 문제’!

2. 작가 소개

최수현

필명은 연하늘빛.

다시 생각나고, 또 읽고 싶어지는

그런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blog. http://m.blog.naver.com/sparklingcho

▣ 출간작

기다려줄래

그 여름, 나는(2016 리디북스 로맨스 대상 수상)

당신의 자리

취향의 문제

겨울, 또다시

▣ 출간 예정작

기억하나요

그곳에, 네가

자정의 연인

3. 차례

#23. 매력을 보여줘

#24. 질투는 엘사도 열받게 한다

#25. 당신의 약점은……

#26. 목줄을 맬 거야

#27. 공식적인 첫날밤

#28. 외로운 마음

#29. 서프라이즈!

#30. 양치기 김경원

#31. 숨기지 않아

#32. 욕심낼 거야

#33. 제발 이대로

#34. 너는 알잖아

4. 미리 보기

그 말을 전부 이해하진 못했다. 하지만 더 물어볼 사람도 없어 결국 형부 말대로 경원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밀착 마크 사흘째, 경원에게서 보통 사람들의 약점을 찾아내려 했던 자신이 점차 우스워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실수나 잘못을 몰래 숨겨놓는 것이 약점이 될 텐데 경원은 달랐다. 워낙 막 나가고 자기 마음대로 살다 보니 웬만한 일은 평범한 일과에 불과했다. 식사하고 차 마시는 일과처럼, 경원은 독보적인 마이페이스였고 그런 사람에게 보통의 잣대를 가져다댄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김 비서, 거기 공사 대금 준 지가 언젠데 아직도 작업이 진전이 없어? 한번 내려갔다 와.”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워낙 그치들이 돈 문제로 물고 늘어져서…….”

“응. 그러면 다 때려 부수고 다시 가져가라 그래. 내 돈은 뱉어놓고.”

그럴 줄 알았다는 김 비서의 체념에 은우가 동정의 시선을 보냈다. 약점을 찾으러 왔건만 어찌 된 게 경원이 의외로 바쁘게 산다는 것 말고는 알아낸 것이 없다.

미리 추측컨대, 김경원의 일과라면 하루에 반은 자고 반은 클럽에서 놀다가 그래도 시간 나면 경찰 언니를 만나러 가겠거니 했었다.

“나야 우리 처제 꿍꿍이가 뭔지는 모르겠다만, 이왕이면 같이 즐거우면 좋겠네?”

“꿍꿍이라뇨? 절대 그런 거 없어요.”

미심쩍게 보면서도 그는 별다르게 몰아대지는 않았다. 최근 들어 일이 두 배로 늘어났고 워낙 고액이 오가다 보니 다른 데 신경을 돌릴 새가 없었다.

“뭐야? 아직 안 갔어?”

사장실 문이 다시 열리자 당연히 김 비서일 거라 생각한 경원이 고개도 들지 않고 서류를 뒤적거리며 일만 했다. 뒤에서 은우가 조심히 어깨를 두드리자 그제야 고개를 들어 불청객을 확인했다.

“어, 이게 누구시더라?”

“오빠, 오랜만이에요.”

또랑또랑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얼마 만이던가, 세림이 자기 집이라도 되는 양 그의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실제로 그를 만난 곳이야 거의가 빤한 장소들이었고 이렇게 집이나 사무실처럼 개인 공간에 발을 들인 적은 극히 드물었다. 어쩌면 본능적인 성욕조차 일처럼 여기는 게 아닐까 싶게 선을 그었던 남자다.

“내가 전에 여기서 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할 말이 있어서요. 진짜 중요한 일이에요.”

“신 부장, 요새 일 열심히 안 하나 보네? 아니면 사람 얼굴도 못 알아볼 정도로 눈이 나빠졌나?

경원이 책상 위 스피커폰을 누르고 차가운 음색을 내뱉었다. 방금 전까지 은우에게 장난을 걸던 느물느물한 말투는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지 마요, 오빠. 말이라도 한번 들어보면…….”

“나가.”

“오빠 요새 만나는 분 있다면서요!”

세림을 윙윙대는 날파리 정도로 대하던 그가 급하게 튀어나온 마지막 말에야 눈을 맞췄다. 웃는 모습이 여전하다 싶으면서도 한순간 바짝 벼려놓은 칼날처럼 매서웠다.

그 낯선 날카로움엔 아무리 변죽 좋은 세림조차 두 손을 뗐다. 그래도 김 비서가 없을 때 비굴하다시피 사람들 사이에 끼어 몰래 들어온 터라 이게 마지막 기회였다.

“내가 만나는 사람 이야기가 왜 네 입에서 나오지?”

“그게 아니라…… 저는 그냥…… 오빠가 그분 잘 만났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녀가 연기자답게 바로 표정을 수습했다. 본론이 나오기도 전에 움츠러들면 곤란했다.

“일단 앉지?”

“어머, 고마워요. 안 그래도 다리 아팠거든요.”

이제야 말이 통한다 싶은지 그녀가 상큼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그의 옆자리를 파고들려다 쿵, 자국이 날 정도로 펜을 짓누르는 그의 손짓을 보고서야 맞은편에 몸을 내렸다.

“우리 처제도 앉을 거면 앉고.”

“아, 아니에요. 저…… 마실 거라도 가져올까요?”

세림의 등장에 괜한 은우만 바짝 긴장했다. 빨리 자리를 떠버리고 싶지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무언가 건질 기회지 싶어 경원을 살폈다.

“나는 더치 아메리카노 아이스로. 콜롬비아 수프리모면 좋고.”

“그, 그런 거 없는데, 여기…….”

“그럼 아이스 녹차 라테라도. 아! 슈거 프리로.”

“어, 없는데…….”

“아, 정말 뭐야. 그럼 되는 거 아무거나.”

“오세림 씨, 지금 카페 왔어? 본론이나 말해.”

경원의 짜증이 높아졌다. 두 여자 모두 잠깐 머뭇대다가 결국 은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붙어 있어야 될 분위기였는데, 그 어디에다도 풀지 못하는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뻔뻔한 세림에게 향했다.

“오빠, 수준 떨어지게. 쟤도 오빠 만나는 애예요? 취향이 많이.”

“닥쳐줄래?”

“아니, 난 그냥.”

“내 시간을 이렇게나 빼앗고 별 내용 아니면…… 너도 별거 아닌 인간으로 만들어줄게. 너 알잖아, 나 그런 데 소질 많은 거.”

그가 다리를 꼬며 시계를 확인했다. 저도 모르게 침부터 한 번 넘긴 세림이 천천히, 그러나 활짝 웃으며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나, 나는…… 다른 게 아니라.”

“10초 더 지났어.”

“여기서 드라마 촬영하는 거!”

찌르듯 번뜩이는 그의 음색에 결국 세림이 본론을 터트렸다. 경원에게서 걷어차인 후 소위 그녀의 급이 떨어졌다. 그가 특별히 손을 쓰지는 않았겠지만 남자 문제가, 그것도 여럿으로 얽히다 보니 소문이 나버렸고, 그 탓에 캐스팅이 확정된 드라마가 여럿 날아갔다. 소속사에선 눈 좀 낮춰 조연 자리라도 알아본다 했지만 그 대단한 자존심엔 안 될 말이다.

“그거 최 감독님 거잖아요. 오빠 그분이랑 친한 거 알아요. 그쪽으로 인맥도 많고. 저 정말 그거만 잘되면……. 부탁할게요. 그래도 옛정이 있는데.”

“옛정이라.”

“오빠가 이번에 손만 써주면 저 정말 입 다물고 있을게요.”

“뭐에 대해 입을 다문다는 건데?”

“그 여자요. 선 자리에서 봤던…… 맞죠? 거기랑 잘되는 거죠?”

떠보는 듯 얼버무렸지만 사실 다 알아보고 나왔다. 임자 없어진 빈 몸에 들이대는 남자들 중 경원같이 돈, 외모 다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어떻게든 해보려 사람 좀 써 알아봤더니 이미 다른 여자가 딱 붙어 있었다. 정확히는 그가 그 여자 옆에 딱 붙어 있는 걸 확인했다.

“네 말은, 내가 거기 안 꽂아주면 우리 아가씨 찾아가서 깽판이라도 치겠다는 거네?”

“그렇다기보단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오빠도 제가 둘 사이에 분란 만드는 거보다야.”

“내가 그걸 무서워할 사람으로 보인단 말이지? 딜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아니에요? 그러니까 여기 앉아 내 이야기 들어보겠다 한 거잖아요.”

경원의 웃음이 평소와는 달랐다. 몹시 성가시게 귓가에서 윙윙대는 모기 하나 잡았을 때, 그런 오싹하고도 만족스러운 미소였다.

“내가 널 여기 앉으라고 했던 건, 아까 그 자리에선 뭘 던지면 바로 맞힐 자신이 없어 그랬지.”

화병에서 꽃을 뽑아낸 그가 비죽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먹잇감을 툭툭 건드리는 야수처럼 그의 눈빛이 그녀의 가까운 미래를 어둠으로 물들였다.

“왜, 왜 이래요!”

기척 살피는 것 하나는 톱스타 반열이라 세림은 바로 얼굴을 가리며 몸부터 피했다. 실제로 이 정도까지 경원이 반응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던지라 길게 자란 손톱이 제 뺨에 푹 박혔다.

“걸고넘어질 걸 넘어져야지?”

“난 그런 뜻이 아니라.”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닌, 눈빛에 떠밀리듯 몇 걸음 뒷걸음질 쳤다. 여전히 입 다물고 그녀를 지켜보는 경원은 그야말로 비현실적으로 평온했다. 이런 남자를 협박조로 넘겨보려 했던 생각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었던지, 또 이 와중에도 그가 집착하는 대상에 대한 시기가 솟았다.

그녀에게 경원은 그저 오는 여자와 가는 여자 모두에게 관대했던 남자일 뿐이었는데.

“은우 씨, 왜 그래요? 안에 누구…….”

극적인 순간 문이 열리자 세림은 얼떨결에 자신이 열어버렸던가, 착각마저 들었다. 쟁반을 들고 있는 겁먹은 어린 아가씨 뒤로 하얗고 도도한 여자가 사무실 안을 들여다보자 그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원래도 행동 빠른 남자였지만 눈을 드니 벌써 여자 앞에 서 있었다.

“이제나.”

단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볼 거라고 생각 못 했던 남자의 표정이 세 여자 모두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은우는 형부가 했던 말의 의미와 그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았고 세림은 잠시 가졌던 후회 대신 분노를 쏟아낼 대상을 찾았다. 그리고 제나는…… 늘 그렇듯 매력적인 웃음으로 응대했다.

“제가 때를 잘못 맞춰 온 모양이네요. 다음에 다시 뵙죠, 김경원 씨.”

“나 보고 이야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