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겨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빼앗겨서

겨울을 피해 다니던 여자 유서라.

겨울은 항상 그녀에게 가혹하기만 했다.

얼음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이 좋아

겨울을 사랑했던 남자 한지호.

겨울은 더 이상 그에게 행복하기만 한 계절일 수 없었다.

하지만…

“겨울만이 아니라 여름에도 함께할게요. 아니. 앞으로의 겨울을 모두 다 함께할게요.”

겨울에게서 도망치려던 여자와 겨울을 쫓아가려던 남자가

겨울의 시작에 만나고 사랑하는 이야기

그리고…

또다시 겨울.

-----------------------------------------------------------------------------

[작가 소개]

김조유

출간작

<또다시 겨울>

-----------------------------------------------------------------------------

[본문 중에서]

“우리 엄마는 겨울에 사라졌어요.”

손가락이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아무 일 없다는 듯 매끄럽게 움직였다. 머리 위에서 들리는 낮은 숨소리가 평온했다. 여전히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 소리도.

온몸으로 느껴지는 그 두근거림에 서라의 심장도 함께 뛰었다. 과거는 그녀에게 있어 외면하고 싶지만 버릴 수 없는 것들이었다. 감정적이지 않을 수 없는 그 기억들은 서라가 스스로의 얘기를 하지 않도록 만들어 버렸다.

“아빠가 죽은 것도 겨울이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겨울이었어요.”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스스로의 얘기를 풀어헤친 적은 없었다. 언제나 꽁꽁 묶어 둔 채 스스로 외면했다. 언제 저 매듭이 풀릴지 긴장하고 두려워하면서.

서라는 조금 두서없이 그녀의 인생을 속삭였다. 한 번도 정리한 적 없는 삶이기에 꺼내 놓는 것들도 뒤죽박죽이었다. 조금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었지만 지호는 별다른 말도 하지 않았다.

가벼운 끄덕임과 함께 눈가를 닦아 주거나, 조금 씁쓸하게 웃어 줄 뿐. 아무런 것도 묻지 않고, 달래 주지도 않았다.

서라는 제 감정에 못 이겨 흐느끼며 지호의 품을 파고들었다. 온몸을 끌어안는 온기가 따듯했다. 가볍게 입술이 닿는 귓가에 차분한 숨소리가 울렸다.

“지호 씨 덕분에 극복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서라 씨가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인 거예요.”

“고마워요.”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살짝 들자 지호의 입술이 뺨에 꾹 달라붙었다.

“모두 이겨 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여기에 남았던 것뿐이에요.”

그의 웃음이 옮기라도 한 건지 서라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가 부드러운 니트 위로 얼굴을 묻었다.

“그래도 역시 재희 씨 가족과 서라 씨의 사이는 조금 질투나긴 해요.”

“그게 왜요?”

“사라가 오면 서라 씨는 분명 나는 뒷전일 테니까.”

속상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목소리였다. 서라는 웃음을 꾹 삼켰다. 그도 그럴 게 이 집에 있으면 거의 모든 일은 사라를 기준으로 돌아갔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아이는 누가 봐도 귀엽고 사랑스러웠으니까.

“속상해요?”

“조금요.”

지호가 쓰게 웃었다.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이 가득 담긴 웃음이었다. 서라의 팔이 남자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그럴 필요 없어요. 지호 씨는 비할 수 없는 의미니까.”

“어떤 의미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것을 묻는 목소리가 짓궂었다. 기쁘게 웃는 입술이 눈물자국이 남은 뺨에 몇 번이고 맞닿았다. 뜨거운 혀끝이 피부를 살며시 훑었다. 지호의 입술이 미지근하게 식어 버린 눈물길을 따라 흘러내렸다.

“으음.”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 서라는 잠시 고민했다. 그의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두려워졌다. 입 밖으로 꺼내면 또 무언가를 빼앗길까 봐.

그녀의 틈을 노리고 있는 겨울이 지켜보고 있다가 사랑한다는 말에 또 빼앗아갈까 봐. 서라는 혀끝까지 밀려나온 단어를 애써 집어삼켰다.

“이런 의미요.”

매끄러운 뺨에 손을 갖다 대고 살짝 허리를 들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지호의 모습은 꽤나 색정적이었다. 평소라면 볼 수 없는 각도라는 게 더 짜릿했다.

달뜬 숨이 서로의 입술을 간질였음에도 지호는 눈을 깜박일 뿐 고개를 내밀지도 그녀를 당기지도 않았다. 모든 것은 서라의 뜻대로 하겠다는 듯이.

애가 닳아 사라질 만큼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여자의 입술이 살짝 아래로 떨어졌다. 처음엔 가볍게. 그다음엔 조금 깊게, 그리고 질척하게.

입술이 벌어지고 혀가 뒤엉켰다. 서라는 허리를 바짝 끌어당기는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한참이나 서로의 숨을 삼키다 겨우 입술이 떨어졌다. 지호가 거의 헐떡이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서라 씨, 제 방에 갈래요?”

그 뜻이 무엇인지 모를 수 없었다. 서라는 그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좋아요.”

-----------------------------------------------------------------------------

[목차]

1. 겨울을 피하고 싶은 여자

2. 겨울을 사는 남자

3. 겨울의 시작

4. 겨울 속에서

5. Canned winter

6. 겨울 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