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죽은 자는 말이 없으나 그 주변에 놓인 것들은 할 말이 많다.”

슈인 경관청에서 일하는 1년 차 경관 필립은 살인사건 현장에서 마법 감식반 소속 검시관 루이스와 조우한다. 공간을 읽는 힘을 가진 마법사인 루이스가 펼친 아름다운 마법장에 눈을 빼앗긴 필립은 일견 평범해 보이는 그녀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녀 주변에서 자꾸 이상한 사건 사고가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작가 소개

지은이 : 진보람

목차

체험판

Prologue

1. 실바람

1권

Prologue

1. 실바람

2. 높새바람

3. 돌개바람

4. 산들바람

작가 후기

책 속으로 

필립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감식을 위해 늘어서 있던 증거물들에 내려앉는 빛. 환상처럼 일렁이는 공간. 다정한 바람과 부드러운 손길. 움푹 팬 땅마다 증기 같은 안개가 서렸다. 필립의 인식 너머에서 한 가지 단어가 고개를 들었다.

마법사.

마법사를 처음 본 것은 아니지만, 그가 보아온 마법사들 대부분이 연구비에 눈이 먼 자들이었고, 그런 자들이 사용하는 힘 따위를 경이롭게 여겨본 적은 없었다. 그 때문에 필립은 더더욱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메르디츠가 입을 벌린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파리 들어간다.”

도무지 눈을 떼기 어려운 현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모든 마법사는 고유의 마법장을 가지며, 마법사가 마법을 펼칠 때 마법은 종종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종의 현상으로 변모한다. 필립은 그런 아름다운 마법장은 처음 보았다.

그 중앙에 선 채 손을 뻗고 있는 검시관은 동그란 안경으로 거의 다 가려진 얼굴에 복숭앗빛 뺨을 가졌다. 작은 체구에 마른 몸. 사실 여느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인상이다. 그러나 시선을 뗄 수 없게 하는 동그란 눈은 도무지.

필립은 그녀가 펼치는 마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 모습에서 불가사의한 매력을 느꼈다. 조그만 입술이 오물거렸으나 소리는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이쪽이 현장이 아니로군요?”

“아, 예? 예. 살해 현장은 저쪽입니다.”

메르디츠의 답이 평소보다 느렸다. 필립은 그의 상관을 포함한 다른 동료 경관들 역시 그녀의 마법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을 보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난생처음으로 느끼는 감각에 척추를 타고 소름이 달렸다. 마법은 천천히 사라졌고 필립이 느꼈던 기묘한 느낌 역시 사라졌다. 루이스는 땀을 흘리며 이마를 훔쳤다. 필립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루이스의 동그란 안경 속 눈이 그를 보았다.

“아, 감사합니다.”

루이스의 웃음에 필립 역시 마주 웃었다. 그들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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