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Q. 도련님이 결혼하시고 제일 좋은 점이 뭐예요?

A. 일찍 주무시고 늦게 일어나세요!

Q. 그럼 제일 나쁜 점은 뭐예요?

A. 침실이 시끄러워요. 문 앞을 지나다니기가 좀.

- 바이헤르 가의 하녀와의 인터뷰 中

릴리아나 나뜨완 라핀트. 너무나 평범한 그녀는 ‘우연의 신’을 만난 후 살짝 미인이 되지만, 그 대신 후작님을 차지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헤이든 라델프 바이헤르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상대인데……. 희세 작가가 선사하는 유쾌한 로맨스 ‘후작님, 후작님!’

“저기, 저도 뭔가 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헤이든 님! 혹시 받고 싶은 거 없으세요?”

조곤조곤 후작님의 품에서 말씀드리자 후작님께서는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여셨다.

“계약서에 지장을 찍어주셨으면 합니다.”

“엑, 혹시 사이비 종교는 아니겠지요? 보증이라든가.”

“다음 생, 다다음 생에도, 릴리는 나랑 결혼해야 한다, 뭐 그런 계약서입니다. 별거 아닙니다. 그냥 살짝 손가락에 피를 내서, 살짝 눌러주면 됩니다.”

나는 그렇게 릴리아나 라핀트 바이헤르가 되었다.

※ ‘가하 에픽’은 다양한 시대, 색다른 소재, 독특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도서출판 가하의 새로운 브랜드입니다. 로맨틱한 판타지가 가득한 가하 에픽, 지금 만나보세요!

2. 작가 소개

희세

조아라에서 ‘라시아’ 느긋하게 연재 중인 아직은 창창한 20대.

언니랑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강아지님과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다.

호화판 외국 여행이 꿈인 소시민.

딸기와 자몽과 고기를 좋아합니다.

▣ 출간작

어느 날 일어났더니

후작님, 후작님!

▣ 출간 예정작

라시아

3. 차례

#5. 세계 서열 1위 후작님은 내 거!

#6. 느 집엔 여동생 없지?

#7. 로즈마리는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죠.

#8. 결혼식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요?!

#9. 이런 후작님은 싫어 싫어

#외전. 아리아나 레자르 에바르셀 영애의 서신

#부록. 인터뷰

#작가 후기

4. 미리 보기

방에서 혼자 한참을 책을 읽고 있다가, 밥을 먹겠냐고 묻는 하녀에게 고개를 젓고 그다지 배고프지 않다고 말했다. 바닥의 이불을 끌어당겨서 배를 댄 채로, 고개도 들지 않고 말하자 하녀는 네, 그러시군요. 하더니 바람처럼 내 방을 나갔다. 어쩐지 와당탕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급한 볼일이 있나 보군. ……화장실인가? 아니, 나 요즘 화장실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드는데. 착각이겠지. 그나저나 어디까지 읽었더라……. 아, 맞아. 

[그렇게 베아트리체는 운명의 실을 제멋대로 꼬아버린 것이다. 그 탐욕에 신들도 혀를 차고 갈 지경이었다. 르셰와 헤더링턴은 바로 그녀의 이런 욕심 때문에 그들이 만나야 했던 그때, 만나지 못하고 헤어진 후 오랜 시간동안 서로를 그리워하게 된다. 운명이 뒤틀린 다음 날, 르셰는 헤더링턴을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꽃을 준비하고 그의 저택으로 가는 중이었다. 오늘에야말로 지금까지 얄밉기 짝이 없었던 헤더링턴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겠다는 생각을 하며 씩씩한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방 밖에서 씩씩한 걸음 소리가 들렸다. 내 귀가 이상한가. 진짜 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꾸물꾸물 자세를 살짝 바꾸고 다음 줄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르셰도 알고 있었다. 얄밉기 짝이 없는 헤더링턴을 만나기 위해서 그녀가 이 전날부터 매우 열심히 꽃을 포장했음을 말이다. 직업이 직업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가당찮게 느껴질 정도로, 실은 그녀가 헤더링턴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한 부끄러움 때문에 르셰는 일부러 더 크게 손과 발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 탓에 어쩔 수 없이 꽃다발에서 바스락바스락 하는 소리가 크게 났다.]

그러자 또 바스락바스락 하는 꽃다발에서나 날 소리가 났다. 내가 책에 너무 집중해서 설마 내 귀에 실제로 르셰의 걸음 소리와 꽃다발 소리가 들리는 것인가, 아니면 알고 보니 이 책이 우연히도 마법의 책이라 음성 지원이 되는 것인가. ……이건 좀 가당찮은 생각이지만, 혹시 정말로 난쟁이, 아니면 요정이 존재해서 날 위해 음성 지원을……? 혹시나 해서 재빨리 몸을 일으켜서 책을 탈탈 털어봤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진짜로 요정이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지만, 있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정도는 했는데. 세상에는 약간의 꿈과 희망, 그리고 모른 척, 또 판타지가 필요한 법인데! 

아무튼 누가 꽃다발을 들고 내 방 쪽으로 오는 게 확실한데, 잠깐 훔쳐볼까……!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살금살금 기어서 방문 옆에 주저앉은 채로 한참 숨을 죽여 소리를 듣고 있자니 과연 진짜로 저벅저벅, 바스락바스락 하는 소리가 났다. 오, 나 되게 탐정소설에 나오는 사람 같아! 범인은 이 안에 있다! ……는 나밖에 없군. 내가 범인인가.

저벅저벅하는 소리는 점점 커져서 정확히 내 방문 앞에 멈춰 섰다. 사실 아까의 하녀일 수도 있고, 모르긴 몰라도 공작가의 별장이니 나름의 보안체계가 잘되어 있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상기시켰음에도 막상 이런 순간이 오니까 꽤 무서웠다. 마치 추리 소설이나 공포 소설에서 악당이 지나가기를 숨죽이고 기다리는 희생자 1이 된 기분이라고나 할까……! 절대 내가 범인인 상황이 싫어서 이런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아니라고. 심심했는데 이런 이벤트라니! 즐겁다! 과연 공작가! 문 앞에 얌전히 귀를 가져다대고 악당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런 바람과는 달리 문이 열리고……!

“끼야아……악!”

데굴데굴, 나는 앞으로 나뒹굴었다. 내가 문에 너무 기댔나!

“……혼자 뭘 하고 놀고 계시는 겁니까.”

“어……. 헤이든 님?”

해봤자 하녀님이거나, 뭐 집사님이라거나, 아니면 하인님이거나, 하다못해 지나가는 옆집 강아지일 줄 알았는데, 꽃다발을 든 후작님이 튀어나와서 깜짝 놀랐다. 일하러 가신지 얼마나 됐다고 지금 여기 계시지? 지금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귀신 보는 것처럼 절 보십니까.”

“일하러 가신 거 아니었어요? 지금 여기 계셔도 돼요? 아니, 꽃다발은 또 어째서…….”

후작님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콧구멍이 보였다. 콧구멍도 예쁜 타원형에 코털도 안 삐져나오고, 후작님, 역시 주인공 급 퀄리티 가지고 계시는구나. 후작님께서는 내 질문에도 미동 하나 없이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계셨는데, 어쩐지 표정이 무척 묘했다. 보통 대답은 안 하셔도 일어나라고는 하시는데 후작님께서는 그냥 가만히 나만 내려다보고 계실 뿐, 이렇다 저렇다 말씀이 없으셨다.

“……헤이든 님?”

“다음에,”

서슴없이 손을 내미셔서 무심코 그 손을 잡았더니 팔이 빠져라 나를 잡아당겨 일으키셨다. 조금 아픈데요! 팔이 빠질 심각한 위기인데요!

“이 모습으로 마법 사진을 찍든지, 초상화를 그리도록 하죠.”

갑자기 뜬금없이 왜 마법 사진이니 초상화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건가 싶었지만, 후작님의 생각이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건지 평범한 내가 따라가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그런고로 저는 그냥 시키시는 대로 살겠습니다. 포기하면 편하다고 누가 그랬더라. 의문을 제기하지 않자 머리가 맑아지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아……. 이런 게 바로 정신적 자유의 경지에 이르는 걸까. 

후작님께서는 들고 계시던 꽃다발을 대충 하녀에게 건네셨다. 살짝 훔쳐봤더니 역시 데이지였다. 아니, 데이지에 왜 갑자기 꽂히신 거지.

“왜 그런 얼굴입니까. 그리고 이 앞에서 뭘 하고 놀고 계셨습니까. 인형놀이라고 하기에는 인형이 없고.”

“그, 피해자 놀이라고나 할까요. 추리 극장 놀이를 잠깐.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헤이든 님 여기서 뭐 하세요? 일하러 가신 거 아니셨어요?”

재차 묻자 후작님께서는 내 옷을 한참 이리저리 살피시더니 옷에 먼지가 묻었군요, 하고는 깨끗하게 먼지도 털어주시고, 실밥도 떼어주시고, 리본도 다시 묶어주시고, 머리도 고쳐주시고, 얼굴에 묻은 마스카라 조각도 섬세하게 털어주셨다. 

얌전히 하시는 대로 서 있었더니 후작님께서는 ‘이제 예쁘네요.’ 하고 뿌듯한 얼굴을 하시다가 내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둔 침실을 잠시 보시더니 인상을 살짝 찌푸리셨다. 당장 저기 가서 무릎 꿇고 손들어! 하실 것 같기에 슬금슬금 벽 쪽으로 다가가려고 했더니 후작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디 갑니까.”

“아니, 저기 벽 쪽이 시원해 보이고 해서…….”

“가지 마세요. ……그리고, 일 하다 잠깐 왔습니다.”

“어, 그래도 돼요?”

“물론 안 됩니다.”

……그런데 후작님께서는 왜 여기 계세요? 하고 의심이 담긴 눈으로 바라봤더니 후작님께서는 차가운 도시의 후작, 그러나 내 잡일에는 관대하겠지, 하는 느낌으로 굴러다니는 내 책을 들고 확인하시더니 말씀하셨다.

“식사를 하기 싫다고 하셨다면서요.”

“에. 설마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살다 보면 식사를 하기 싫은 날도 있고, 또 별로 배도 안 고플 수도 있고……. 그리고, 그리고 또, 음, 식사보다 하고 싶은 게 있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자 후작님께서는 진지하게 내 말을 다 듣고 계시더니 내 손목을 잡으시며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식사하러 가죠.”

역시 안 통하나! 그래도 열심히 시도해봐야지, 결심했다. 손목이 잡힌 채로 질질질 끌려가면서 오늘은 방 밑으로 내려가고 싶은 날이 아니네, 사실은 배가 아픈 것 같네, 후작님께서 제 식사를 신경 쓰실 필요는 없네, 하고 줄줄줄 말하자 후작님께서는 물끄러미 날 바라보시다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릴리는 식사를 해야 합니다.”

죽고 싶으면 밥 먹어라, 라는 말이 순간 후작님의 뒤에 보이는 듯했다. 아, 아니 죽고 싶지 않으면 밥 먹어라, 라는 말이 말이다. 휴, 하마터면 이거 해도 죽고 안 해도 죽을 뻔했네. 

“그치만, 그치만……!”

그때 내 배에서 후작님의 말이 아주 옳음을 주장하는 소리가 나왔다.

꼬르르르륵…….

후작님께서는 언제나의 그, 일그러뜨리는 얼굴을 만들어 보이시더니 큼, 헛기침을 하시고는 눈썹을 들어 올리시고는 말씀하셨다.

“배고프지 않다거나, 배가 아프거나, 뭐 이런 거짓말은 들통 났고……. 결국 진실은 하나란 거군요.”

진실은 하나라니……! 추리 소설 명대사가 후작님 입에서 나오니까 어쩐지 후작님이 좀 더 어려 보이는 느낌이지만 들켰다는 생각에 웃, 하고 살짝 뒷걸음질 치자마자 후작님한테 잡힌 손목이 주욱 당겨져서 결국 종종종 후작님 곁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밑에 내려가고 싶지 않다는 거군요, 결국.”

“아니 뭐, 굳이 그런 건 아니고…….”

“그럼 내려가서 먹죠.”

후작님께서는 정말로 네가 원하는 것이 그것이냐, 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당장 내려가자는 식으로 문 쪽으로 다가가셨다. 나는 결국 자수를, 아니 범죄가 아니니까 자수 말고, 그러니까 내 마음을 소상히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여, 역시 명탐정……. 아, 추리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더니.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손에 힘을 줘서 후작님의 옷자락을 꾹 잡고,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운 마음을 조금쯤 드러내면서 말했다. 

“그, 그냥 위에서 먹어요.”

그러자 후작님께서는 매우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하녀를 부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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