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딸로서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자란 예랑과 한 대기업의 차기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현재는 각자 애인을 둔 젊은 남녀이다. 그러나 애인이 있다고 해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 양가 부모님에게 밀려 어쩔 수 없이 선을 보러 나온 두 사람이지만 첫인상부터 정말 꽝이었고 다시는 서로를 보지 않으리라 등 돌리고 헤어지게 된다.
하지만 자신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선을 본 상대와 어느 정도의 연극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예랑과 현재는 정확히 삼 개월 동안만 연인 행세를 하자고 약속을 하기에 이르게 되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서로의 마음속에서 뭔지 모를 감정의 느끼기 시작하는데...




<본문 중에서>

현재는 휴대폰을 소리 나게 닫아 테이블 위에 던지다시피 올려놓았다. 아침부터 저기압이라 머리도 아프고 속이 답답해 죽겠는데 오늘 만나기로 한 여자는 어찌된 영문인지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분명 약속 시간은 오후 2시였다. 그런데 벌써 20분이 지났다.
‘뭐야, 도대체. 나올 거야 말거야. 연락을 주던가.’현재의 미간이 살며시 좁혀졌다. 그것은 그가 짜증이 밀려왔다는 증거이자 앞으로 오 분만 더 지나면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한다는 뜻이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다가 그것 또한 관두기로 하곤 의자에 기대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까부터 호텔 로비 앞에 멈춰 있던 새까만 고급 승용차가 눈에 거슬렸다. 왜 움직이지도 않고 계속 서 있는 것일까.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호기심이 증폭되어 가고 있는 찰나, 뒷좌석 문이 열리고 웬 여자가 차에서 내렸다. 차에 타고 있던 누군가에게 뭐라고 쏘아붙이듯 말을 하곤 호텔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등까지 길게 늘어뜨린 웨이브 머리가 찰랑거리며 춤을 추듯 움직인다. 그리고 정숙하면서도 고상한 느낌이 나는 까만색 정장은 부잣집 아가씨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확 찌푸려져 있는 표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잔뜩 골이 나셨구만.”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담배를 집어 들며 현재가 중얼거렸다.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는 몰라도 분명 자신처럼 나오기 싫은 자리에 억지로 끌려나온 것이라든가, 혹은 한 번만 더 만나달라고 애원하는 남자를 이번이 마지막이라 다짐하며 만나러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얼굴에 짜증이 더덕더덕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현재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를 따라 눈길을 돌렸다.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그녀는 신경질적인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섰다. 주위를 한두 번 두리번거리더니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가방 안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 손에 들려 나온 건 사진이었다. 현재는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며 물고 있던 담배를 다시 내려놓았다. 여자가 현재와 눈이 마주친 이후에 사진을 들여다보고는 더욱 짜증이 난 표정을 지으며 걸어오기 시작할 때엔 그 오싹함은 확신이 되어 버렸다.
“저기요.”
현재 앞에 멈춰 선 여자. 옅고 은은한 향수 냄새가 주위를 에워싸며 풍기기 시작했다.
“서현재 씨 맞죠?”
“네. 약속한 시간보다 25분 늦으셨군요.”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나 말을 받아치는 현재를 보며, 예랑은 사실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뭐랄까. 그 역시 자신처럼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앉으시죠.”
“네, 그러죠.”
둘 다 한발도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서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눈을 피할 줄 모르는 이 두 사람, 첫 느낌부터가 정말 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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