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위새는 야행성으로, 낮에는 나무구멍이나 땅 속에 은신하다가 밤이 되면 활동한다. 눈은 퇴화하여 보이지 않으나, 후각, 청각, 촉각이 발달되어 있는 새이다. 코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유일한 새가 바로 키위새이다.

저녁바람이 서늘했다. 시골이라 공기조차 상쾌했다. 용기와 나란히 앉은 미소는 가슴 가득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내뿜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했다.
“현실에 안주하는 건 희망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야. 알지?”
뜬금없이 꺼내는 용기의 말이었다. 미소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너 키위새 좋아한다고 했지? 하지만 조사해 보니 나는 싫더라. 왠지 알아?”
역시 묵묵부답. 변화가 없다. 좋다, 싫다는 어떤 행동도.
“키위들이 왜 지금처럼 날지 못하고, 눈도 보이지 않는지 아니? 그게 다 현실에 안주해서야. 먹이도 풍부하고 살아가는 데 있어 전혀 지장이 없는 넉넉한 현실. 그것이 결국 키위들을 그런 쓸데없는 새로 만들어 버렸지. 하지만 그렇게 된 데에는 희망이라는 아주 간단한 원칙이 배제되었기 때문이야. 먹이가 조금만 더 모자랐더라도, 환경이 조금만 더 힘들었더라도 키위들이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거야. 때로는 고통이 피하고 싶을 정도로 괴롭더라도 그 고통으로 인해 인간은 성장하게 되어 있어. 가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람들 보면 대부분이 절망의 끝에 서있지. 희망과는 정반대의.”
희망과는 정반대의 절망. 희망은 사람을 살리게 하고 절망을 사람을 죽인다. 만약 키위들에게 조금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그들은 살 것이다. 아무리 그들의 울음소리가 예쁘다 해도 창공에서 들리지 않는 울음소리라면 헛된 부르짖음에 불과할 것이다.
희망.
결국 그것이 문제였다. 희망으로 인해 언젠가는 키위들도 세상을 훨훨 날아다닐 날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노랫소리를 하늘에 널리널리 퍼뜨리며.
“그…….”
용기는 조용히 기다렸다. 절대 조급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 스스로 마음을 열고 입까지 열기를 기다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천천히 합쳐졌다.
“그렇지만…….”
“그래. 왜?”
떨리는 미소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용기의 다정한 눈빛에 힘을 얻은 미소가 더욱 기운을 내어 말을 뱉어냈다. 그 사건 이후 처음으로.
“나도 희망이… 있을까요?”
“그럼. 당연하지.”
그녀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어렸다. 용기는 시선을 떼지 않았다. 미소가 민망할 정도로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결국 눈을 돌린 것은 미소였다.
“날 봐. 다시 날 쳐다봐.”
용기의 거부하지 못할 말투였다. 미소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왔다.
“희망은 언제나 있었어. 다만 과거의 그림자가 너무 짙어서 눈앞에 있는 희망을 보지 못했을 뿐이야. 미소야, 너에 비해서 내가 겪은 고통이 작다고 생각하니? 내가 매일, 매 시간마다 부딪치는 사건의 희생자들이 겪는 고통이 작다고 생각해? 아니야. 하지만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들의 앞날이 바뀌곤 해. 나도 경험했고 또 보았어. 그러니 우리 힘을 내자. 너와 내가 합치면 더 큰 희망을 만들 수 있어. 응?”
미소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정말 이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정도로 지극정성인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내 남자로 만들기에는 너무나 아까운데. 너무나 큰마음인데.
“난 용기 씨에 비해 너무 작은 사람이에요.”
“그렇지 않아. 넌 내게 차고도 넘쳐.”
미소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용기는 그녀의 시선이 돌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내가 용기 씨의 앞날에 지장을 줄 수도 있어요.”
“아니야. 네가 곁에 있으면 난 평화로울 것 같아.”
“난……. 용기 씨와 사랑을 나눌 수 없을지도 몰라요.”
미소로서는 가장 중요하고도 두려운 것이었다. 사랑하는 용기와 육체적으로까지 하나가 될 수 있을지. 용기의 그윽한 시선이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미소는 마법에 걸린 듯 그의 입술을 응시했다. 천천히 입술이 열리며 그의 듣기 좋은 음성이 새어나왔다.
“가능해. 노력하면 돼. 날 믿어.”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는 그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미소는 눈을 감았다. 용기가 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끌어안았다. 두 사람의 맞닿은 가슴이 요란하게 두방망이질 쳤다.

작가소개 : 밝은 빛을 좋아하는 사람. 자신이 세상에 그 빛이 되고 싶어 늘 노력하는 사람. 항상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하고 싶은 평범한 초보글쟁이. 네 아이의 엄마.
개인 홈피 사랑, 그 이름으로(http://romance-life.ohpy.com)에 강현수(겨울나비) 작가님과 함께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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