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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폐하, 또 죽이진 말아주세요 2권
에클레어 지음도서출판 가하2021.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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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평점 | :  [참여수 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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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 979-11-300-47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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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품 소개
열여덟. 폭군을 향한 아버지의 간언 때문에 내 목은 가문과 함께 단두대 위에서 잘려나갔다.
그리고 다시 눈뜬 열두 살의 생일. 가문을 살리기 위해 나는 폭군의 간신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니 폐하, 우리 좀 친해져봐요. 성심성의껏 잘해드릴 테니 또 죽이진 말아주세요!
“저는 진짜 전하 편이라니까요? 완전 맹세!”
“입 닥쳐.”
그런데 인간불신에 빠진 이 폭군 유망주, 점점 만만치가 않아진다.
“전하, 제가 당신을 기만하게 하지 마세요.”
“네가 내 옆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이 기만뿐이라면 그리해.”
“네?”
“다시 말하지만, 난 내 건 아껴. 내 허락 없이 네 몸에 상처 내지 마.”
2. 작가 소개
에클레어
쓰고 싶은 글을(만) 씁니다.
3. 차례
#4. 침잠하는
#5. 사실과 실상의 관계
#6. 도깨비의 숲
4. 미리 보기
대개 귀족은 요리사를 두기 때문에 직접 조리까지 하는 일은 드무나, 어머니는 음식에 들어가는 애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이다. 그래서 가끔 르한과 나에게 직접 구운 쿠키나 파이 등을 주곤 하셨다.
어머니가 직접 반죽해 구운 쿠키는 베르노나 마르셀이 계량해 만든 것이나 유명한 제과점의 쿠키보다는 맛이 떨어졌지만, 따사함이 있었다. 만든 사람의 정성과 애정이 들어간 갓 구운 노릇노릇한 쿠키는, 베어 물었을 때 퍼지는 온기나 향이 조금 더 잘 느껴진다.
나는 루페르트가 그런 온기를 조금 더 느꼈으면 했다. 직접 만든 요리를 갖다 바친다고 해서 그가 나를 기꺼워하거나 좋아해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웠다. 그의 친부라 주장하는 사람을 마주하니 더더욱.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도 있는데, 그는 남보다 더했다. 우리가 그냥 황궁으로 돌아가면 악착같이 치료비를 청구할지도 모른다.
나는 만두를 찜기에 올려놓고 익기를 기다리며 루페르트의 주변인들을 하나씩 떠올려보았다. 토리는 루페르트를 사랑하지만, 온전한 애정이라 보기엔 의심쩍은 구석이 있다. 내가 죽음에서 돌아오기 전 그가 그녀를 직접 죽였다는 사실도 생각해야 했다.
파스벤더는 말 그대로 장사꾼이다. 루페르트가 부리는 수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루이제 바덴은 내가 죽기 전까지 루페르트의 충실한 부하였지만, 그가 루페르트의 성장을 도와줄 어른다운 어른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루페르트를 구제할 수 있었을 인물을 헤아려보다 곧 포기했다. 사실 해봤자였다. 정말 그래줄 수 있는 사람이 루페르트 옆에 있었더라면, 그가 폭군으로 성장할 리 없었다.
나는 평범하게 성장한 루페르트를 상상하기 위해 노력하다 이내 고개를 저어버렸다. 폭군 라스페리히 1세가 아닌 루페르트를 상상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내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과 지금, 루페르트의 주변인물 중 달라진 사람이 있다면 오직 나뿐이다. 그가 행복해지길 바란다면, 인간답게 살길 바란다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모자라다. 그러고 싶은 의지도 잘 생기지 않았다. 안쓰러움과 미움을 오가는 마음은 항상 미움 쪽으로 기울었다.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원래 비겁하다.
나는 내 알량한 마음을 탓하며 모락모락 김이 나는 만두를 접시에 옮겨 담았다.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이 정도였다. 그의 마음이나 안위를 곧잘 헤아리는 척, 그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을 꾸며내는 것. 딱 그 정도.
루페르트처럼 눈치가 빠른 아이가 내 진심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지만, 그는 넘어가주었다. 그만큼 온기가 절실하여. 진심으로 그를 위할 수 없는 내 온기마저 탐하는 아이라서.
“전하, 아직 주무세요?”
조심스러운 노크에 대답은 없었지만, 나는 바로 침실에 들어섰다. 이제야 안정된 듯 루페르트는 고른 숨을 내쉬며 누워 있었다. 피가 말라붙은 그의 얼굴 왼편을 물수건으로 닦아내자 기다란 생채기가 눈에 띄었다. 눈썹 언저리부터 광대뼈까지. 가늘지만 제법 길다. 흉이 남을 것 같아 내가 낸 상처와 마찬가지인 그것을 나는 손끝으로 쓸어내렸다.
“배고프실까 봐 만두 만들었는데.”
내 말이 들리긴 하는지 그의 눈썹이 작게 꿈틀한다. 나는 작게 웃으며 만두 접시를 침대 옆에 내려놓았다.
“제가 아프면 어머니가 항상 과자를 구우셨어요. 평소에는 몸에 좋지 않다 자제하라 하시면서.”
“…….”
“사람이 아프면 원래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먹고 싶잖아요. 입맛이 없으니까. 그래서 그러셨나 봐요.”
그는 내 쓸데없는 말에 머리가 아프다는 듯 대놓고 눈살을 찌푸렸다.
“전하 편찮으실 때마다 만두 해드릴게요!”
“하지 마.”
내가 자신 있다는 듯 허공에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하는데 루페르트의 짜증 섞인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그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도우며 툴툴댔다.
“해준대도 뭐라 하세요.”
“네 만두 꼴을 봐. 심지어 맛도 없어, 이건.”
“어, 이번에는 나름 잘되지 않았어요?”
나는 의아해하며 루페르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만두를 살펴보았다. 반죽은 보들보들하니 아주 잘 익었는데. 급하게 찌느라 속이 좀 안 익었을 확률도 있지만…….
나는 루페르트의 강한 위장을 믿었다. 원래 성질이 고약하면 위장이 튼튼한 법이다. 그는 그런 성질머리를 가지고도 체한 적이 한 번도 없으니 필시 아주 튼튼한 위를 가지고 있으리라.
“저번보다는 낫네.”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으로 만두를 집었다. 눈을 초롱초롱 뜨고 그를 지켜보는데도 평소처럼 나가라는 말도 없다. 나는 그가 우걱우걱 만두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헝클어진 머리는 땀 때문에 기름져 보였고, 눈가는 퀭한 데다 음식까지 손으로 먹으니 전혀 황녀처럼 보이지 않는다.
황족의 고귀함은커녕 길에서 동냥을 해도 될 법한 모습이다. 만약 비렁뱅이였다면 얼굴로 먹고살아도 될 만큼 예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내가 웃음을 삼키지 못하자 만두를 삼키느라 정신이 없어 보이던 그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나는 먹이를 문 산짐승처럼 볼록한 그의 뺨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전하, 그런 식으로 음식을 드시면 황녀 전하라는 거 아무도 안 믿어줘요.”
“상관없어.”
그는 순식간에 만두 세 개를 해치우고 손바닥을 탈탈 털었다. 팔을 등 뒤로 짚은 그는 고개를 크게 젖혔다. 더는 가리지 못할 정도로 목젖이 뚜렷하다.
“대공이 반역을 준비한다는 증거를 가져왔으니, 황제는 당장 내게 황위를 넘기려 들 거다.”
“……어째서냐고 물어도 되나요?”
사실 그가 태자가 되어야 할 마땅한 이유가 없다. 나는 황제가 루페르트를 황녀로라도 데리고 있는 이유가, 황후처럼 생긴 인형을 제외하고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황제는 나를 좋아하지 않지만, 대공을 끔찍하게 무서워하니까.”
제 말년이 형과 같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인가. 황위 찬탈은 1,000년의 역사에서 반복돼온 일이지만, 같은 세대에 두 번 일어나는 일은 확실히 드물었다. 군대와 함께 밀고 들어와 형에게서 가로챈 왕관이니, 제 아우가 얼마나 무서울까.
“아, 그렇구나.”
루페르트는 내 건조한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이다. 그는 곧 팔을 뻗어 나를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가까이 마주한 녹안은 여전히 한여름 숲처럼 짙다. 그의 입이 달싹인다. 그는 좀처럼 머뭇거리는 법이 없었기에 나는 얌전히 기다렸다.
“어디까지 알아?”
“뭘요?”
“어디까지 들었고, 어떤 것을 짐작했고, 얼마나 이해했나?”
간단한 질문이지만, 대답하기 곤란했다. 그러나 토리가 아는 것을 그는 예상하지 못하진 않을 듯해, 나는 진실을 말하기로 했다. 대부분을 들었고, 많은 것을 짐작했으며, 스스로가 미워질 정도로 당신의 사정을 이해했노라고.
“전하가…….”
“어.”
“황가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요.”
이 한마디는 그의 질문에 대한 모든 대답을 함축하고 있었다. 황족이 아닌 자가 벨네르니의 황제가 되는 일을 묵과하는 것 또한 중죄다. 그는 말을 잇지 않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다시금 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의아함. 둥둥 떠다니는 돛단배 같은 그것을 건져내자 싶었다.
“저는 전하의 사람이 될 것이라 결심했잖아요.”
“말이 안 돼.”
“어디 말이 되는 일들만 일어나는 세상이던가요.”
“왜?”
“전하가 행복하셔야 제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나는 루페르트가 황제가 되면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대답했다. 겹겹이 쌓인 거짓 속 유일한 진심이라.
“인연이라 생각해요.”
“난 그런 거 안 믿어.”
나는 그의 까칠한 말에 빙긋 웃었다. 그래, 인연이란 개념은 그가 믿기에는 너무 낭만적이다. 나 또한 우리가 얽힌 이유가 신이 점지해준 무언가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인력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목적이 무엇이든, 서로의 안위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관계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나는 루페르트와 나의 관계는 그 정도면 되었다. 그가 나를 진심으로 믿을 수 있을 리 없었고, 내가 그를 진실되게 위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루페르트는 대답이 없는 나를 재촉하지 않는 대신 다시금 생각에 골몰했다. 그가 아무리 수학에 능하다 해도 내 마음을 셈할 수는 없으리라. 내가 미래를 이미 겪었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없을 테니까. 그는 밋밋하기만 한 천장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매끈한 옆모습이 아픈 와중에도 퍽 아름다웠다. 유려한 콧날로 노란 빛이 한 움큼 떨어진다.
“넌 나를 무서워해.”
그는 협탁에 있는 램프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내가 황제가 될 거라 확신하고, 그래서 내 곁에 있으려 하지.”
“맞아요.”
“나는 네 그 빌어먹을 확신의 이유를 전혀 모른다. 짐작도 안 가.”
“그냥 감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하여간 이건 입만 열면 공갈이야.”
루페르트가 휙 날 바라보며 성질을 낸다. 거짓을 고한 것은 맞으니 나는 스리슬쩍 눈을 내리깔았다.
“그래도 상관없어.”
그는 그런 나를 지켜보며 단정 지었다. 어느새 완전히 내 쪽으로 몸을 돌린 그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씨익 웃었다. 다정하지도, 흔흔하지도 않은 무의미한 미소였지만 그조차도 드문 사람인지라 순간 몸이 움찔한다. 그는 다 안다는 양, 혹은 몰라도 괜찮다는 양 무심한 태도를 고수했다.
“넌 내 거니까.”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혼이 지옥으로 떨어지고 백골만 남더라도. 그런 사족이 붙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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