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생 때의 일이었다.

책가방에 교과서는 물론이요, 학생인 주제에 연필 한 자루도 들고 다니지 않았던 놈이 바로 한상진 새끼였다. 그런 놈이 웬일로 마치 포대기에 감싼 아기를 보듬듯 가방을 품에 안고서 교실에 들어왔다.

살금살금 교실로 들어오는 꼴이 기가 막힐 정도로 우스운 폼이었지만 그의 얼굴만큼은 기밀작전을 수행하는 군인과도 같았다. 상진이 새끼는 범상치 않은 얼굴을 하고서 내게 다가와 비열하게 웃으며 가방을 열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교과서, 연필, 지우개, 그딴 건 하나도 없었다. 가방 속에 고이 모셔져 있었던 건 CD 한 장이었다. 그 CD의 정체가 『디아블로2』라는 걸 알고 그날 나는 한상진의 노예가 되기를 자청했다.

“절 개처럼 부려주세요, 주인님.”

내 입으로 그딴 개소릴 지껄일 정도로 나는 『디아블로2』가 너무 하고 싶었다.

저 게임이 출시되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저딴 CD 한 장이 뭐라고 형 몰래 알바 뛰다가 걸려서 다리몽둥이가 부러질 뻔했던 게 세 번, 디아블로 사달라고 징징거리다가 주둥이가 째질 뻔했던 게 다섯 번.

“이 밥버러지 노예야, 당장 매점에 가서 딸기 우유랑 소보로빵 두 개를 사오너라.”

크하하하, 웃으며 상진이 새끼는 그 뒤로 3일 동안 정말 날 개처럼 부려 먹었다. 그리고 딱 4일째가 되던 날, 나는 상진이 새끼 노예로 살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은 나머지 미치고야 말았다.

한 번만 더 디아블론지 나발인지 그딴 얘기 꺼내면 머리통을 박살 내버리겠다는 형의 말도 잊은 채 나는 형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교로 찾아갔다.

그리고 형을 보자마자 디아블로 사 내라고 개지랄을 떨었고,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 위에 뻗어 있었다.

어쨌든 그 일주일 뒤, 형이 내 생일 선물로 디아블로를 사줬다.

나는 그동안 날 개처럼 부려 먹었던 상진이 놈한테 자랑하려고 다음 날 아침 택시를 타고 학교를 갔다.

혹여 등굣길 만원 버스에서 CD에 상처가 나지 않을까, 염려한 까닭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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