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우리 삶이 그렇죠 뭐. 어떻게 매일매일이 이벤트일 수 있겠어요.

건실, 착실, 성실한 간호사 오나라. 인생을 즐겁게 살리라 다짐했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외로움은 건강의 적!

결국 나라는 룸메이트를 구하기로 하고 평소 즐겨 읽던 웹툰 ‘서른 살 사춘기’의 작가 영인과 함께 집을 사용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동갑내기 여자가 아닌 일곱 살 연하 꽃미남 청년이 들어오다니!

엉겁결에 동거를 시작한 두 사람. 언제나 방글방글 웃는 영인이 밉기도 하고 마음에 들기도 하는데…….

고영인과 함께 살기 시작한 지 108일째, 천재지변이 일어나버렸다!

2. 작가 소개

신민영

사소한 인생을 근사하게 살고 싶다.

촌스러운 낭만을 기억하면서.

블로그 : http://blog.naver.com/ajwannabe

▣ 출간작

불가분의 연애

불꽃(eBook)

유혹의 기술(eBook)

뜻밖에, 우리는(eBook)

고양이가 사는 나라(eBook)

3. 차례

#20. 수상한 룸메이트, 고영인

#21. 조심해요. 싸우다 정들어요.

#22. 함께 젖는다는 것 (1)

#23. 함께 젖는다는 것 (2)

#24. 난 네가 (그 애랑 있는 게) 싫어.

#25. 너한테 내가 고작 그것밖에 안 돼?

#26. 꼭짓점 추가, 삼각형이 되다.

#27. 이제 동생 안 해.

#28. 친구가 부릅니다. 거미라도 될 걸 그랬어.

#29. 그거 알아요? 예쁘다구요, 당신.

#30. 좋아해서 맞추는 것, 잘 맞아서 좋아지는 것

#31. 꼬리 아홉 달린 여우에게 홀리다.

#32. 가족의 발견

#33. 가족끼리 왜 이래.

#34. 남자와 여자

4. 미리 보기

“저기…….”

나라가 막 영인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가려는 찰나, 영인이 시선을 돌렸다. 그 바람에 혀끝에 걸렸던 ‘영인아.’ 하는 말이 차마 입술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래도 목구멍 안으로 삼켜졌다.

영인이 지나친다. 마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언젠가 자기를 향해 걸어오던 영인을 외면하고 지나쳤던 그날, 병원에서의 나라처럼.

둘 사이에 팽팽하게 그어놓았던 선의 반대방향으로 멀어지는 영인의 걸음이 빨라질수록 거리는 점점 더 멀어졌다.

툭, 손에 힘이 풀려 들고 있던 종이 쇼핑백 한쪽 귀퉁이가 훌렁 열렸다. 나라는 섬유유연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쪽 찢겨져 나가는 종이팩을 얼른 다시 잡아 붙들었다.

‘찢어진 봉투를 잡는 것처럼 찢겨진 관계도 붙들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씁쓸한 기분으로 대문 안으로 들어서던 나라는 다시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멀어졌던 영인이 어느새 다시 돌아와 뒤에 서 있다.

“영인아.”

영인은 여전히 시선을 외면한 채로 나라의 손에 들려 있던 무거운 종이봉투를 빼앗아 들었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간다.

어쨌든 그대로 가버리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워서 나라는 얼른 영인의 뒤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엄청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현관입구에 짐을 내려놓는 영인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라는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간신히 붙잡은 채 일부러 무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영인은 대답이 없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 현관에 선 채로 짐을 놓은 영인이 곧바로 돌아서 다시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문에 기대서 있던 나라가 몸을 바로 일으켰다.

나라는 마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철저하게 자기를 외면한 채 지나치려는 영인의 소매를 잡았다.

영인이 차가운 눈빛으로 잡힌 소매를 내려 보는 것이 머쓱해 나라는 다섯 손가락으로 힘주어 잡고 있던 손을 스르륵 풀었다. 완전히 풀면 놓칠 것 같아서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아슬아슬하게 끝을 붙드는 것까지는 포기하지 않았지만.

“어디 가?”

“약속 있어.”

“일찍 들어와?”

“아니.”

“언제 들어오는데? 나 내일부터 이브닝이라 좀 늦게 자도 되는데…….”

“그래? 그래, 그럼. 천천히 놀다가 자.”

영인이 팔을 들어 나라가 잡고 있던 소매를 뿌리치고 성큼 밖으로 나가버린다.

손이 무안하고, 허전해진 나라는 조금 망설이다 영인의 뒤를 따라 나가니 헬멧을 쓰고, 막 스쿠터에 앉는 영인의 모습이 보였다.

“오토바이…… 샀어?”

“응.”

“너…… 지금 이렇게 돈 쓸 때 아니잖아. 이런 거 살 게 아니라 한 푼이라도 더 모아서 빨리 자리 잡아야지!”

약간의 실망과, 또 약간의 우려를 가미한 목소리가 조금도 걸러지지 않고 튀어나왔다. 거의 본능에 가깝게 불쑥 나온 말이었다.

거의 꾸짖듯이, 다그치듯 묻는 나라의 목소리에 시동을 걸던 영인의 손이 멈칫했다. 대답 없이 허탈한 듯 먼 곳만 바라보고 앉아 있는 영인을 보던 나라도 심상치 않은 공기의 흐름에 초조해져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누나.”

깊은 한숨을 천천히 나누어 내쉰 영인이 조용히 나라를 불렀다. 그간 셀 수 없이 많이 들었던 ‘누나’라는 호칭 중 가장 무거운 목소리였다.

그 부름에 응하면,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휘청거릴 것 같아 나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물끄러미 바라볼 뿐.

“나 지금부터 누나를 누나로 보지 않을 생각이야.”

담담하지만 단호한 영인의 목소리에 나라는 뭐라고 말할 수 없이 당황했다.

숨이 턱에서 콱 막히고, 심장이 뛴다.

“누나는 내 누나가 아니니까. 우린 남이니까. 내가 누나를 내 친누나처럼 생각하고 대한 게 우리가 이렇게 어긋나는 가장 큰 이유 같아.”

“…….”

“그러니까 누나도 나를 누나 동생으로 생각하지 마. 나 이제 동생 안 해. 그러기 싫어졌어.”

영인이 마침내 고개를 돌려 나라의 눈과 시선을 맞추었다. 웃음기 없는 진지한 얼굴과, 선명하게 빛나는 단호한 눈빛이 입으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우리 조금, 불편해지자.”

나라는 자꾸만 손끝이 저릿해서 바지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마치 전기가 오른 것처럼 뒤통수가 짜릿하고, 오금이 떨려서 제대로 서 있는 것도 힘이 들었다.

말을 마친 영인이 그대로 쌩하니 스쿠터를 출발시켰다. 그가 일으킨 바람이 나라의 머리칼을 날린다. 그 바람에 바닥에 깔려 있던 시든 꽃잎들이 너울너울 흩날렸다.

누나, 동생으로 지내는 일이 싫어졌다는 영인의 말이 서운하면서도, 마치 반어법처럼 다른 뜻으로도 들리는 것 같아서 나라는 혼란스럽다.

“……어떻게 하나라는 거야. 널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도.”

함께 있으면 마냥 편하다가도, 불쑥 불쑥 몹시 불편해지는 그 혼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자꾸만 삐걱거리고, 어긋나는 거라고.

불편한 사이가 되는 것이 싫으면서도 또 그게 유일한 해답인 것 같다는 모순이 너무 괴롭다고, 나라는 그렇게 이야기 하고 싶었다.

꽃이 진 대신, 연두색 잎이 돋아나는 것처럼, 두 사람에게도 새로운 색깔의 관계가 시작된 늦봄의 저녁이었다.